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인생이 이렇게 짧은데 이런 커피를 마셔야 할 이유가 없다.
1
큰 머그컵에 담긴, 두 번째 내린 커피 모음을 버렸다. 어디서도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는데 나는 드립 커피를 두 번씩 내리고는 했다. 아무리 맛있는 원두로 내린 커피라도 두 번째 내린 커피는 잡미와 텁텁한 맛이 난다. 핵심적인 맛이 거의 빠져나간 커피의 맛이지만, 커피 초보의 입맛에는 어느 정도 꽤 그럴싸한 커피 맛이 난다고 느끼기도 했고, 딱 한 번만 내리고 버리기에는 원두가 아깝기도 했다.
그렇게 두 번째 내린 커피를 머그나 텀블러에 담아두고는 했다. 새로 내리기 귀찮을 때나 바쁠 때는 그거라도 데워먹거나 찬 얼음을 담은 텀블러에 부어서 가지고 나가곤 했다. 그런데 문득, 커피를 두 번째 내리고 이곳저곳에 부어놓았던 것들을 큰 머그컵에 모아 놓은, 믹스드 세컨드 드립 커피를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그를 들어 그대로 싱크대에 버리는데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버리지 못하는 마음의 잡미들을 함께 버리는 느낌이었다.
2
김겨울의 아무튼 피아노를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는 피아노를 사랑하기 때문에 피아노가 두려운 것이다.’ 사랑하는 만큼 두려워한다는 말은 정말이다. 구약의 예언자들처럼 정말로,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도 할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을 리 없다.
삶은 끝이 있기에 매 순간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집중하는 일은 시간에 대한, 삶에 대한, 나 자신에 대한 일종의 해태함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죽음이 두려운 만큼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
3
김광민이란 피아니스트를 정말 좋아하는데, 실은 뭘 알고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선지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음악 문맹이다. 그러한 내가 보기에도 그가 피아노 앞에 서서 보이는 태도랄까, 음악을 대하는 그 특유의 어떤 경건한 감상을 볼 때면 너무나 뭉클하고 설레는 것을 느낀다. 진지하고 짜증스럽게, 미세하게 찌푸린 미간. 말을 할 때, 특히 가벼운 조크 같은 것을 할 때는 온순하고 약간 멍청해 보일 만큼 풀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눈매가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누를 때는 눈두덩이에 무겁고 그윽하게 힘이 들어가고 동공이 커지면서 매서워진다.
피아니스트라고 하기에는 조금 크고 두터워 보이는 손가락으로 건반 위를 차분하게, 인생에서 그에게 중요했던 어떤 것들을 일제히 체념한 듯 차갑게 오고 가는 그의 연주는 정말 나로 하여금 사무치도록 아프고 설레도록 한다. 그러한 면모 때문에 나는 그를 다른 기술적인 피아노 플레이어와 다른 차원에서 인식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예컨대 그것은 조성진이나 손열음 임윤찬 김선욱 같은 클래식 피아니스트들도 가지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기술이 아니라 영혼을 주신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실은 그것이 모든 것이다. 그러한 지점이 언제나 뭉클하다. 한 사람의 은밀한 영혼을 발견하는 일은 내게 아름답고 벅찬 순간들이 된다.
4
언젠가 잡지에서 illy 커피의 모토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문구였다. ‘일리 커피는 한 잔의 에스프레소에 집중하겠습니다.’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이렇게 쓰여 있다.
Mission
일리는 완벽한 한 잔의 커피, 즉 감각과 정신으로 모두 즐길 수 있는 한 잔의 커피를 개발하는 데 계속적으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완벽함을 추구하는 이유는 언제나 그보다 더 높은 목표와 제공해야 할 더 좋은 맛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잔의 커피는 단지 음료가 아니라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기업 가치나 철학이라고 쓰여 있지도 않고 Mission이라고 쓰여있는 점도 눈에 띄고, 기업이 지향하는 가치를 이렇게 언어로 세밀하고 분명하게 써놓은 점도 인상적이다. 이 기업이 내세우는 가치의 표현으로 또 ‘raw 하다.(익히지 않은, 날것의…)’는 단어가 있었다. 예전에 교회에 자소서를 쓰면서 이 표현을 차용해 저는 raw전도사입니다 라는 문구를 사용하면서 인포그래픽으로 인생 그래프까지 그려서 뿌리던 때도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의 교회에서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교회들이 원하는 것은 일정한 운신의 폭 안에서 역할을 충실히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었을 텐데 뭐가 익히지 않고 날것이고… 샤부샤부와 찜이 되어서 그 교회에 축 잠겨도 모자랄 판에 날것이라니. 당연히 까일 수밖에 없는 표현이었다. 나는 당시 카페에서 밤새 자소서를 쓰며 혼자 흐뭇해하면서 raw를 유독 큰 폰트로 진홍빛 컬러로 강조해서 새겨 넣었었다.
5
좋은 커피는 깨끗한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마신 뒤에도 기분 좋은 맛이 뱃속에 남아있다. 깊고 그윽하면서도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감칠맛 같은 것. 위로가 필요한 시간들이다. 괜찮아. 이해해. 이 말 외에는 텁텁한 여운을 남긴다. 텁텁한 만남, 텁텁한 사역, 텁텁한 사람. 모두 raw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