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하고 바게트, 그리고 떨림

by jungsin



사야 할 것. 우유. 바게트.


이따가 교회 갔다 돌아오면서 우유하고 바게트를 사야지. 잊지 말아야지. 생크림도 사놓았고, 어제 버터도 샀으니까. 바게트를 꼭 사야지. 잊지 말자.


우유와 바게트. 우유, 바게트. 바게트, 우유.


주식을 사고 팔고. 물건을 사고 팔고. 씻고, 청소하고, 말도 안 되는 요리를 하고. 티브이 앞에 놓인 책 박스 위에 음식들을 가져다 놓고 멍하니 티브이를 보면서, 울며 웃으며, 먹고. 싱크대 위에 그릇들을 두고 물을 틀고 설거지는 미룬다. 맨바닥에 대충 누워있다 그대로 잠든다. 찬 새벽 공기에 잠 깨어 창을 닫고 보일러를 틀고 머리를 감고 양치를 하고 이불을 덮고 잔다. 다시.


약속을 하고, 허겁지겁 쫓기듯 뛰쳐나가서 자전거를 타고 허벅지가 터져라 자전거를 구르고, 송골송골 등과 얼굴에 식은땀.


바게트, 우유. 바게트와 우유. 잊지 말자. 토트넘 경기가 언제지? 오늘 하면 좋겠다. 오늘은 안 하네. 10월 1일, 네이버 캘린더를 새삼 설치하고, 알람 등록을 해놓고. 어디에서 하루의 위로와 즐거움을 찾지.


우유와 바게트. 돌아올 무렵 그 빵집 문 열었을까? 우유는 어디서 살까. 우유하고, 바게트.


문득. 아.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닐 텐데. 이렇게 살다가, 살다가.


설렘이 쏙 빠졌다. 그리움이 거의 다 날아가 버렸다. 어떤, 뜨거움들이 이토록 차갑게 식어 버렸다. 드라이아이스가 다 날아가 텅 비어버린 배스킨라빈스의 드라이아이스 껍데기처럼 가장 중요한 것만 쏙 증발되어 버렸다.


다시, 그리고 다시. 우유하고, 바게트. 우유, 바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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