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긍정적이야. 나만 빼고 다 긍정적이야.
봄날.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를 걸으며 그런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에 대한 궁극적이고 힘 있는 긍정. 다들 무언가에 대한 긍정으로 가득해 보였다. 지금 나는 찾지 못해 애타게 발견하고 부여잡고 싶어 하는 그것이었다. 생과 시간에 대한 절대적인 긍정, 꽃잎 같고 과일 같은, 푸릇한 힘이었다.
형은 뭐하십니까? 형의 달이 왔는데. 친한 동생은 4월을 그렇게 표현했다. 표현의 대상은 4월보다 나였을 것이다. 4월은 수천수만 년 전부터 원래 이렇게 벚꽃 피는 4월이었고, 4월을 새삼스레 닮아가기 시작한 것은 나이니까. 봄날이다. 봄. 맞아. 내가 가장 좋아하게 되고 있는, 거의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계절. 봄이 오고 있다.
얼마 전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나도 모르게 불쑥 내가 느끼고 있는 현실 속 공동체의 한계에 관해서 짤막하게 나누었다. 우리 교회는 스스로 다른 어느 교회보다도 이상적인 공동체에 가깝게 나아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에, 그런 질문들이 온통 공동체의 이상성만 느끼고 있는 이들에게는 작은 피문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삶의 자리는 신비롭고 독특하다. 나도 그렇다. 나의 독특한 경험들은 그 사실을 깨달아 가도록 만들었다. 나의 경험과 내가 처한 어려움들은 이야기의 개별성과 독특성에 관심을 갖게 했다. 나의 삶의 자리는 언어로 표현하기가 난감할 정도로 매우 독특하고 신비로워져 가고 있었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외롭고 추워 오들오들 떠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4월을 사랑하는 나의 시간은 한도 끝도 없이 얼어붙어 가기만 했다. 너무 힘이 들면 눈물도 기도도 얼어붙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나의 삶의 형편들이 변해갔다.
공동체는 변함없이 최선을 다했다. 언제나 헌신적이었다. 진심이었고, 신실했고, 성실했고. 또 뭐랄까 무언가에 늘 여념이 없었다. 나의 가족이나 친구들 모두가 그랬다. 늘 최선을 다했고, 언제나 무언가로 여념이 없었다. 사랑하고 아파하고 울고 괴로워하고 두려워하며. 허둥지둥, 허겁지겁, 모두들 자기의 방식으로 다들 무언가에 진심이었다. 나도 그렇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어제는 교회의 리더급 사역자 두 명과 맛있는 것도 먹고 벚꽃 항이 흩날리는 거리도 좀 거닐고 그렇게 궁금해했던 가옥 개조 카페도 갔었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는 왜인지 이 무리 애를 써도 잘 닿지 못했다. 너무나 많은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 알고 있는 이유들로, 또 우리 중 누구도 모르는 이유들로 인해 아쉽게도 서로에게 닿지는 못하고 있었다.
누구를 만나러 가는 길. 아까 지하철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여의나루 역 쪽으로 밀려오는, 꽉 막힌 커플 인파를 역주행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벚꽃이 피는 날들에 이 거리를 걷는 게 얼마만인지. 대단한 감격은 아니지만, 아무튼 벅차고 감개무량하다. 밤새도록 투썸플레이스에서 자기소개서를 고쳐 쓰고 또 고쳐 쓰다가, 떡 진 머릿결과 축축하고 축 처진 옷의 재질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생기 있는 옷차림에 싱그러운 샴푸 향을 흩날리며 출근하는 사람들을 거슬러 집으로 혼자 역주행하던 날들의 감각이 생생하다. 이토록 숨 막히는 4월, 커플들이 셀레는 땀끼를 느끼며 손을 잡고 걷는 벚꽃 피는 날들에, 누군가 어디에서 얼마나 어떻게 외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을지, 난 정말 가늠조차 하지 못하겠다. 이 세계의 누군가에게는 내가 싱그러운 출근러일 수도 있다는 것을, 겉으로 드러나지 읺는 어둠 속에서 우리 모두가 외롭고 힘든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는 것을 잠깐 상상해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데, 그게 내가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보이지 않는 이면의 세계를 점점 이해해 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눈물과 울음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공동체의 자기 중심성은 사역자의 자기 중심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사랑이라는 감각에 민감한데,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이 맞다면, 나는 점점 관계에는 무력감을 느끼고 있고, 대신 글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