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손 수, 지을 제. 손으로 만든 제품.)’
핸드 메이드 넥타이, 수제 돈가스, 수제 구두, 수제 마카롱, 수타 짜장면, 수타 피자. 수제 첼로. 수제 피아노.
‘수제’에 프리미엄 페이를 해야 하는 시대. 수제가 희귀하고 비싼 시대.
원래 인간은 처음부터, 도끼든 칼이든 밥그릇이든 국그릇이든, 모든 것을 손으로 만들지 않았나. ‘물건을 기계로 만들다니. 기계로 만든 물건이 너무 신기해.’라고 생각하며 공장에서 만든 희귀품을 더 비싸게 주고 사는 세상이 와야 했다. 그런 세상이 건강한 세상이었을 것이다.
거의 모든 시민들이 손으로 만든 음식을 먹고, 손으로 만든 옷과 가방을 걸치고, 손으로 만든 자전거를 타거나 손으로 길들인 말을 타고 일터와 집을 왕복하는 사회. 적당히 수고하고 적당히 돈을 벌어서 적당히 먹고 적당한 정도로 웃고 울며 서로를 바라보며, 사랑하는. 사람 냄새와 사람의 사랑 냄새가 풀풀 나는 사회.
그런 사회는 이제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시대는 소수의 자본가가 큰 공장과 높은 빌딩을 지어 자본을 독식하는 세상이다.
아디다스. 올리브영. 맥도날드. 스타벅스. 아이폰. 탑텐. 24시간 엔제리너스. 기성복, 기성품. 그리고 종교적(청교도적) 계율과 브랜드 교회. 그 모든 것들이 나를 깎아 기성인을 만든다.
나는 기성품 사람 제품이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21세기의 여느 성인 남자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뻔한. 어쩌면 유럽의 어느 한국학 전공 대학생 정도라면 아직 나를 인격적으로 모른 채, 내가 입은 옷이나 나의 사고방식이나 건강 상태를 모두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너무나 뻔하니까. 너무 예상 가능한 어른이 되어 버렸으니까. 정말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나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도 한국의 문화와 종교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면, 이전에 어디선가 한번쯤 만난 사람인 것처럼 충분히 나를 익숙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기괴하고 끔찍하다.
거의 모든 제품을 파는 초대형 온라인 플랫폼에서 맞춤 구두와 맞춤 양복을 산다. 나이키 운동화를 싸게 파는 곳에 한 시간씩 버스를 타고 가서 몇만원 싸게 파는 거대한 창고형 나이키 매장에 들어가 흥분하며 예쁜 운동화를 이것저것 신어본다. 그러다가 배가 고플 무렵 맥도날드에 가서 콜라가 수도물처럼 나오는 기계에 앞에 서서 플라스틱 얼음컵에 코카콜라를 담아와 자리로 혼자 걸어가 가만히 앉아 런치 빅맥 세트를 우걱우걱 씹어먹으면서 코카콜라를 쪽쪽 빨아먹는다.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좋은 학교와 가정 환경이 필요했고, 그 모든 것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돈이 중요한 요소였다. 내가 살아온 시대에서 너무나도 중요했던 것은 돈과 물질이었다. 자본주의였던 것이다.
종교적으로는 미국의 북장로교회 선교사나 호주, 영국, 캐나다 등지의 영어권 선교사의 청교도주의적 복음주의 사상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러한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본래적이고 정통적인 개신교의 원류(원래의 개신교의 흐름)에 대한 공부가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기독교 교육을 받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또 다시 돈이 필요했다. (진정성 있는 유학 공부를 한, 살아있는 지성인이 가르치는 대학 안으로 뛰어 들어가야 했던 것이다.)
아무튼 나는 지금 그다지 다른 사람이 되지 못했다. 정말 그러지 못했다. 침신하지도, 눈에 띄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이 되지도. 내심, 특히 어떤 시절에는, 그러지 않고자 부단한 애를 쓰기도 했지만 어느덧 나도 기성품 인간이 되고 말았다. 기성품 신앙을 하고 기성품 글을 쓰고 기상품 핏자를 먹고 기성품 웃음을 짓는. 그리고 나의 아픔과 이웃의 아픔에 대해서조차 기성품의 눈물을 흘리며 우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어느덧 순수했던 소년이 기성품 기독교인이자 기성품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이 짧은 생에서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