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휴대폰

by jungsin


밤늦게 뜻 없이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끼고 싶어 도서관에 나왔다가, 책도 좀 빌렸다. 책을 대출해놓고 도서관 1층 현관에서 늦가을비를 바라보며 친구와 전화를 했다. 그리고는 학교 뒷길 쪽의 아름다운 상도동 길가를 따라 한참을 걷다가 텅텅 빈 버스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내 왼 편 빈자리에는 도서관에서 빌린 다섯 권의 책들이 종량제 봉투에 담겨 있고, 집에서 가지고 나와 꺼내지도 않은 네 권의 책이 가방 안에 그대로 고이 들어 있다. 휴대폰으로는 수시로 주식을 체크하며 사고팔거나,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특정 장소에 도착하면 주는 포인트 스폿을 눈여겨보며 포인트도 쌓고 있다.


엄마가 병실에 있을 때도 그랬다. 언제나 책이나 휴대폰을 주변에 두고 끼고 살곤 했다. 엄마 침대 아래쪽에 있던 보호자 간이침대 머리맡에 놓았던 백팩 안에는 몇 권의 책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언제나 책이나 휴대폰을 한 손에 들고 있곤 했다. 그렇게, 한 사이드의 신경은 늘 엄마가 아닌 다른 곳에 두고 있었다. 엄마가 그 차가운 병실 침대 위에 누워서 힘겨워하는 순간에도… 나는, 그랬다.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에 집중하는 일만큼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비록 앞으로 헤어지게 될 여자 친구일지라도 그 여자애를 사랑하는 일에, 누군가를 온전히 흠뻑 사랑하는 일에 후회 없이 몰입하며 살아야지, 남은 생이 아무리 짧더라도 사람에, 사랑의 모먼트에 집중해야지. 남은 생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아야지 생각하지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머릿속의 생각도 가슴속의 느끼는 점도 많고,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일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을 갖고 있고, 욕심마저 지대한 내가, 정말 휴대폰과 책을 덮어놓고 누군가에게 집중할 수 있을까, 자신감은 온전히 선명하지 않다.


어제 교회에 가는 길, 이제 스무 살밖에 안 된 어린 친구에게 말했다. 엄마랑 둘이 여행 가. 아르바이트해서 몇 백만 원 모아서, 엄마 납치해서 도망 가. 형 말 들으면 훗날 돌아보게 되었을 때 후회 안 할 거야. 사랑해. 엄마란테 사랑한다고 말해. 엄마가… 밥 차려주시면 맛있게 먹고 엄마 반찬이 세상에서 제일 ㅐ맛있다고 말해드려. 생의 시간 속에서 사소한 그런 순간들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야. 서울대 가는 일보다 그게 더 가치 있는 일이야.


사랑, 해.

사랑을 해.

너에게 주어진 시간을 몽땅 사랑하는 일에 불태워서 소진해버려.

하나님을 믿어.

종교에 빠지지 말고.


실은 그건,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엄마와 마주 앉아 병원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던 순간들이 생각나곤 한다. 엄마는 항암치료를 받으시며 영 입맛이 없어 드시지 못하시던 날이 많았고, 줄을 서서 식판에 밥을 타 온 내가, 애써 씩씩하게 혼자 밥을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런 중에도 나를 챙겨주었다. 엄마와 나 주변에는 점심시간에 식당에 나와 삼삼오오 모여 밥 먹는 아리따운 젊은 여자 의사들이 눈에 띄었다. 열정 있고 꿈 많은, 젊은 의사들의 모습을 유심히,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젊고, 꿈도 많고, 생기 있고, 똑똑하고, 아름다운… 의사들이 일을 하다가 일과 시간 속 분주하고 바쁜 마음 중에도 딸그럭거리는 소음들로 가득한 구내식당을 찾아와 앉아 두 명씩, 네 명씩 마주 앉아 식판의 반찬들을 알뜰이 집어먹는 모습이 내 앞의, 내 엄마와 대조되어 참 다양하고, 아픈 감정들을 불러일으켰던 순간들이었다. 밥을 먹고 나오는 출구 옆에 놓여 있는 식수 셀프 코너에서는 시원한 결명자차? 냉보리차(?)와 같은 차가 투명한 통 안에서 시원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이별로 인해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다. 적어도 아직은,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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