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끙끙

by jungsin



키케로는 말했다. 책이 없는 방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고. 예전의 나였다면 격하게 긍정하며 반겼을 격언이지만, 왜인지 이즈음의 내게는 별로 공감되는 말은 되지 못했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 책을 안 봐도 얼마든지 영혼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이 대학의 연구실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매개로 자신의 자의식만 팽창시키고, 지식의 부피만 늘려가는 동안 어떤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펼쳐가는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없는, 독특한 경험과 특별한 만남 -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아주 특별하고 중요한 만남들인데, 이토록 중요한 만남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신과의 만남, 사람과의 만남, 신을 통한 (정말) 사람과의 (정말) 만남, 사람을 통한 (정말) 신과의 만남. - 을 통해서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성격이나 습관이 바뀌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적으로. 영혼으로써.


둘째로, 책을 아무리 많이 보아도 영혼이 1g도 채워지지 않은 듯한, 핍절하고 외로운 영혼들을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매직아이를 하는 것처럼 아무리 열심히 뚫어져라 책을 보아도 목마른 영혼은 그대로이며, 지성인다운 면모도 빈약한 사람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 그들이 책을 보는 일에 영혼을 팔아넘긴 이유는 다양한데, 가령 책을 보아야만 이룰 수 있는 성취에 대한 미해결 과제가 영혼의 숙제로 남았다든지, 지성 제일주의에 매료되어 지성인을 모방하는 삶을 따르게 된 것과 같은 경우일 것이다. 그들은 책을 읽을수록 더 자신이 견고해진다. 무한히 개방되어 있어야 마땅한 읽고 쓰는 일조차 닫힌 체계로써 행해질 뿐이다. 책은 그러한 이들에게는 자신의 영혼을 열어주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신과 책과 지성과 성취와 팽팽하게 긴장하다가, 세상을 영혼에 담고, 세상을 향해 영혼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는 기회를 다 지나쳐, 결국 삶의 본질을 놓쳐 버리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에 재주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대단한 지성도 독서도 사랑하는 일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오직 그림책 몇 권을 가벼이 넘겨 보았을 뿐인 어린아이들의 영혼이 가장 충만하고, 그들의 사랑이 가장 풍요로운 것일 수 있다.


나에게 책은 영혼과의 스킨십 같은 것이다. 하루 종일 감정적으로, 이성적으로 소진되고 지치고 사람들과도 헤어지고, 어스름한 어둠이 깔릴 즈음 터덜터덜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책은 사기도 하고 사지 않기도 한다. 책을 사고 소유하는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기대어 냄새를 맡고 쉬고 울고 웃으며, 안기는 일이다. 어쩌면 책은 이제 점점 나에게 모성 같은 것이 되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기댈 수 있는 품. 선크림을 묻혀가며 칭얼거리고 눈물을 적실 수 있는 어깨. 그러다 뭉친 마음들이 풀어져 곤히 잠들 수 있는 넓적다리. 나를 풀어놓는 대상으로써, 조금은 이상하게, 이상토록 뭉클하게 난 책을 사랑하게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어떤 귀소본능을 따르듯, 차갑고 고요한 호수에 드리운 안개같은 그리움에 이끌리듯이 이렇게 한번 더 쉬러 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또 서점. 정신을 차려보면 또 엄마의 가슴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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