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쉼.

by jungsin



샤르트르나 불트만, 하이데거, 까뮈와 같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실존. 그러니까 인간은 세상에 내던져진 피투성이 같은 존재라느니. 짐을 던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져야하는 짐을 짊어질 때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존재라느니. 실존주의 식자층이 정의하는, 이처럼 공통의 큰 실존은 뭉뚱그려서 existence로 표현한다. 한편 existentielle는 자신 외에는 결코 어느 누구도 정의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지극히 개별적이고 독특한 삶의 실존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가을이었다. 1990’s, 요즘처럼 연말에 가까워져 가며 솔솔, 뒤숭숭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11월 즈음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전국의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일제히 치루는 연합고사가 있었다. 나는 일찍이 그보다 몇 달 정도 앞서 있었던 한 특목고 학교의 시험에 우연찮게 붙고 당시 유행하던, 어깨에 걸쳐서 대각선 옆으로 메는, 큼직한(하지만 거의 빈) 검은색 농구가방을 메고 졸업할 때까지 거의 놀러다니듯 학교를 다녔다. 가방에는 일제 AIWA 워크맨과 홍정욱의 7막 7장 정도만 덜렁덜렁 넣고, 형식적인 출근을 해서 언제나 이 분단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니 엎드려서, 그대로 줄기차게 자거나 잠마저 더 이상 안 오면 그 쉬운 에세이를 지겨울 만큼 뚫어져라 펼쳐 보곤 하던. 바야흐로 하늘 빛 꿈으로 가득했던. 가을이었다.


다수의 친구들은 방과 후까지 남아서 연합고사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보다 조금 적은 수의, 비인문계열 고등학교로 진로를 정한 친구들은 아직 해가 한참은 더 남은 4시~5시 즈음, 얼마 전까지도 같이 하교를 하던 친구들을 등뒤로 하고 조금 미묘한 감정을 안고 먼저 학교를 떠나야만 했다. 매일 나도 그 아이들과 같이 학교를 나섰다. 아직 너무 이른 오후였다. 푸릇한 생기와 들끓는 리비도를 주체할 수 없는 이팔청춘에게는 가혹하게 한가롭고 나른한 시간이었다.


그 친구들 중 지극히 적은 소수가, 6~10반 학생들, 그러니까 여학생들 중에 역시 지극히 적은 수의 여학생들, 그러니까 하교 후에 가방에서 화장용품을 꺼내 눈 밑에 진한 마스카라를 칠하거나 볼에 붉으스름한 색조 화장을 하는 여학생들과 한 장소에 모여서 지분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까 전교에서 손에 꼽는 날라리들이 모이는 매직 아워. 그들만 아는 매직 플레이스에 그들은 관습처럼, 종교처럼 모였다. 그리고 미쳤는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나도 어느날부턴가 매직 아워 매직 플레이스에 함께 했다. 높이, 멀리 나갈 사람이라면 뒷골목의 어둠도 경험해 봐야지. 고매했던 내가 성육신처럼 함께 하기 시작했다.


딸랑딸랑. 그 카페, 아니 레스토랑, 아니 경양식을 파는 커피숍의 문을 열면 천장에 주변 학교들의 다양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모여 피우는 담배 연기가 구름처럼 머물러 있었다. 실내 전체에는 적당한 볼륨으로 최신 가요가 흘렀다. 문 안쪽 바로 옆에는 공중전화 부스가 있었고, 각 테이블은 사적 공간을 거의 완전히 구분할 수 있을 만치 튼튼한 파티션이 감싸주고 있었다.


불안했다. 내 앞에 새까만 일자 머리를 한 여자애가 쫙 찢어진 눈을 하고, 패딩 조끼를 입고 웃고 있는데.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운 담배를 한 모금 머금고 불었다가, 왼 손으로 재떨이를 들어 턱 아래로 가까이 가져가 눅진한 농도의 새하얀 침을 뱉고, 아무렇지 않게 청초하고 요염하게 웃는데. 예쁜 동시에 두려웠다. 내 옆에는 말 잘하는 남자애들 두세 명이 줄지어 앉아 교복 남방을 바지 밖으로 헐렁하게 빼입고 세상에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는 듯 거침없이 욕을 하고 낄낄 거리며 여자애들과 잘도 노는데. 나는 소파 가장자리, 복도로 나가는 끝자리에 움크리듯 앉아 애멎은 커피잔만 홀짝이며 답답한 선비처럼 거의 한 마디도 안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언제나 극도의 흥분 상태였다. 너무나 숫기가 없없었을 뿐 이 모든 어둠이 숨막힐듯 황홀했다. 어색한 칼질로 생선까스 한 조각을 입에 가져가고, 단 커피를 홀짝이거나, 칵테일 소주의 취기에 기대보는 일. 어른 흉내를 내보는 이 모든 일들이 모두 황홀함과 들뜸이었다. 무엇을 해도 희망이었던 때. 모든 순간이 가볍고, 분홍벚꽃빛이었던 때. 골목에서 마주치는 교복입은 한 무리의 학생들을 보거나, 건대입구역 플랫폼의 대학생들을 보면 그 시절이 떠오른다. 그날들의 마음이 무거운 삶에 짓눌려 숨도 쉬지 못한다. 나의 existentielle를 언어에서 찾지 못하다 덩굴 줄기에 짓눌린 청포도알 자국에서 발견했달까.


군자역에서 아줌마 파마 머리를 하고 조금 피곤한 기색이 있는 듯해 보이는 아주머니를 발견하고는 괜히 무조건 따라서 탔다. 노약자석에 앉은 예순 가까이 되어보이는 아주머니. 괜히 그 주변을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그리워 했다. 무엇이 그리운지도 모르고 그리워했다. 늘 목 말라 했고, 배고파 했다.


억센 파마머리. 싸구려 거칠은 점퍼. 얇은 시장 블라우스. 엄마 냄새. 그렇게 편안하고 포근한. 엄마와 같은, 아니. 엄마가 그립다.


살아 있고도 싶지만, 그보다 훨씬 더욱, 쉬고 싶다.


낮잠 한 숨, 늘어지게 자고 싶다. 모두 꿈이었으면 좋겠다. 깨고 나면 엄마가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