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펑
마법처럼,
크리스마스처럼,
흰 눈처럼.
흰 눈과 글쓰기는 어딘지 닮은 데가 있다. 글쓰기가 하얀 화면을 문자로 지워나가는 일이라면 눈은 너저분한 말의 세계를 하얀 눈으로 덮어버리는 일이다.
눈이든 글이든 뒤덮어버리는 일이다. 거짓말처럼 깨끗하고 하얗게 만들어버리는 일이다.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다.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만들어버리는 일이다. 특히 복잡하고 골치 아프고 눈물 나는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 한숨과 걱정뿐인 생각들을, 마법처럼, 크리스마스처럼, 지우고, 덮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다. 마법처럼, 크리스마스처럼, 오늘 내린 흰 눈처럼.
또 사랑하는 일이 그렇다. 사랑하는 일도 무엇보다 지우고 덮는 일이다. 복잡한 말과 규칙 체계와 옳고 그름으로 이루어진 서로의 인생을 시처럼, 키스처럼 무자비하게 덮고 간결하게 추앙하는 일이다. 불필요한 말들을 지워가고, 무력한 어둠을 끌어안는 일이다.
한 편의 시처럼,
희고 큰 눈덩이 같은
산문을 굴려보고 싶다.
언젠가 시와 같은 글을 써보고 싶다. 시처럼 사랑해보고 싶다. 이래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이래도 두려워하지 않을 테냐고 위협하는 기세 등등한 세상을, 피할 수 없는 이별을, 매끈한 한 절 시처럼 따돌리고, 피하고, 지워가 보고 싶다. 괜찮아 한 마디로, 가벼운 키스 한 번으로 덮어버리고 싶다.
사실은 사는 일이 그렇다. 모두, 죄다, 지우고 덮어나가는 일이다. 시간을 지우고, 상처를 지우고, 죄를 지우고, 분노를 지우는 일들이다. 그런 일들이 되어야 한다. 그 자리에 기쁨, 유머, 웃음, 넘어감을 채워가며, 하루하루 잊고 덮고 메우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즐겁게 채워가지 않는다면, 한 편의 눈물 나는 코미디처럼 덮어가지 않는다면, 입에서 녹는 연어나, 목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육회나, 오감을 간지럽히는 프랑스 요리처럼, 향기롭게, 부드럽게 위로하며 지나가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이란 얼마나 퍽퍽한 것인가.
아름다워야 한다. 어찌 되었든 아름다워야 한다. 좌우지간, 닥치고, 됐고, 알았고, 괜찮고. 아름다워야 한다. 온 힘 다해 아름다워야 한다. 모든 예술은 아름다워야 할 의무가 있다. 운문도, 산문도, 성악도, 국악도, 그림도. 아름다워야만 한다. 사무치도록 아름다워야 한다.
예술은, 예술처럼, 추함과, 죄와, 절망과, 의기소침함과, 생각하면 소름 끼칠 만큼 두려운 나의 모순을 사력을 다해 덮어야 한다. 젠틀하게, 스파클링하게, 트림처럼, 방귀처럼, 위트 있게, 시원달콤코믹하게. 눈물겹게 지나가야 한다.
일일이 따져 물어도, 정밀하게 분석해도, 거칠게 항의해도 소용없다. 그렇게 해도, 그렇게 하지 않아도 지나가는 일들이다. 우리의 삶에는 지나감이라는, 덮음이라는 선물이 있다. 쉬지 않고 지나가고, 또 덮쳐오는 시간이 있다. 온 힘 다해 덮으려 달려드는 사랑이 있다. 사랑이 있어 다행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아름다움이 있어서.
우린 그런 것들에 주목해야 한다. 예술이나 신학이나 철학은 그처럼 눈물겨운 젖가슴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온 세상을 거짓말처럼 하얗게 덮어버리는 흰 눈에. 우리 죄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무모하고 우아한 사랑에. 그렇게 위트 있고 진정한 것들에 주목해야 한다. 넘어가는 것들에, 거칠게 덮어버리고 사랑하는 것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