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집중하는.

bitter and sweet

by jungsin



성시경과 박정현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우린 참 좋았는데~


나는 커피를 기다리고 있다. 빈 속과 마음에 온기를 채울, 그냥 커피 한 잔만은 아닌 무엇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주말 저녁이 다 가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나가고 싶은 마음도 있던 차에 편한 크록스에 발을 집어넣고 다짜고짜 집을 나섰다. 배도 고팠지만 그보다 커피 생각이 나 피자를 주문하면서 무작정 이 흔한 브랜드의 카페를 향해 걸어왔다.


해질녘 구식 아파트 끝에 걸린 해.


“제 저녁 메뉴 좀 추천해주세요.” 바리스타 바 안에서 흘러나오는 남자의 목소리다. 자기가 먹을 저녁 메뉴를 남한테 의존한다는 것은… 이 솔깃한 분위기, 어디서 이렇게 딸기 시럽 향이 나지.


카페 안 분위기를 환기해 바라본다. 카페는 한가하기만 한데 알바는 두 명이나 된다. 이십 대 중반 정도로 가늠되는 남자와 여자다. 남자가 여자에게 말을 거는 톤이 시종일관 달달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여 알바 학생은 어우, 하는 두성 섞인 공감의 의성어를 남발한다. 안 됐다, 어떡해, 나는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야, 등이 뒤섞인 의성어다. 카페 안은 두 사람이 알콩달콩 지저귀는 소리와 성시경의 노래가 케이크의 빵과 생크림처럼 뒤섞여, 청춘의 송가처럼 울려 퍼지고 있다. 그 한 공간의 모퉁이에서 이렇게 독특한 커피 미식가가, 쓴 커피를 쌍화탕을 마시듯 홀짝이고 있다. 그런 속에서 피자 배달을 왔는데 사람이 없다는 전화를 받았지만 나는 별로 다시 집에 들어가기 싫어한다.


실은 며칠 전 동네 메가커피에서 예상 밖에 따뜻한 아메샷추가가 맛있었던 기억을 갖고 다시 찾은 것이었다. 그때는 커피 바 안에 오늘의 두 참새와 비슷한 또래의, 약간 심심한 모범생 스타일의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혼자 있었다. 그녀는 내게 커피를 서브하고 나서도 바리스타 바 안에서 계속 무언가를 했다. 에스프레소 머신의 추출구를 솔로 닦아내거나 추출 도구들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등의 행동들을 하며 쉼 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에도 정말 긴장감을 갖고 일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움직임이 성실했달까. 외모가 화려한 느낌은 없었지만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담백한 눈빛이었다. 어차피 일을 하며 함께 대화할 사람도 없었지만 조용히 홀로 본질적 역할에 충실했다. 그녀는 원두의 표현에 집중하고 나는 맛에 집중했던 순간들이었다.


그날의 커피는, 밸런스도 잘 맞았고 고소했다. 온도도 아주 적당하게 따끈해 마신 이후까지 뱃속에 맛있는 커피 향의 여운이 계속 남아있었다. 그 생각에 찾았는데. 오늘은 원두의 순수함을 잃어버린 맛이었다. 약간 불쾌한 잡미와, 부드러움과 고소함으로 붙잡지 못해 중심을 비껴간 산미가 섞여 있었다. 후룩후룩 마셔 넘기며 커피 아로마 대신 가성비를 음미해야 가치의 균형을 상보할 수 있는 애매한 맛. 커피 온도는 조금 식은 듯 아쉬운 따듯하기였던 것 같다. 저가 커피니까 이해할 수 있는. 성시경과, 커피 바를 넘어 흘러나오는 딸기 시럽 분위기로 커피는 어물쩡 넘어가게 되는, 유월절의 커피였다.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3B 요소 중 하나가 Barista라고 배웠었는데, 정말 그렇다는 것을 이렇게 몸소 절감하게 된다. 똑같은 기계와 원두로 이렇게 현저한 퀄리티의 차이를 보이다니. 역시, 무엇을 할 때든 중요한 것은 사람인 것이다. 사람이 미래이고(두산), (사람의) 마음이 하는 것이다(현대해상). 커피든 음식이든, 어떤 일이든, 매뉴얼과 시스템으로 표현되지 않는 별도의 절대적 영역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람인 것이다. 나는 남의 썸의 현장에 와서 커피 한 잔을 얻어먹고 가는 것이다. 당도를 초과할 수 있는 타이밍에 bitter guest가 나타나 적당히 일할 거리를 주고 분위기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돌아가는 것이다. 커피든 무엇이든 한 가지는 고소했으니 됐다. 바리스타 바 안의 청춘 멜로에 온 영혼까지 달아진 것 같다. 문 앞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피자는 버려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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