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앉아

by jungsin


엄마가 그러시고 난 다음 해 여름. 나는 처음으로 스타벅스 e프리퀀시를 받지 않았다. 아득한 은하계 우주처럼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원래 매 해, 거의 매 시즌 e프리퀀시를 적어도 두 개 정도는 모아서 증정품을 톡톡히 받곤 했었는데. 이번에도 스타벅스 프리퀀시는 모두 채웠는데, 까맣게 하얗게 잊고 있었다.


나의 비밀의 집에는 dvd 플레이어와 캡슐 커피머신, 유럽산 공기청정기, 고급 오븐 겸 전자레인지, 고가의 디지털 피아노를 사두었다. 하지만 쓰레기통과 침대, 밥솥, 식탁은 없다. 가구는 원래 있었던 붙박이 장롱 외에 화장대뿐이다. 피아노는 전혀 칠 줄 모르는 채 산 것이다. 벌써 산지 두어 달은 지난 것 같은데, 겨우 김광민의 어느 곡 멜로디 몇 소절을 땅땅땅 두드릴 수 있을 뿐이다. 이대로라면 베토벤 쇼팽은커녕 일 년이 지나도 찬송가 반주 한 곡도 연주할 수 없을 것이다.


혼자 살면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갖추지 않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나는 본질적인 것, 꼭 필요한 것은 다 피하고 있다. 틸리히나 바르트나 불트만 같은 조직 신학 책도 봐야 하고, 성서도 공부해야 하고, 소설도 읽어야 한다. 정말 사람답게 살 생각이 있으면 누군가 만나기라도 해야 하고, 그러려면 대충 다닐만한 직장을 정하거나 작은 사업이라도 해야 한다.


최근에는 지금 속한 교회에서도 기초적인 모임에 나가는 것 외에는 거의 활동하지 않게 되고 있었다. 그리고 돈을 많이 잃어버렸다. 아주 많이 말이다. 이제야 정신이 좀 들면서 생활에 약간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돈의 손실 자체가 그렇게 큰 절망이 되지는 않는다. 그런 것들에 무심한 내 모습이 걱정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슬로비디오처럼, 수채화처럼, 현대 미술처럼 이런 나와, 나의 삶을 여유롭고 한가하게 바라보고 있다. 근원적인 것이 흔들리면 삶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얼마나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신경을 쓰고, 삶을 허비해 오고 있었는지. 살 생각이 정말 없는 것인지. 살 생각이 없다면, 정말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로 갈 수 있을 것인지. 살 생각이 있다면 무엇이 내게 가장 근원적인 희망이 될 것인지. 그런 것들을 깊이깊이 생각해야 하는데. 그리고 살 것이면 살고, 안 살 것이면 말아야 할 텐데. 그렇게 본질적인 것들은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


동네의 한 작은 태국 식당에 처음으로 혼자 찾아가 쌀국수 한 그릇을 먹고, 리모델링한 빵집에 가서 곡물빵과 샌드위치, 러스크를 사고, 슈퍼에서 큰 우유를 사고, 반찬 가게에 들러 깻잎 무침과 두부조림을 사고, 마지막으로 이제 한적한 카페에 와서 아인슈페너를 시켜놓고 홀짝이며 마시면서, 이렇게 한가롭게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수염은 덥수룩하게 자라나 털보 아저씨가 되었고, 헤드폰으로는 임동민과 김광민을 듣고 있다.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나는 너무나 건강하고. 이대로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어쩌면 나는 다섯 해를, 어쩌면 열몇 해를 더 살게 될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이 정말 종이 한 장차이라는 사실이 참 신비롭다. 이렇게 카페 통창 밖으로 바라다 보이는 고즈넉한 저녁 풍경을 앞에 두고, 당장 지금이라도 숨을 쉬지 않으면, 이대로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들을 하면 삶이, 산다는 것이, 참 얄궂을 정도로 사소하고, 별것도 없는 것처럼 생각된다. 반대로 아주 지극히 거룩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들과 아옹다옹하는 것도,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도, 모두 아름답고 숭고한 일로 느껴진다.


몇 해 전 어느 날처럼,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창가에 앉아, 달빛이 외국의 한 해안가 작은 마을 위로 떨어지는 모습을 경이롭게 바라보듯이, 반쯤은 넋을 놓고 삶을 바라보고 있다. 분명히 내가 살아가고 있는, 내 삶인데도 3인칭처럼 느껴진다. 관조적이고 몽환적인 3인칭 관찰자 시점. 이게 내가 살고 있는 나의 삶이 맞는 것인지 불확실하게 느껴질 정도로, 삶의 시계와 살아있다는 모든 감각이 뿌얗다.


하지만 괜찮다. 정말, 그래도 좋다고 느끼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예술이나 신학이나 글이나 책과 먹을 것 같은 것에 흠뻑 빠져 있어야 한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고통을 피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아무래도 괜찮다고. 어쨌든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고. 사랑해야 한다고, 엄마를 사랑해야 한다고. 이 모든 것을 내 방식대로 사랑해야 한다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무엇을 얻거나 잃어버리거나, 살거나 죽는 것보다, 그런 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것일 터다. 정말, 사랑한다면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