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그러니까 명절이 이제 거의 끝나가던 마지막 날쯤이었던가. 밤 늦게 집에 갔었다. 지금 머무르고 있는 임시 거처이자 도피처인 이 집 같지도 않은 외롭고 괴이한 곳 말고, 나의 집. 내가 자라고 웃고 울며 잠들었던 곳. 정착하고 방황하고 떠나고 돌아갔던 곳, 웃음과 눈물과 비명과 쉼이 있던 곳. 나의 집, 말이다.
그래도 명절인데 인사 드려야지, 얼굴 봐야지, 밥 한끼 먹어야지. 그런 압박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이 팽창해서 집에 가지 않을 수 없었던 명절 끄트머리깨 깊고 깊은 밤에 찾아갔다.
누나가 밥 먹었냐고 했다. 친구와 이것저것 주워먹어서 그렇게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밥, 달라고 했다. 일층에 내려가서 누나가 차려준 전이나 동그랑땡이나 고깃국 같은 것을 먹다가 알 수 없는 눈물이 나서 고개를 푹 숙이고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내 안 아주 깊은 자리 어덴가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와 눈물이 눈앞을 가리는데 들키지 않으려고 머리를 밥그릇에 박고 무엇을 먹는지도 모르고 한 수저 한 젓 가락, 겨우 정신없이 입속에 밀어넣다 어느덧 드디어 다 먹고, 맛있게 잘 먹었다고 하고 서둘러 일어났다. 엄마의 동그랑 땡이 문득 생각나자마자 동시간으로 눈물이 차올라 툭 떨어져버린다. 누나의 동그랑땡이 엄마가 해준 동그랑 땡 맛과 너무 달라 슬펐고 이 땅에서는 설마 이제 그 동그랑땡 맛을 볼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 등이 잠깐 비집고 나오듯이 떠올랐는데 아마 그때부터 눈물이 겉잡을 수 없이 흘렀던 것 같다.
한 목사님을 좋아하는데, 그 분은 존경할만한 인문학적 소양이 있기도 하고 설교도 잘 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한 성품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이즈음에는 그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분을 보면 어인 일인지 외갓집 냄새가 난다. 외할머니와, 갓난아이 때밖에 보지 못해 기억도 못하는 외할아버지, 외갓집 앞에 있던 옥수수밭이나 사촌누나와 형들과 달빛을 보며 누워 귀신이야기를 하거나 까르르 웃으며 놀던 아늑했던 건너편 사랑방, 마당의 펌프 수돗가, 부엌 안의 큰 가마솥과 부두막. 밥 냄새와 과일 냄새. 부두막 굴뚝의 연기. 툇마루와 마당. 마당 안 담벼락 앞에 드리워있던 싱그러운 녹색 풀들.
미칠듯이 힘들고 외롭지만 그만큼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외할머니와 엄마의 품이 있기 때문이다. 어릴적 따듯한 교회의 기억도 있다. 그 모든 것들을 견디고도 남는 마음이 헤아릴 수도 없을만큼 넓고 깊다. 외갓집 앞에 펼쳐져있는 옥수수밭 같은 깊고 아득한 무엇인가가 내 영혼 안에는 아득히 펼쳐져 있다. 그것을 무어라고 할까. 사랑. 평화. 노스탤지어. 어떤 단어로도 다 표현되지 않는 뜨끈함.
언젠가 지하철역 같은 곳에서 술에 취해 사나운 마음으로 고성을 지르며 젊은 사람과 실랑이를 벌이며 행패를 부리던 어르신을 어찌 하지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던 현장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영상은 아주 짧았는데, 군중 중에서 한 젊은 남자가 홀연히 나타나 두려움 없이 아저씨에게 다가가, 그를 잠시 말리는가 싶더니 잠깐 다독이는 듯하다 그냥 와락 안아버린다. 아저씨는 충혈된 눈으로 그 청년과 잠시 눈을 마주친 순간 이후, 이상하리만치 화가 잦아지더니, 이윽고 의외로 그대로 품에 안겨서 아이처럼 기대 울면서 이야기가 끝나버린다.
목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바로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꼭 운좋게 공부도 하고 학위도 가져 줄이 세 개 네 개가 그어진 성의 까운을 입은, 그런 의미의 교역자가 되지 못한 사람이라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사랑이 몸과 영혼의 한 가운데에 은은한 실반지처럼 박혀 있어, 그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그것이 꼭지점이 되어 그 구심점을 뱅뱅 돌며 사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힘들 때마다 그 마음을 자기의 깊은 품에서 꺼내 기억하고, 힘든 사람 앞에서 그 마음을 꺼내어 안아줄 품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시골 외갓집과 같은 고향이 되어주며, 매일 삶으로부터 멀어지고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사나운 마음으로 헤메던 우리를 시골 외갓집의 툇마루와 한적한 마당과 옥수수밭으로 인도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목사나 다름없을 것이다.
진정한 것들이 모두 그렇듯이 사랑은 논리적인 납득과 그렇게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 아니리라. 그것은 이미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진다. 존재에서 존재, 사람에사 사람으로 들불처럼 옮겨붙는다. 하나하나 일일이 해명하고 이해하고 납득하고 공부하지 않아도, 눈을 마주치는 순간 이미 그것의 전부가 전해질 수 있는 것.
두 사람이 있으면 어느 한 사람은 본의 아니게 목사가 되게 된다. 더 넓고 아득한 품을 가진 사람은 어느 순간 의도하지 않게 pastoral care를 하게 된다. 반려자나 교제할 이성을 찾아 사랑의 모험을 감행하려는 사람은 이런 품에 대해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런 품을 찾아 안기고, 이런 품으로 안아주고 싶은 사람을 만나 서로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서로를 각자의 옥수수밭으로 안아주는 것.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