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by jungsin


너, 살아서 꽃 한번 피워줘? 약속하는 거야 알았지? 백리향아? 황토색 토기 화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아 자라고 있는 가냘픈 몇 줄기 식물에게, 알량하게 짧디 짧은 시선을 주면서 말했다. 식물도 좋은 말을 해주면 잘 자란다고 하길래. 시선을 주고 관심을 주면 잘 자란다길래. 꽃 좀 피워 달라고, 약속해 달라고, 떼를 써 보았다.


그런데 그 말은 나에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야말로 한 번 꽃 피워야 하는 것 아닌가, 꽃 피우기를 스스로 다짐하고 약속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엄마를 생각하다가 깨달았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사랑이라고. 살아있는 것만으로 이미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꽃을 안 피우면 생명이 아닌가. 엄마가 그렇게 사랑했나? 엄마의 사랑이 그런 것이었나. 아니, 아니잖아. 생명만으로 사랑받고 이미 사랑하고 있는 거잖아. 차원이 다른 다짐을 하게 된다. 전혀 다른 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문득 한 숨을 놓을 수 있게 된다. 아등바등 꽃 피우기 위해 고민하던 마음에서 해방될 수 있게 된다. 꽃을 안 피워도 사랑이라고. 생명이라고. 그러니 그런 식으로 애쓰지 말자고. 대신, 이제 일어나 원두를 힘차게 갈아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한 모금 마시자고. 대신, 봄처럼 웃자고.




작가의 이전글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