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만한 산문

by jungsin


1

마음도 달리기를 한다.

앳된 노루처럼 쫓긴다.


여러 가지 일들을 동시에 생각한다. 양손에 다른 할 일을 들고 있다. 혼비백산이 되어 허둥지둥한다. 그러다 몸과 마음이 급격히 피곤해지곤 한다. 문득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멈춰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건 아니잖아. 이러자고 이러고 있는 건 아니었잖아.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 나는 조용한 음악을 듣곤 한다. 끓는 물에 차가운 물을 붓듯이 차가운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을 식힌다. 그럴 때면 신비롭게도 생명력이 살아나고 오히려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


최근까지는 쇼팽을 많이 들었고 요즘에는 바흐를 많이 듣는다. 대중음악은 특별한 계보나 취향이 없이 듣는데, 공통점이 있다면 산소가 많은 음악들이다. 산소가 많은 음악이란 실제로 보컬에 숨이 많이 들어 있는 곡인 경우도 있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진정성이 있는 음악’이다. 또는 음악이 시와 같아서, 시를 듣는 것 같아, 행과 행, 연과 연 사이의 여백에서 내가 쉴 수 있는 음악과 같은 것이다. 진정성이 있는 음악은 시와 같고 시와 같은 음악에는 산소도 많다.


어렸을 때는 윤상, 윤종신, 유희열, 김광진과 같은 음악들이 그랬는데 요즘은 잘 듣지 않는다. 시대가 변했는지 그들의 열정이 변했는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공기가 달라졌는지, 왜인지 이제 그들의 음악에서 산소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2

개미는 청포도를 참지 못한다. 죽이기 싫어,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 한 마리 두 마리 손가락으로 콕, 살짝 찍어 화장실 창밖으로 버리기를 한두 번 왕복하고 쉬려고 누우려 하는데 개미가 두 마리 정도가 아니라 여섯 마리 열두 마리 스무 마리가 보이는 것이다. 청포도 향이 무척 달았는데, 이 단 향을 개미는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이 있는 곳에 개미가 있다. 평소에는 한두 마리만 나오곤 하고 대다수 숨어있던 개미들이 청포도의 단 향에 와장창 무너지고 말았다. 대학살 또는 대추방을 하고 말았다.


나도 무언가를 참지 못하는 감각이 있다. 개미와 나의 차이라면 나는 그것을 늘 느끼지만 다만 머금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상반된 두 가지 감각이다. 하나는 쌓고 싶은 마음이다. 돈을 쌓고 싶고 좋은 관계를 쌓고 싶고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설레고 먹먹해지는 감정들을 쌓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다른 하나는 멸절시키고 싶은 마음이다. 빨리 끝났으면. 이 전쟁 같은 삶이 빨리 끝났으면, 그래서 보고 싶은 사람을 빨리 볼 수 있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다.



3

나는 연약한 사람들이 모인 씩씩한 개신교 교회에 다닌다. 연약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씩씩해서 우리는 외롭다.


관계란 다 그렇다. 쫑알쫑알 지저귐이 있는 상태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지저귐이 사라지고 관계가 메마르면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었는지 이해하게 되며, 드디어 그리워하게 된다.


처음에는 산소가 많았는데 지금은 숨만 찰뿐 산소는 별로 없다. 교회나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나 모두 그런 상태다.



4

쉼이 필요한 상태인 것 같다.

검은 쉼.

검은 건반이 없이 하얀 건반만 나열되어 있는 피아노처럼 나의 시간에 반음이 없다.

지저귐과 산소.

그 온음의 힘을 얻기 위해 채울 수 있는 반음. 온음의 빈틈을 채울 수 있는 반음.

그러니까, 한 음 한 음 온음이 명랑하게 울려퍼지는 명랑한 쉼 말고 반음처럼, 어둡고 품위 있고 진한.

정말 캄캄하고 차갑고 진한, 쉼이 필요하다.

외할머니와 엄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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