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감칠맛 나고 먹먹한 바디감
정말 이상하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까만 밤처럼 가득하던 날들이 몇 달 동안 이어졌었는데. 그 몇 달이 하나의 점 같고, 1초 같고, 나는 이미 살아있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멍하니, 살아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문득 내가 어렴풋이, 막연하게, 어쩌면 혹시 살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애닲으니까. 애달파하고 있으니까. 무엇인가로 인해 또다시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내가 애달파한다. 마음이 애달프고 몸이 애달프고 영혼이 애닲으다. 그러면 살아 있는 것이 맞나. 이렇다면, 이 정도라면 살아 있다고 해도 좋은 걸까. 저는 살아있나요.
애닲음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감정 중에 하나다. 하지만 가장 살아있다고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격렬히 불안하고 아프고 저린데, 바로 그 이유로 가장 살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즈음 그러니까 나는, 가장 죽어있는 동시에 가장 살아있다. 이토록 이상한 것이 삶이라면, 이토록 이상한 감정들이 살아있다는 것의 증거라면 나는 살아있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몽롱하다. 몽롱하게 죽어 있거나 몽롱하게 살아있는 것 같다.
피아노를 쳐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도저히 이 슬픔과 애닲음과 먹먹함과 우울함, 고통과 불안, 두려움과 설렘과 긴장, 답답함과 분노와 초조함과 같은 감정들을 표현할 자신이 없다. 산문의 언어로는 말이다. 운문의 언어로는 더 자신이 없다. 이 모든 감정들을 표현하고, 이해하거나, 삼키거나, 씹거나, 오물거리거나, 소화하거나, 뱉거나, 마시거나, 노래하거나, 읊조릴 수단으로써, 음악은 어쩌면 글보다 훨씬 더 운문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내가 되고 싶은데. 살아있는 동안은 내가 내가 되고 싶은데, 살아있도록 하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대상이 정작, 나를 내가 될 수 없도록 하니. 아프고 고통스럽고 괴롭다. 삶은 원래 이토록 고통스럽기만 한 건가. 이렇게 슬픈 방식으로 아름다워야만 하는 것인가. 삶은 원래 이처럼 얄궂게 사람을, 사랑을 가지고 우롱하며 가학적으로 아름다워야만 하는 것일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삶이다.
그냥 정말 도망치고 싶다. 이불에서 나오고 싶지 않다. 글만 쓰고 영화만 보고, 책만 보고,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굶다가, 아사를 하든 기절을 하든, 그렇게 서서히 사라져 가고 싶다. 도저히 이 피곤한 감정들 속으로 휘말려 가고 싶지 않은데. 해가 뜨면 또다시 커피를 내리고, 청국장을 먹고, 향수를 뿌리고, 헤드폰을 쓰고 나가서, 또다시 두려워하고, 답답해하고, 먹먹해하다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날들이 한 주 두 주, 한 달 두 달이 이어지고 있다. 인생은 미친 것 같다. 미친 것이어서 인생인가. 이렇게 미쳐 있어서 살아 있는 것인가. 아무튼 나도 인생도 내 감정도 이 초여름도, 다 미친 것 같다. 모두 말도 안 된다. 내일은 냉동실에서 언 바게트를 꺼내서 새로 산 팬에 올리브기름을 두르고 바삭하게 굽고, 계란 프라이 한 네댓 개쯤을 만들어서, 프렌치 프레스로 거칠게 내린 에티오피아랑 먹고 또다시 누워서 책이나 보다가 나가야겠다. 새벽부터 새들이 지저귄다. 풀내음이 방 안으로 스며든다. 또다시, 죽은 듯 살아있는 체하고, 살아 있듯이 죽어 있어야 하는 이상하고 싫은 새 날이 오고 있다.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운 날들이다. 무엇보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나 자신이다. 이해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한심하고 답답하다. 향긋한 에티오피아 커피 향에 취해 머그컵 안으로 들어가 자결해버린 날파리가 나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새벽 공기 좀 들어오라고 열어놓은 창 틈으로 들어왔는지, 어느 새 까만 커피에 둥둥 떠 있는 날파리를 손가락으로 찍어 건져 올리며, 나보다 용기 있고 나보다 더 자기 자신으로서의 삶을 살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