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살아있어야 할까.

by jungsin




살아있는 것들만 화장을 한다. 오직 살아있는 존재만 커피를 마신다. 살아있는 존재만 향수를 뿌리고, 부끄러워하고, 쑥스러워하며, 몸을 베베 꼬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살아있는 존재만 망설이고, 울고, 갈등하고, 후회한다. 살아있는 존재만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흔들리고, 아파하고, 젤리를 먹고, 떨고, 불안해하고, 우울해하며, 한숨을 짓는다. 살아있는 존재만 쉬고 싶어 하고, 과로를 자처하고, 바이러스에 걸리며, 앓고, 활기를 되찾고, 애착하고, 후회하며, 분노를 한다. 살아있는 존재만 미련할 수 있고,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있다. 살아있는 존재만 목말라하고, 불온한 상상을 하고, 순수해질 수도, 거룩해질 수도 있다. 나는 왜 살아있을까. 나는 왜 땅속에 있지 않고 땅 위에 있을까. 남아있는 이 짧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다리를 건널 때면 아무렇지 않게 볼 수 있는 저 검푸른 한강을 나는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나는 몇 번을 더 아이처럼 웃을 수 있고, 또 몇 번을 더 오열하며 울 수 있을까. 얼마의 돈을 벌고 또 얼마를 쓰며 몇 권의 문학책을 읽고 몇 개의 책상을 더 쓸 수 있을까. 몇 명의 사람에게 설렘을 느끼고 몇 명의 사람에게 실망하고 몇 개의 피아노 곡을 연주할 수 있을까. 아무 일도 없는 평온함을 나는 얼마나 또 누려볼 수 있을까. 비 온 뒤 축축한 초봄의 아침을, 내 마음일랑 아랑곳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피는 벚꽃을, 야옹야옹 소리를 흉내내며 다가가면 트럭 밑으로 숨어버리는 고양이를, 어둑어둑하고 후덥지근한 여름밤 무심하게 지표면을 비추며 은은하게 빛나는 얄궂은 하얀 달을, 나는 몇 번 더 눈물지으며 바라봐야 할까. 살아있다는 것은 정말, 무엇일까? 나는 왜 없지 않고 있을까 하는 것이 철학에서 중요한 물음이라는데, 내가 관심 갖는 것은 내가 왜 있을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살아’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나는 왜 살아, 있을까. 그냥 있지 않고 왜 살아 있을까. 왜 커피나 영국 축구 리그나 여자의 뒤숭숭함이나 지성에 목말라 있을까. 나는 왜 하얀 와이셔츠를 다릴까. 나는 왜 오므라이스의 풍요로운 느낌을 아스라이 그리워할까. 분홍 하프 스커트를 입은 여자의 뒷모습을 왜 한동안 바라보는 걸까. 나는 왜 야심이나 돈이나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히고, 가구나 그림을 오랫동안 바라볼까. 동네 평상에 앉아있는 정겨운 할머니를 왜 무심코 지나칠까. 또 나는 왜 보이지도 잘 느껴지지도 않는 하나님을 짚어보려 허우적거리고, 이해할 수 없는 거룩한 목마름에 눈물을 짓곤 할까. 나는 왜 살아 있어야 하는 걸까. 이 감당할 수 없는 숨들을 나는 더 몇 번이나 마시고 내쉬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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