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통 의미를 알 수 없는 감정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어지럽게 난동 부린다.
온통 추상적인 느낌으로 얼룩져 있는 감정들의 공통점은 아프다는 것이다.
언어로 표현해 낼 자신이 없어서, 또 늘 여러 일들로 힘들어 쓰지 않았었다.
거의 아무 것도 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바로 이 아무 능력도 효력도 없는 글을, 아예 쓰기를 시작하고 있지도 않기 때문에 더 마음이 답답했던 것만 같다.
누군가라고 하자.
누군가를 볼 때면 좋아한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립다고 느낀다.
너무나 이상한 점이다.
이마를 간지럽히는 달큼한 봄바람처럼 아프고 달콤하다면 이것은 너무나 쉽고 분명하게 ‘좋아하는 것’이 맞는데.
두려워 잘 바라보지 못하다 용기 내 고개 돌려 누군가의 검고 진한 망채와, 놀람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내 망채가 부딪혀 마음이 부서질 때, 강제 철거된 건물의 벽돌 조각처럼 마음에서 부서지는 단어들의 이름이 ‘좋아.’가 아니라 ‘그리워.’라니.
이유를 알 수 없다.
지금도 나는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모른다.
너무나 지루했던 7교시 지구과학 수업이 끝나고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서 한낮의 잠꼬대를 하는 건지.
아니면 깊은 새벽, 너무나 배고파 이렇게 장맛비가 계속되는 날들에 눅눅해진 마늘 바게트를 한 입 베어 물 때처럼, 세차게 씹어도 아무 씹는 소리도 나지 않고 그렇게 대단한 맛도 나지 않는 것처럼, 써봐야 아무 짝에도 쓸모없고 아무 필요도 없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엄마가 옥상에서 여러 가지 화분과 식물들을 다듬는 사진을 보았다.
파나 상추, 토마토.. 그 외 여러 가지 식물들.
엄마. 엄마.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시편의 시인들은 원망과 탄원, 저주를 쏟아 붓다가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의 나라를 찬송하던데.
나의 영혼의 시라는 것은 도무지 아직 이런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도다! 아름답도다! 내 것이 아니도다! 내 것이 아니도다! 이 세상의 소중한 모든 것들은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니도다!
살아있다는 것이 이처럼 늘 애타고 목마르고 허기지고 치사한 것들 투성이라면, 도대체 당신을 무슨 기쁨으로 찬양할 수가 있습니까 주님.
장맛 바람에 솨솨- 하고 흔들리는 저 나뭇잎들처럼 푸르고 싱그러운 냄새 흩날리면서 저도 기쁨의 찬송 불러보고 싶은데.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 부디 알려 주세요.
맛있는 것을 먹거나 좋은 것을 보거나 무엇을 해도 허전하고 아프고 슬픈데.
그럼 저는 참기름처럼 제 모든 슬픔을 짜내어 이것은 기쁨이다, 웃음이다, 자유다, 쉼이다, 스스로 속이며 당신을 찬송해야 합니까?
당신은 정직하신 분.
저도 당신처럼 정직하기를 원한다면 저는 무슨 기쁨을 근거로 당신을 찬송해야 합니까?
진정한 성직자처럼 세속을 떠나 당신을 기뻐하고 당신의 기쁨과 슬픔에 공감하며 당신이 사로잡힌 사랑의 정념을 전하는 삶을 살고 싶은 소박한 꿈을 가졌을 뿐인데.
당신은 왜 저를 이렇게 캄캄하고 추운 곳으로 내던져 버리시는지.
제가 처한 이 삶도 낯설고 당신도 낯설어서,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서 눈물도 멎어버렸습니다, 주님.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을 기다리는 일뿐.
과연 당신이 이 시궁창처럼 어둡고 쾌쾌한 곳까지 날개 쳐 오실 수 있으신 분이신지, 아무 확신도 가지지 못한 채 당신을 기다리는 것뿐.
과연 당신이 말문도 눈물도 찬송도 심장도 멎어버리고 엄마와 함께 냉동고에 얼어버린 제 영혼에 온기를 주고 저의 언 마음을 녹이실 수 있는 분이신지 시험해보는 것뿐.
어린 시절 부모님이 나가신 큰 집에서 현관문에 매달려 놀다가 깨트린 현관문 유리가 무릎에 깊이 들어간 날, 피를 마룻바닥에 뚝뚝 흘리고 웅크리고 걸어가 안방 벽에 기대어 앉아 울고 있던 날처럼, 이 유리조각을 누가 빼내고 이렇게 끔찍하게 크고 징그럽게 찢어진 무릎을 누가 꼬매 줄 수 있을지 기다리는 것뿐.
침묵하는 것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아무 힘도 없는 글을 두드려 보고 건반을 두드려 보는 것뿐.
배고파.
온통 그리움으로 내 온 영혼이 배고파, 허기져하다가 이렇게 굶어 죽는 것이 나의 소명.
이렇게 그리워하고, 당신 가슴 치고 나의 가슴 치다 울다 지쳐 죽는 것이 나의 운명.
숨죽여 기다립니다.
엄마 손 붙잡을 날을.
이토록 흐물흐물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의미로 가득한 당신의 시간을.
또는 사랑을.
또 어쩌면 바로 당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