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으로부터 자기소개를 부탁받았다. 내가 썼던 낙서(양심상 차마 글이라고는 못한다.)를 낭독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데 나의 소개가 필요하다고. 애초에 콘텐츠로 사용해도 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지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흔쾌히 괜찮다고 했었다. 인생은 너무 짧은 것이고, 부끄러움도 영광도 다 덧없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내가 한 낙서가 뭐라고 정말. 좋게 봐줘서 황송할 따름이었다.
바쁘지 않은 듯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자기소개 글도 원래 어제까지는 보내주었어야 했는데, 이렇게 또 지금에서야 화장대에 앉아 자판을 두르기 시작하고 있다. 스터디 발제니 번역이니 다 손도 까딱하지 않고 요령으로만 할 생각부터 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인데 하기 싫고, 좋아하는 사람인데 두렵고, 봄날에 극성인 비염과 집안일 걱정과 몰래 사는 집은 또 어떻고. 모든 것이 두렵고, 힘들고, 또 슬프다.
오늘은 하루 종일, 냉동실에서 언 음식들, 그러니까 편의점 닭꼬치와 노점에서 테이크아웃 한 고추 핫바, 미니 웨하스 몇 피스, 전통 과자 한 개, 그리고 콜라와 게이샤 핸드드립을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고, 혼자 있으면 밥 한 끼 챙겨 먹는 일이 고되게만 느껴지는, 너무나 무거운 하루하루다. 나를 소개하자면, 내가 누구냐 하면, 무엇보다 이토록 연약하고 불안하고 모순적인, ‘사람’이다. 나는 무엇보다 사람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를 주제로 글짓기를 한 적이 었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였던가? 담임 선생님 주최로, 일제히 한 자리에서 글을 쓰는 9반 정기 글짓기 대회가 있었는데, 나는 마침 ‘나’를 주제로 한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었다.
‘자, 시작. 각자 자기 생각을 써봐.’ 4학년 9반 글짓기 시간은 선생님의 시작 외침과 함께 시작되었다. 나를 좋아해 주셨고, 나도 정말 좋아했던 키가 큰 총각 선생님은 아이들이 글을 쓰는 모습을 넌지시 바라보시며 분단 사이를 뚜벅뚜벅 지나 다니곤 하셨다. 선생님은 한 바퀴, 두 바퀴 계속 돌고 계셨고, 친구들이 사각사각 나무 책상 위에 열심히 글자를 눌러쓰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나는 10분, 또는 20분도 넘게 손에 진땀만 쥐고 있었다. 선생님이 내 옆을 지나가시면 무언가 감을 잡고 글을 쓰는 척, 몸을 숙여 텅 빈 종이를 가리고 무언가 쓰는 시늉을 하곤 했던 것 같다.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그렇게 한참 썼다 지웠다를 계속 반복하고 있었던 것 같다. 글의 뒤 흐름을 밀어 낼 제대로 된 문장 한 문장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남들은 반 바닥을 쓰고, 한 바닥을 거의 다 써 가기도 할 무렵, 문득 짝꿍(이름은 조문현)이 쓴 글을 엿보게 되었다. 아마 나는 소가 뒷걸음질 치듯 슬쩍 엿본 친구의 글을 보면서 어떤 맥락을 잡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문현이가 쓴 글을 베껴서, 중요한 문장이나 단락은 거의 베끼다 시피해서 내 방식대로 대충대충 구색을 맞추고, 아귀를 맞춰서 아득바득 써서 내버렸는데, 선생님이 나에게 대상을 준 것이다. 글의 내용은 나에 대한 고민이었다. 나란 사람이 얼마나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인지, 장차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열한 살 아이가 정치인과 같은 그럴듯한 직업을 가진 어른들의 모습에 비추어서 자신의 쓸모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척하는 글을 썼었다. 어린이의 글로써 상을 받기 알맞은 양식이었다. 알맞음에 나를 끼워 넣고, 성취를 위해 기꺼이 모방하여 쾌거를 이루었던 경험이었다.
이후 나는 그 일을 잊어버렸었고,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다. 사실 정말 그럴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4학년이 그쯤의 잘못은 할 수 있지. 이해할만한 일이지. 나는 이해복 선생님이 내 시험지 위에 볼펜으로 어른 글씨체로 써 준 ‘대상’이라는 글자가 무척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회색 빛깔의 그 글짓기 종이는 어린 시절이 담긴 무거운 사진 앨범의 중간, 두꺼운 페이지에 자랑스럽게, 풀로 붙여져 있다. 지금도 집에 가면 빨간 벨벳 표지의 앨범에 그 글이 끼워져 있다. 엄마가 풀로 붙여 기념해 놓았을 것이다. 부끄러움이 유년시절의 순수한 내 모습과 함께 박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놀랍게도 나는, 지금도 열한 살 때와 똑같다. 아직도 나를 어떤 틀에 알맞게 구겨 넣고, 남의 것을 흉내 내며, 기꺼이 자신을 속이고, 치열하게 죄책감에 고민한다. 그런데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 나의 효용이나 나의 의로움에 대한 기대감과 그렇지 못한 자신 사이의 긴장과 들끓음의 세계에서 차츰 멀어져 가고 있다. 대신 힘을 빼는 것, 안식하는 것, 그리고 사랑. 내가 받은 사랑이 무엇이었는지, 나를 지나간 것이, 그 사랑이 무엇이었는지. 그것들만 생각한다. 이제 사랑만 중요해졌다. 나는 사람이었고, 이제 사람에서 사랑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