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작가, 그리고 좋은 사람이란.

김영하 작가의 말을 확장하여

by jungsin



“저는 딱 한 가지만 봐요. 에너지요. 다른 업종에 있다가 불과 얼마 전부터 본격적으로 작가가 되겠다고 달려든 사람이 글을 잘 쓰면 얼마나 잘 쓰겠어요. 작가를 지망하는 어린 대학생들이 문장력이 매끄러운 것이 무슨 의미가, 그리 크게 있겠어요.

그런 것은 생각보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글의 형식에 관한 실력은 차차 다듬으면 돼요. 저는 작가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고 믿는데, 그걸 에너지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글 속에 무언가, 아주 중요한 힘이 있으면 일단 저는 계속 읽어보게 돼요.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힘이죠. 그건 그 사람 자체이기도 하거든요. 어떤 사람이 좋은 작가냐. 당연히 무언가 낯설고 특별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사람이죠. 그것이 작가에게는 너무 결정적으로 중요해요.


그게 갖춰져 있는 작가라면 부족한 문장력이나 어휘력은 차차 갖춰 나갈 수 있지만, 형식의 능력은 있는데 신비로운 매력을 품고 있는 에너지는 없는 사람이 그걸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면 그 일은 과연 얼마가 걸릴지, 또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물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죠.

그런 질문을 목전에 두고 있으면 누구나 광활하고 깜깜한 우주 앞에 선 것처럼 숨이 막히게 될텐데, 그처럼,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과도 전혀 상관이 없는 궁극적인 질문을, 좋은 작가를 발굴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작가를 꿈꾸는 지망생이… 좀 스스로 자신을 향해 진지하게 해봐야 해요.

글솜씨라고 하죠. 글재주, 혹은 문장력이나 어휘력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그런 것들이 형식이라면, 에너지는 내용이에요. 사람의 내용. 형식을 배우고 그것을 다듬어 갖추는 일은 내용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될 수도 있지만…

한번 생각해 보자고요. 아직 형식만 가진 사람이 내용을 가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어렵고 막막한 과제잖아요. 사람 자체가 통째로, 송두리째 바뀌어야 하는 일일 수도 있는데 그게 어떻게 쉬운 일이겠어요.

그러니까 저는 글을 본다기보다 사람을 보는 거죠. 글을 바라보면서도, 실은… 어쩌면 저는 그냥 글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매 순간 사람을 노려보고 있는 거죠.


이렇게 표현해 볼 수도 있겠어요. 저는 냄새를 맡아요. 어떤 글이든지 그가 정말, 자신을 묻히기만 했다면 어떤, 독특한 향취가 나요. 글에는 꼭, 글 쓴 사람의 냄새가 묻어 있어요.

이런 의미에서 ‘글을 잘 쓴다.’는 걸로는 안 통해요. 과거 학력고사와 산업화 세대에게 글을 잘 쓴다는 것이란, 정말 글을 잘 쓰는 것만을 의미할 수도 있었어요. 어쩌면 그냥 작문을 잘 하는 것일 뿐인데 글을 잘 쓴다는, 훨씬 더 찬란한 찬사를 입혀 준 것이죠.

그런데 이제는, 누군가 글을 잘 써, 쟤 글 잘 쓰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면 좀 더 복잡한 의미가 되기고 하고, 동시에 아주 단순한 의미가 될 수도 있어요.

글을 잘 쓴다는 것의 의미가 이제 점점, 훨씬 더 진하고 또렷하게 존재적인 아름다움을 요구하는 뜻으로 수렴되어 가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쩌면 이제, 그냥 그건, 매력 있는 사람이란 뜻이에요.

글은 아주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이 훨씬 잘 쓰게 될 수도 있겠죠.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인공지능 로봇의 이름이 올라올지도 모르겠고요. 그러면 드디어 인기 작가는 모조리 인공지능 로봇의 이름으로 도배가 될까요?

일시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머지않아 오히려 반대의 상황이 올 거예요. 인공지능의 시대가 올수록, 자연 지능이, 인격 지능이 소중해질 거예요. 사람의 가치, 사람의 매력이 가지는 가치는 역설적으로 더 높아질 거라고, 저는 굳게 믿어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그리워하고 목말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건 너무, 너무 당연히 사람이에요. 사람은 사람을 목말라해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냄새. 그 사람 자체. 내용이자 에너지. 아름다움. 매력. 혹은 마력이라고 표현되어야 더 적절할지도 모르는 어두움.

우리가 누구를 정말 사랑하면, 그 사람의 형식이나 즐거움, 쾌락을 그리워하지 않아요. 그와 헤어지고 난 뒤, 우린 그 사람을 그리워해요. 그의 냄새, 눈빛, 웃음소리가 사무치듯 그리워져요. 그의 내용. 그의 마음. 그의 살결. 그의 머리카락. 그가 나를 사랑했던, 그 사랑의 마음. 그 사람이 그리워요.

인공지능이 영점일 초 만에 지어낸 책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놀랍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면, 처음에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가 호기심에 읽어볼 수 있겠죠.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사랑을 로봇이 쓴다는 것을, 자존심 상해서 더 이상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게 되는 순간이 금새 뒤따라 올 거예요.

그때야말로 사람의 ‘사람’성이 역설적으로 정말 희소해지게 되겠죠. 그가 원래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그리고 여전히 모태에 있기라도 한것처럼 무지막지한 사랑을 받아서 더 눈부시게 빛나게 된. 그 사람만 가지게 된. 사람의 아름다움의 가치.

바흐의 음악이나 쇼팽의 음악이 가진 힘은 바흐의 기교일까요? 쇼팽의 초절정 기교일까요? 너무나 당연히 아니에요. 바흐의 음악에는 바흐가 고스란히 들어 있어요. 쇼팽의 곡이 가진 아름다움의 핵심의 자리에는 피아니스트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쇼팽이 가진 아름다움이 있을 수밖에 없고요.

어떻습니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분명하게 느껴지죠? 내면에 아름다운 힘이 있는 작가는 좋은 글을 계속 쓸 수 있어요. 저로서는 광물을 캐듯 그런 사람을 찾고 선별해서 세공을 하거나, 그를 좋은 세공업자에게 소개해 줄 수 있을 뿐이에요. 한 사람의 내용을 다그치는 일은 제가 할 수 없어요. 보석은 곧잘 사람이 만들기도 하지만 원석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니까요.

이게 궁극이고요. 가장 중요한 포인트예요.

다음은.. 이것과는 정반대의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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