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내가 좋아했던 것 1
재잘재잘. 새들이 달콤하게 지저귄다. 아침 해가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의 걸음걸이처럼 느리게 떠오른다. 푸르렀던 땅이 점점 붉어진다. 어린 여자애는 이 눈부신 풍경이 익숙한 듯 무심하게 마당을 쓴다. 나는 괜히 가슴이 벅차오른다. 희망이다.
우리를 감싸안는 장엄한 아침 해. 수도 없이 했던 빗자루질인 듯 평소처럼 마당을 쓰는 어린 여자 아이. 어쩌면 의자에 앉아 바라보고 있는 나를 의식한 듯 이내 흥얼흥얼 새침하고 생기 있게 비질을 하기 시작한다. 달콤한 목소리로 지저귀는 새소리가 듣기 좋다. 한 번씩 정적을 깨고 닭과 소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벌써 열세 해가 지났다. 그때 나는 인도의 한 시골 마을 마당에 앉아 있었다. 서른두 살이 된 이월의 겨울 즈음 나는 캠퍼스 기독교 동아리 동생들을 데리고 그 먼 땅까지 갔었다. 단 두 명이었는데 더구나 그중에 한 명은 좋아하던 여자애였다. 바로 그해 봄 나는 그 애 때문에 대학교 교목실에서 목사님의 기도를 받다가 눈물 콧물을 길게 늘어트리며 울게 된다.
다섯 시에서 여섯 시 사이 정도 되었을까. 그날따라 일찍 잠에서 깨어나 조용히 숙소 문을 열고는 혼자 마당에 나와 보았다. 그리고 그토록 아름다운 아침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의자에 앉아버렸다. 당시 느꼈던 인도 시골 마을의 이른 아침은 나의 수많은 아침들 중에서, 가장 완벽한 아침 중 하나였다. 그렇게 얼마 지나 팀원들과 선교사님도 깨어나셨다. 우리는 곧 각자 건너편의 작은 건물에 있던 단촐한 욕실에 들어가서 씻고, 둥글게 모여 앉아 찬송을 부르고, 아침 말씀 묵상을 했다.
묵상을 하는 동안 풍겨오는 커리 냄새에 벌써부터 배가 고파졌다. 하얀 수염이 길게 난 인도 할아버지가 곧 푸짐하게 뷔페식으로 정통 인도 커리 아침을 차려 주셨다. 손으로 한입 한입 집어 먹다가 너무 맛있어서 삶은 달걀을, 다시 밥과 커리를 더 가져다 먹었다.
환상적인 맛의 푸짐한 현지식 커리를 포기하지 못해 아침부터 배가 터져라 먹었던, 그 아침. 그날 아침이 이렇게 눈부시게 빛나고 가슴 시린 추억이 될 줄 몰랐다. 앞으로도 내 빛나는 생에는 그와 같은 아침이 무수히 많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꼭 그와 같은 아침은 그날 한번 뿐이었음은 물론이고 이후로도 13년 동안 그와 비슷한 아침도 다시는 없었다.
글은 여기까지다. 요즘 너무 삶이 힘들다. 문득 그냥 내가 좋아했던 것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 의미 없어도 좋고 잘 쓰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힘을 빼고 그냥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이렇게 고요하게 담아 놓고 싶었다. 오늘은 인도의 아침을 머금고 힘든 하루의 일들을 이겨나가 봐야지. 그날의 벅차오르던 아침을 기억하며 괴로운 순간들을 지나 봐야지.
삶이 이렇게까지 불행해질 수 있는지, 행복한 순간들을 어떻게 이렇게 새까맣게 잊어버리게 되었는지. 왜 이렇게 삶의 균형이 다 넘어져 버렸는지. 행복했던 순간들이 내 삶에서 정말 그렇게 없었는지. 새하얗던 나는, 어떻게 이렇게 새까매졌는지. 문득 행복했던 기억들을 가만히, 가만히 복원해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직 이 불균형을 극복해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그래서 결국 행복의 수평을 맞추고 싶다는 꿈까지는 아니다. 그런 욕심을 부리고 싶지는 않다. 이런 나날도 엄마의 잔상이자 여운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