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정리를 하기 위해서 써 본다. 뒤엉킨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명백한 낙서를 해보려 한다. 그냥 물이 너무 많이 찍힌 몽롱한 수채화라고 보아도 된다. 유치원생이 알 수 없는 감정들을 품고 붓을 물감에 찍어서 거침없이 그린 이상한 그림처럼. 쓰면 위로해줄 것이라는 글의 위로에 대한 믿음에 기대 알 수 없는 말을 읊조리며 칭얼거리려고 한다.
나에게 글을 쓸 때나 손으로 소설의 까슬한 책장을 피며 떠올릴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기대는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독특한 위로다. 교훈적이지도 않고 전형적이지도 않은 위로. 그것에 부합하는 낙서가 될 것 같다, 이 글은. 영혼의 위로를 못 주더라도 괜찮다. 바다 앞에 서 있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따듯함과 스산함이 뒤섞인 가을 비바람을 맞으며 차가운 바다 앞에 서 있다. 그래서, 됐다. 이미 위로를 받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우선 오늘 좋은 일 한 가지가 있었다. 오랜만에 누나와 대화다운 대화를 했다. 장장 열 두시 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공감을 하기도 하고, 의견이 비슷한 부분이 많아 즐거웠다.
그러다 예기치 않게 오해가 생기는 일이 잦아졌다. 그냥 어린아이들의 말다툼처럼 의미 없는 이야기들로 국면이 전환되었다. 익숙한 패턴. 빠져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 남매의 어리석음. 그렇게 싸우다 좋게 이야기하다 싸우다 좋게 이야기하기를 반복했다.
정오를 넘어 오후가 되어갈 무렵. 애매하게 좋은 분위기로 대화가 맺어졌다. 내가 모든 것이 다 이해되면서였다.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느껴졌다. 가만히 듣다가, 이해가 되어서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일어나기는 했지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부드럽게 슥.
누나의 이야기들이 슬로우 비디오 화면처럼 보이는 장면. 그런, 고통스럽고 정겨운 화면을 뒤로 하고 천천히 일어나 가방을 메고 누나를 한번 바라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잘 살아. 잘 해.’.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인사말로, 그렇게 얼버무리고는 나왔다. 약간 씁쓸했지만 나도, 누나도, 그리고 지난 시간들도 다 이해가 될 것만 같았다. 우연히, 한순간에 스르르 안개가 걷히는 듯했다.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알 수 없이 홀가분하고 기분이 좋은 마음이었다.
인간이 정말 외로운 존재구나. 사람이 정말 죄인이구나. 내가, 우리가 이토록 어리석구나. 누나는 그래서 그랬구나. 나는 그래서 그랬구나. 일순간 직감적으로 다 이해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괜찮아졌다. 나는 정말 웃으면서 일어날 수 있었다. 적어도 더 이상 미워하거나 그렇게 미안한 마음도 그렇게 심각한 죄책감도 가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집을 나서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데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졌다. 약간 따듯한 오후 날씨에 약간 서늘한 가을비였다. 나는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바흐나 Josin 같은 음악이었다. 감미로웠다. 알 수 없이 홀가분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나의 비밀스러운 자취방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이상하게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가볍게 신호들도 어기면서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길을 서둘러 내달렸다.
한동안 달려 어느덧 나의 비밀의 집이 있는 동네에 당도하자, 문득 이 우울했던 마을이 정겹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 기분들이 다 무슨 기분일까. 아름답고 가슴 저미는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삶의 신비가 드디어 한꺼풀이 벗겨지고 있고, 마침 그순간 그가 동화 속의 신비로운 마을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그런 독특한 기분마저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도 언 듯 이와 비슷한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졸업하던 날의 쌀쌀하지만 약간 포근하게 느껴졌던 2월의 늦겨울과, 포근하지만 약간 쌀쌀한 11월의 가을은 어딘지 비슷하단 느낌이 들었다. 알 수 없는 실 웃음이 새어 나왔고, 음악이 정말 감미로웠다.
나는 죽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누나도, 아버지도, 작은 아버지나 고모나 이모, 모든 친척들도. 우리에게는 많은 날도 남아 있지만 정말 얼마 머물지 못할 것이다. 결국 이 푸른 별을 떠나게 될 것이다. 잠시 하는 이별일지라도. 우리 모두에게는 이별이 올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이렇게 담담하게 할 줄 몰랐는데. 이제 그 사실이 나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 같고, 달콤하게 느껴지기마저 한다. 어젯밤 누나가 차려준 된장찌개를 먹고는, 줄곧 긴긴 대화를 하느라 물만 마시고 아무것도 못 먹었다. 다음은 아아와 크루아상을 만들어서 먹으면서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