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삶 쓰기

by jungsin



글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경험과 가치관을 구체적으로 고스란히 반영하는 완전 투명 매개체다. 그가 갖고 있는 종교가 무엇인지, 미래에 관해 디스토피아적 전망을 갖고 있는지 유토피아를 믿는지,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 외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 그가 청소년기에 좋아한 연예인이 서태지인지, 에이치오티인지. 그가 요즘 소설을 읽고 있었는지 자기 계발서를 읽고 있었는지. 좋아하는 이성이 생머리에 핏기 없는 새하얀 피부의 서울 여자인지 단발에 활기 있고 연갈색 피부를 한 대구 여자인지와 같은 것에 이르기까지. 그의 안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이 펜 끝을(자판을 치는 그의 손가락을) 타고 그가 쓰는 문장에 고스란히 담긴다. 글을 사랑하고, 그래서 더욱 진심으로 쓰고 싶어 고민하는 사람일수록 그렇다. 그런 사람의 글에는 그의 삶과 경험의 향기가 밴다. 한 문장 한 문장마다, 결코 누구도 그와 똑같을 수는 없는 독특하게 아름다운 개인으로서, 글을 쓰는 한 사람의 온 영혼이 실리는 것이다.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쇼팽이나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삶과 그들이 쓴 악보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 피아니스트의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의 부모님은 어떤 사람이었는지와 같은 것이 하나도 어디로 도망가지 못하고 일제히 그의 연주에 반영되듯이, 그의 예술가로서의 영감이 진지한 숙고를 거쳐 그의 온 발끝과, 손목을 타고 마침내 목건반에 닿아, 그만이 가진 독특한 세기와 날카로움을 가지고 터치되듯이, 글을 쓰는 이는 온 마음을 담아 정성껏 한 문장 한 문장을 눌러쓰고, 가능한 한 아쉬움을 남기지 않도록 써나가며 결기 있는 마음으로 마침표를 찍으면서, 연주를 하듯 지면을 채워나가야 한다.


하지만 실은 삶이 더욱 그래야 한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그의 글이 그렇고, 피아니스트에게 연주가 그런 것이라면, 삶은 더욱 그러한 태도로 살아 나가야 한다. 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삶을 그보다 더욱 사랑해야 한다. 그가 방금까지 쓰던 글처럼, 진심으로 누군가를 정성 들여 한 문장 한 문장 사랑해야 한다. 그가 믿는 종교나, 일이나, 전공 분야와 쉼이 그래야 한다. 정말 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처럼 삶을 열정적으로 사랑해야 한다. 그는 자신이 보내는 모든 시간과 공간을, 그가 먹는 모든 음식을 정성껏 대해야 한다. 글을 쓸 때 단어의 선택과 표현의 뉘앙스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듯이, 삶이 우리에게 허락한 짧은 시간들을 정성껏 고민하며 하루하루, 한 장 한 장 정성껏 불태워 후련한 재처럼, 후회 없이 하늘로 날려 보내야 한다. 예술이 죽음처럼 가치 있고 숭고한 것이며, 죽음이 경악스러울 만큼 두렵고 장엄한 것이라면, 살아있다는 것은 그것들보다 더욱 가치 있고, 경악스럽고, 숭고하고, 두려운 것이리라, 어떤 연유로 우리는 짐작할 수 없었는가.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오늘 하루도 살아있어도 좋다고 말씀하시는지, 그의 가슴속에 담고 있는 뜨끈한, 그것이 어떠한 것이길래, 무슨 사랑을 과연 어떻게 그렇게 극성스럽게 하실 수 있었는지, 그러한 것들을 스치듯이만 알게 되어도 아마도 내가 나의 시간과 삶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보다 더 끔찍하고 경악스러운 것은 없을 것이다.


살고 싶은 만큼 죽고 싶다는 생각과 죽고 싶을 만큼 살고 싶다는 마음이 매일 얼굴을 달리 하여 파도쳐 온다. 그런 마음을 이러한 생의 소명에 대한 생각으로 집중시키고 설득하려 한다. 나는 어떤 낯선 바닷가에서 서성이고 있다. 그곳에서 난, 머리 풀어헤친 미친 여자처럼 홀로 서서 매일 절규하며 엉엉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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