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1. 사랑이란 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말 그것밖에 없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겨우, 가까스로, 한 가지밖에 없는 것 같다. 무언가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요즘 뭐하냐고, 잘 지내냐고, 혹시 누군가 그렇게 따듯한 관심으로 괜찮으냐고 물어오면. 나는, 겨우 한 가지만 붙들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사랑을 생각하고 있다고.
물론 그렇지는 않지. 나름대로 하는 일들도 있다. 밥 차려 먹고 치우기. 청국장 주문하기. 백년초와 백일홍 화분에 물 주기. 수경식물 병 물 갈아주기. 굶기. 자기. 주야장천 갈고 내려 마시는 아이스커피. 교회 일정도 꾸역꾸역 소화해왔고. 동아줄처럼 내려오는 아르바이트 몇 번, 집안일 걱정하고 처리하기. 동네의 아줌마들이 정겨운 수다를 떠시는 미장원에 들어가서 머리 자르기. 그리고 증권. 카톡. 전화로 몇 시간씩 이야기하기. 걷기. 울기.
2. 아프다. 살아있는 동안은 건강하게 웃고 싶다. 항상 울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별 수 없이 웃어야 되는데. 될 수 있으면 건강하게 웃고 있는 표정이었으면 좋겠다. 제발, 어떤 복잡한 세계로도 들어가지 않고. 제발,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그냥 땀을 흘리고. 싸고. 먹고. 그렇게 버티다가 정말 못 참겠을 때 한 번씩 울면서 지내면, 딱이다.
거의 한평생을 쫓기면서 살았는데. 최소한 살아있는 동안은, 이제는 그렇게는 살아있고 싶지 않다. 그렇게, 허덕이면서, 안달하고 애걸복걸하면서. 애지중지, 노심초사. 속고. 지배당하고. 두려워하면서. 쫓기고, 쫓아가면서.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면서. 후회하고 괴로워하면서.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걸 바란다고. 인생이 이렇게 짧고, 또 고요한데.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걸 한다고. 우리가 뭐를 그렇게 엄청나게 대단한 일을 한다고. 다들 미쳤지. 쫓기고 쫓기다가 미쳐 버렸지. 욕망에 삼켜져 버렸지. 옳고 그름들. 종교인들. 장님들. 오만한 사람들. 하나님을 다 안다고 떠드는 한낱 허풍쟁이들.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들. 껍데기만 입고 사는 사람들.
3. 노래를 하는 일은 자기가 가장 듣기 좋은 자기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신앙을 한다는 것도 그런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내 영혼을 찾아가는 일일 거야. 배를 꽉 움켜쥐고 영혼을 다해 웃을 수 있는, 티 없이 맑고 환한 웃음을 찾아가는 일. 영혼이 다 녹아내리도록 엉엉 목놓아 울 수 있는, 자유롭고 맑은 영혼이 되는 일. 적막함 속에서 목놓아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찾아가는 일.
4. 요즘 지내고 있는 곳은 할머니가 많은 동네야. 낮에 동네에 나와 거닐면 곳곳에서 할머니들을 볼 수 있어. 두세 분씩 작은 다리 위나 평상 같은 곳에 앉아 남편 이야기나 손자 이야기를 하시는 할머니들. 빈 유모차를 밀며 절뚝절뚝 걸어가시는 할머니. 폐지 수레를 밀며 걸어가시는 할머니.
엄마가 아직 나와 이 땅에 있었으면 저 할머니들과 나이차가 그렇게 많이 나지 않았을 거야. 엄마도 저 할머니들처럼 약간은 왜소해진 몸으로 그렇게 동네에서 바람을 쏘이며 권사님들과 담소를 나누고 계셨을 거야.
아직 낯선 이 동네에 있는 한 감리교회 앞 길거리에서 아주머니나 할머니 권사님들과 지긋하신 남자 성도님들이 한 손에 성경책을 끼고 걸어가는 주일 낮의 풍경을 봤어. 내가 사랑했던 장면이었어. 일요일 낮에 성도들이 교회에서 나오는 풍경. 정겹고 단정하고 뽀송뽀송하고 까슬까슬한, 요즘과 같은 초여름날, 주일 이른 낮에 교회 앞에서 환하게 웃고 인사하고, 발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돌아가는 어른 성도들의 모습. 바싹 마른 면티 같은. 주일 예배가 끝난 뒤의 교회 앞 길거리 풍경.
모성애가 사무치도록 그리웠어. 머리를 잘 자를지는 알 수 없었어. 조금 망설이다가 아주머니 세 분이 가벼운 수다를 떨고 계신 미장원의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갔어. 아무리 머리를 망쳐도 괜찮았어. 이미 나는 일요일 낮의 엄마를 잠깐 만나고 왔어.
돈이 얼마든 상관없었어. 의자를 눕히고 싸구려 향이 나는 대용량 샴푸로 머리를 감겨주고, 옛날 젤을 푸닥 푸닥 발라줘도 괜찮았어. 집에 와서 다시 감으면 되니까. 다 좋았어. 모든 것들이 나한테는 엄마 냄새의 일부였으니까.
5. 계속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 울다 지쳐 잠이 들어도. 상쾌하게 씻고 박스 위에 도마를 얹어놓고 밀키트 청국장을 데워 아침을 차려 먹어도. 계속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 교회를 가도. 웃어도 울어도. 그것 하나만 생각하고 있어.
6. 비가 온다. 장마가 시작됐다.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