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두 가지의 독특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글이든 사역이든 사람들은 그것의 표현보다 그것을, 직접 보기 원한다는 것이다. 글을 읽거나 사역자를 만날 때, 무엇의 표현보다 더욱, 실제 생명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글을 읽으면서도 사람들은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잘 보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글쓰기 실력 따위, 더욱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글보다 의외로 나를 먼저 보려 하는 것 같았다.
내 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정작 내 브런치 인기 상위 랭크 글들은(내 브런치를 찾는 사람이 많진 않지만 그래도) 대개 고심하고 정성을 들여서 쓴 글들이 아니었다. 다만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느끼며 크로키를 그리듯이 쉽게 쓴 글들이었다. 그런 글은 쉽게, 순식간에 글이 펼쳐져 버렸다. 내 것이었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 없었다. 살아서, 정말로 살아서 펄떡이는 감정들을 한 호흡으로 풀어내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그런 글들이 의외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 같았다.
어렵고 고급스러운 단어들도 쓰고 그럴싸한 사진이나 그림도 넣고 길게 써서, 나름대로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한 글의 좋아요 수는 10도 채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그런 글은 나도 쓰면서도 점점 재미가 없었지만 고집과 정력으로 끝까지 밀어붙여 오히려 더 창대하게 마무리 짓고 이상한 뿌듯함을 느끼곤 했던 글들이었다. 창대함의 거짓. 읽는 이를 속이려 든 것은 물론, 그 이전에 자신을 속이려고 한 것이다.
최근에 나는 현실을 해결하는 문제에 고심하며 숨 막히는 현실의 가장자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렇다고 해결하려고 어떤 건강한 용기를 낸 것도 아니었다. 그냥 현실 때문에 한숨짓고 생각하고 묘수를 고민하며, 그러면서도 더욱 악화가 될 수밖에 없는 시간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당연히 소년의 순수함은 시들어갔다. 문제의 해결과 현실적인 성취에 대한 열망으로 눈의 실핏줄이 붉어지는 시간들 속으로 날마다 더욱 빠져들어 갔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쇄락해가는 나의 모습을 외면했다.
실은 이미 나 자신은 잘 알고 있었는데, 사역자 후보로서도 나는 언제나 그런 부분이 문제였다. 글을 쓸 때의 나의 문제와도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부분이었다. 교회나 신앙, 사역의 어떤 특정한 이론적인 부분에 관한 한, 이미 나에게는 독특하고 확고해져 가는 세계가 있었다. 공부와 아이디어의 참신한 결합이다, 이런 관점을 가지지 못한 당신들은 내 이야기에 좀 귀 기울일 줄도 알아야 해. 나는 정말 자신의 언어의 체계에 대한 만족감을 갖고 있었다. 신학적 문제에 대한 나의 독특한 구술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이들에게는 어떤 주목을 끄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래 듣고 싶어 하지는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공감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어쩌면 일부러 공감당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았다. 내용으로 보자면 나의 이야기는 결코 틀린 말이 아닌데. 자존심 때문에 나를 거부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제의 핵심은 내가 정말 나였는가, 나로서 살아있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안은 아주 단순했다. 그러니까 어쩌면 모조리 다, 그것들은 내가 아니라 나의 앵무새, 나의 영혼이 아니라 나의 문장들이었다. 이제 와 보자니 새삼 알겠다. 그런 나의 모습은 열린 태도도, 살아있는 생명의 태도도 아니었다. 사기꾼. 삼류 낙서 애호가. 그리스도인 평론가.
내가 쓰는 문자는 나를 입고 생동한다. 나는 나의 영혼이 생동하는 껍데기고 말이다. 나는 어떻게 문자를 벗고, 현실이란 이름의 핑계를 내던지고 울컥, 감동할만한 사람이 될 것인가. 내 앞에는 그런 질문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현실과 성취에 채이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들로 시선을 이끄는 번민과 욕망은 끊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다 집으로 돌아간 초등학교 운동장을 뱅글뱅글 돌며 걷고 또 걷는다. 이렇게 한 사람이 몰락하는구나. 마음만 편했으면. 마음만, 오직 마음만. 글을 쓴다는 건, 기도한다는 건,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소중한 시간을, 모두 다 제쳐두고 나를 쏟아부을 만큼, 내가 꿈꾸고 욕망한 그것들은 다 뭐였을까.
건강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는 말을 싫어한다. 그저 건강하게, 무탈하게, 웰빙하게 살아가는 껍데기로써의 인간의 삶을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전부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 같아 어딘지 듣기 불편하다. 삶의 본질의 자리를 살짝 가리는 말처럼 느껴진다. 또한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 세상에는 너무 많은데 그들을 좌절시키는 말이 될 수도 있고. 그 말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건강은 잃어버려도 돼. 하지만 영혼을 잃어버리면, 사랑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거야.
그래서 이제 나는 다시,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사랑을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사기꾼 같은 신기루의 성공의 세계를 불태워버리자고, 작고 소박한 순간들에 사력을 다해서 집중해야겠다고 결의한다. 고3이 끝나고 학교 책과 노트들을 옥상에 앉아서 다 태워버렸던 날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