영혼의 깊은 곳에서
엄마. 어딨어..? 어디서 뭐해? 천국 몇 번지 몇 호에 있어어?
울었다. 아직 내가 울고 싶은 울음의 궤도 근처에도 오지 못한 울음이었지만, 그 울음에, 퍽 근사하게 다가온 울음이었다.
눈이 부시게 촤종회를 우연히 보다가,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래봐야 고작 한 십 분 넘겨를 보았던 것 같다. 수많은 혼란과 해결되지 않는 나의 집착적인 느낌들 때문에, 현실 때문에, 울지도 못했는데. 한겨울 강의 두꺼운 살얼음처럼 얼어버린 울음을, 드라마의 어디가 건드린 걸까. 그동안 몇번이고 보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조금씩 보다가 만 채 방치해둔 드라마여서 앞부분의 내용도 모른 채 보았는데, 울어버리고 말았다. 엄마에게도 틀어드려서 엄마와도 몇 번을 좀 보았던 드라마. 눈이 부시게.
아직 제대로 보지도 않았지만, 아마 이 드라마가 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고 의미있는 드라마가 될 것 같다. 단지 드라마일 뿐 아니라 나의 영혼의 중심을 차지하는 이야기가 될 것 같은 느낌을 느꼈다.
김혜자의 마지막 내래이션이 모두 공감되거나 동의되지는 않았다. 나는 그렇게 삶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 좋고, 눈이 부셔서 그 부분은 그대로 인용해 본다.
행복했던 시간만 기억하세요.
대단한 날은 아니고 나는 그냥
그런날이 행복했어요.
온동네가 밥 짓는 냄새가 나면
나도 솥에 밥을 앉혀놓고
그때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던
우리 아들, 손잡고 마당으로 나가요.
그럼 그때 저 멀리서 노을이 져요.
하지만 어쩌면 당신의 가장 행복한 시간속에 살고 계신 걸지도 모릅니다.
내 삶은 때론 불행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 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의 모든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사랑하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였고
나였을...그대들에게.
나는 지금 이런 고백을 할 수 없는데, 엄마가 이런 고백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고 편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왜일까. 갑자기. 오열에 가까운 울음이 뜻하지 않게 터진 것은 왜였을까. 그걸 어떻게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무리 글을 잘 써도 그건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그냥 나를 둘러싼 현실의 삶, 이 모든 부유하는 일들과 감각들, 얽히고 섥힌 모든 일들. 이 모든 것들이 너무 힘이 들고, 또 그런 반면 엄마는 보고 싶은데, 아무 것도 실감을 할 수 없고. 그런 모든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여서 으앙 하는 울음이 삐져 나오고 만 것 같다.
무언가, 삶이란게, 이러한 현실 뒤에 더 깊은 진실이 있는 것 같다. 분탕질된 바닷속의 뿌연 진흙 바닥이 바다의 진실은 아니니까. 차분히 기다려 진흙탕이 가라앉고 보이는 깊은 바닷속처럼, 삶의 조금 더 깊은 차원을 차분히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다. 잘 한 번, 생각을 더 깊이 해봐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멋있어질 수도 있을 것 같고, 살아있는 동안은 아무튼, 이 드라마의 제목처럼 제대로 살아가 볼 수 있을 것 같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무의식 깊은 곳에서 누군가 말해주기를, 그런게 아니야. 천천히 생각해봐. 다시 한번 천천히 생각해봐. 라고 속삭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렴풋이, 지금 내 방향이 무엇인가 많이 잘못 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을 해보자. 살아있는 동안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러면 최소한 지금처럼 엉망으로 살아가지는 않을 수 있겠지. 눈이 부시게까지는 안 되더라도, 이렇게 눈이 부시시하게는 벗어나 조금 더 선명한 시간을 보낼 수는 있겠지.
내 영혼의 심연 어딘가에 아직 중요한 슬픔의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 울음을, 그 울음 속에 담긴 의미를 꼭 찾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알게 되었다. 그것이 내 처음이자 마지막 소명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