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셰이크

by jungsin


엄마는 그날따라 왜인지 나를 햄버거 가게에 데려갔다. 그때만 해도 햄버거 가게가 흔하지 않았다. 맥도널드나 버거킹 같은 프랜차이즈는 물론이고, 어떤 햄버거 가게도 흔하지 않았다. 적어도 상계동엔 그랬다. 더 적어도, 나의 세계에는 햄버거 가게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노원역 주변부터 발달하기 시작해, 우리 동네에도 맥도널드가 생겨났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KFC가 생겼고, 롯데리아가 생겼다. 정확한 순서는 아니지만 아마 그와 비슷한 순서로 생겨났을 것이다. 정말 어쩌다 친구들이랑 이태원이나 종로와 같은 시내에 가면 웬디스도 볼 수 있었다.

엄마가 나를 데려갔던 햄버거 가게가 개인 햄버거 집이었는지 체인점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이름도 까맣게 모르겠다. 하지만 대략적인 위치 정도를 알고 있고, 그때의 분위기도 기억하고 있다. 테이블 네댓 개 정도가 놓여있는, 긴 모양의 아담한 햄버거 집이었다. 약간 웬디스적인 발랄한 느낌이 기억이 난다. 아마 전체적으로 하얀색 톤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때 엄마의 표정이나 눈빛을 기억한다. 정확히 말해 날 바라보던 엄마의 느낌을, 기억한다. 환하게, 아주 환하게, 부서질 듯한 사랑이 가득 남긴 눈빛과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밀크셰이크를 먹고 있었다. 아마 햄버거도 함께 먹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햄버거는 기억에서 지워져 있고, 나의 기억 속에서는 밀크셰이크만, 그날 쪽쪽 빨아먹었던 밀크셰이크처럼 하얗고 진하게 남아있다. 그날 먹은 밀크셰이크가,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밀크셰이크였을 것이다. 그리고도 한동안, 몇 년이고 다시 밀크셰이크를 먹어보지는 못했다.

너무나 맛있었다. 하얗고, 달고, 목이 약간 얼얼할 정도의 차가운 얼음 알갱이. 목으로 넘어가는 달콤한 우유맛의 얼음 알갱이는 내 가난한 마음을 가득 채워주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영혼이 가득 차지는 않았다. 엄마의 부서지는 눈빛과 얼굴에 완연하게 퍼져있는 흐뭇한 미소. 그것이 내 영혼 안에 가을밤 윤슬처럼 잔잔하게 가만히 들어와, 차고 흘러 넘실거렸다.

엄마는 밀크셰이크와 햄버거를 먹는 나를 가만히 계속 보고만 있었다. 맛있어? 아마, 그렇게 몇 마디 물어보기는 했을 것이다. 나는 너무나 맛있어서, 그리고 늘 그랬듯 말수가 적고 쑥스러움을 타, 별로 말도 안 하고 먹는데만 집중했을 것이다. 엄마는 그런 나를 방해하고 싶지 않은 것을 물론이고,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오히려 좋았을 것이다. 물론 엄마는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 이후로도 엄마는 한 번도 밀크셰이크를 안 먹어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가만히, 서로 아무 말없이 엄마와 둘이, 햄버거와 밀크셰이크를 먹고 나왔던 신비로운 기억. 그 기억이 왜인지 내 영혼 어딘가에 사랑의 인장처럼 각인되어 있다.

그때 나의 나이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글쎄. 추측해보자면, 고작 열 살에서 열세 살 사이 정도였을 것이다. 조금 전에 홀린 듯, 엄마에게 소매가 이끌리듯, 쉑쉑 버거에 들어가서 밀크셰이크를 가만히 앉아서 먹었다. 치즈 프라이와 함께 먹었으나 이번에도 밀크셰이크만 기억에 남는다. 뱃속과 영혼에, 밀크셰이크의 단맛만 가득 남아있다. 어쩌면 나는 남아 있는 생 동안 온 세상을 밀크셰이크로 감각하고,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하얗고, 달고, 목이 얼얼할 정도로 차가운. 하얗고 얼얼한 사랑의 기억.

고등학교 무렵부터는 프랜차이즈 햄버거 집들이 하나둘 생겨나, 친구들과 교복을 입고 맥도널드에도 가고, 케이에프씨에도 가고, 웬디스도 갔던 것 같다. 친구들과 가까이 붙어 앉아서 프렌치프라이를 쌓아놓고 케첩에 찍어먹는 맛이 그렇게 신기하고 재미있고 맛있을 수가 없었다. 이후로도 수없이 많이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에도 가고, 고급 소고기 패티 같은 것이 든 수제 햄버거 같은 것도 몇 번 먹어봤던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의 그 작은 햄버거 가게 같은 맛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가 없었다. 마치 안개가 하얗게 깔려있고, 안개를 헤치고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 햄버거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날 하루만 문을 여는 햄버거 가게가 있고, 엄마와 나는 그 집의 유일한 손님으로 들어가 밀크셰이크만 하얗게 먹고 나온. 그런 기억으로. 하나의 작은 신비로운 점처럼, 내 영혼에 남아있다.

지금까지도 해소되지 않는 의혹이 있는데, 누나도 있고, 아빠도 있는데. 왜 그날 엄마는 내 손만 붙잡고, 햄버거 가게에 데려갔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그날 나의 기분은, 실은 나만 데려가서 더 짜릿한 느낌으로, 그래서 더 완벽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편애의 짜릿함. 작정하고 사랑하는, 어떤 기울어진 사랑의 풍요로움. 나는 그 사랑의 느낌을 정확히,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 또 사랑받는 일이 얼마나 아름답고 아프고 설레는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사랑하고 싶다면, 그것이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없다는 것까지. 그런 사랑의 느낌들을 너무나,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울고 싶을 땐,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을 땐, 그래서 엉엉 울어버리고 싶을 땐, 그러나 그럴 수는 없으니, 나도 모르게 문득, 밀크셰이크를 떠올린다. 아니면 이즈음처럼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을 때는, 모든 것이 다 가짜 같고 붕 떠 있어 도무지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을 때는, 불쑥 햄버거 집에 들어가 밀크셰이크를 하나 시켜서 쪽쪽 빨아 마시며 생생한 사랑의 감각을 떠올린다. 무자비하게, 머리가 아플 정도로 차갑게 목으로 넘겨버리면서, 차갑게 차갑게, 어떤 묵직한 덩어리를 함께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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