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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sin Jan 07. 2023

신촌 다이어리

90년대식 낙서 일기 구성

1


튼 손끝이 까슬까슬하고 거슬려 견딜 수 없었다. 하루 이틀은 그냥 좀 건조할 뿐이었는데 삼사 일을 별다른 조치 없이 방치해놓으니까 따가워서 참기 힘든 정도가 되었다. 겨울은 모든 것을 말려 버린다.

신촌 거리의 큰 화장품 가게에 들어가서 무임으로 샘플 바디크림과 핸드크림을 손끝과 손톱 주변마다 잔뜩 발랐다. 신기하게도 손끝의 감각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길고 긴 겨울밤은 귤과 꿀재스민차와 가습기를 필요로 한다. 수다와 웃음과 군고구마와 난로, 크리스마스 트리, 선물 상자와 단 과자와 코코아. 여름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겨울에는 필요하다.


건조함은 충만하고 완전한 상태가 아니다. 무언가의 결핍의 상태다. 겨울은 겨울로 충만한 것이 아니라 봄을 상실한 것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차갑게 식어버리고 굳고, 결국 그 상태로 꽁꽁 언 것이다.

거칠음이 촉촉함의 결핍인 것처럼, 사소하고 무의미한 재잘거림이 사라지고, 말을 정갈하게 잘하고, 예의가 바른 사람이 되는 것은 사랑의 결핍 때문이다.


사랑은, 하나의 계절이다. 꽃피는 봄 한가운데 있는 사람은 겨울이 얼마나 추운 계절인지 모른다. 봄의 품에 안겨 있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따가운 우박과 발끝 시린 얼음길, 맨 목덜미 결로 파고드는 칼바람과 한겨울의 메마름을 견디면서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속한 계절은 그에 반해 얼마나 눈부시고 따사로운 것인지, 나는 얼마나 특별하고 충만한 사랑 안에 있는 것인지 푹한 봄에  안겨  조금도 체감하지 못했다.


혹독하게 추운 겨울 한가운데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얗게 잊어버렸다. 한겨울 안에 있는 동안 아지랑이 피는 따사로운 봄의 기운이 나에게 얼마나 어떻게 부족한 것인지  느끼지 못하겠다. 사랑의 계절은 벚꽃처럼 짧게만 느껴지고,   겨울밤은 너무나 공포스럽다.






2


주말. 오랜만의 긴장..

2000년대의 신촌은 청춘의 떨림과 희망, 막막함을 모두 품고 있었다. 오랜만에 와본 신촌에도 여전히 밝음은 있는데 그때와는 조금 다른 밝음이다. 짙지가 않다. 가볍고 상큼하기는 한데 그때처럼 짙음은 없다. 엷은 파스텔톤의 밝음을 가진 신촌은 나의 젊음과 포개어진 과거의 신촌을 떠올리도록 해 설레기도 했지만, 어딘지 슬프고 을씨년스러웠다.

모든 시간들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 순간, 오늘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흔한 교훈이지만, 신촌의 콘크리트 바닥을 밟으며 걷다 보니 절절하게 느껴지는 감각이었다. 마치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선생님이 어린 고등학생들의 등 뒤에서 음산하게 카르페디엠…이라고 속삭이는 목소리처럼 콘크리트 바닥을 밟을 때마다 이 순간이 소중해.. 시간이 가장 소중해..라고 누군가 내 존재의 핵심 주변부를 간지럽게 긁으며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3


신촌, 추억#1.

13년 전 무렵이었을 것이다. 소개팅으로 알게 된 여자분과 스파게티를 먹고 커피를 마신 곳이 바로 이 신촌 거리였다. 두 번째였을까, 세 번째였을까. 좋아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을까, 선별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을까. 나는 아무튼 애쓰고 있었다. 어느 일요일 낮에 카페에서 보고 잠깐 앉아 소개팅을 한 여자분이 바로 그날 저녁에, 먼저 나에게 또 한 번 보자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렇게 두세 번째쯤 약속으로 또 만나게 된 곳이 이곳, 신촌이었다.

내가 골랐던 곳일까. 지금은 기억도 희미하지만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스타벅스에서 가까운 어느 거리의 2층에 있는 이탈리아 식당에서, 나는 여자와 마주 앉아 스파게티를 후루룩 들이켜 마시듯 먹고 있었다. 지금은 나도 좀 섬세한 사람이 되어 스파게티를 돌돌 말아먹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는데 삼십 대 초반의 나는 반드시 스파게티를 포크로 거칠게 떠서 후루룩 먹었을 것이다.


식당에서 나와서, 그녀와 나는 아마 신촌역 방향으로 걸었을 것이다. 조금 걷다가 식당과 그렇게 멀지 않은 카페에 들어갔다. 낮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또다시 마주 앉았다.  그때의 나는 늘 긴장도가 높았다. 열정도 의욕도 많은 사람이었지만 그만큼 내면의 긴장도 격렬했다. 나는 나의 긴장에 스스로 갇혀서, 아마 서로를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말 한마디, 질문 한 번 건네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서도 무슨 말을 했는지는 당연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나와 그녀 사이에 있던 테이블이 낮았다는 것, 그렇지 않은 척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도 없을 만큼 내가 너무나 경직되어 떨고 있었다는 것. 그 느낌이 너무 답답하고 스스로 너무 힘들었다는 것. 마주 앉았을 때 느껴지는 그런 비좁은 감각들과 단편적인 시야의 장면들만 기억난다.


소개팅을 하고, 스파게티를 마시고, 카페에서 카피를 마시고, 함께 걷고, 버스를 타고 나란히 앉아 함께 교회에 왔지만 나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냥 예쁜지. 얼마나 그녀가 내 눈에 예쁜지. 그리고 향후 얼마나 더 예쁘고 매력적인 여성으로 나에게 보일 수 있는지. 그것이 유일하게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관점이 나의 사람을 보는 눈의 거의 전부를 차지했을 것이다. 한편 내적으로는 잘 보이고 싶은 긴장감으로 가득했고. 나의 청춘의 시야란 것은 그토록 좁고 늘 불안정하기만 했다.


그래도 남자에게 먼저 만나자고 하거나 메신저를 할 줄 알았다. 그 여자는. 가능성이 무한하게 펼쳐져 있는 것만 같은 당시의 젊은 나에게도 그 점이 매력적으로 비쳤다. 나는 예술적 취향을 갖고 있었다. 그건 눈이 높다거나 까다로운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딱 맞는 동전을 넣어야 동그란 플라스틱 케이스가 떼굴떼굴 굴러 나오는 기계에서, 최소한 장난감을 펼쳐 볼 수는 있는 조건이 성립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동전을 넣고 돌려도 뽑기 기계는 묵묵부답 하나의 알 장난감도 굴려 보내주지 않았다. 나도 아쉬웠다. 하지만 하는 수 없이 피니쉬-웰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너무나 초라하고 소박하게 페어웰을 고했다. 어느 날 동네에 있는 큰 문구점에서 여섯 개 정도가 든 작은 페라로쉐 초콜릿과 엽서를 샀다. 알 수 없는 미묘한 말들을 작은 엽서 안에 구겨써 넣어 초콜릿과 함께 건네주었다. 그녀로서는 그게 나와의 몽글몽글한 썸데이즈의 끝인지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각종 좋은 말과 온건하고 점잖은 단어들만 수놓아져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나쁜 남자였다. 나쁠 뿐 아니라 꽉 막힌. 다른 어느 날인가는, 명동의 작은 카페에서 마주 앉아 함께 성경 큐티를 하고 느낀 점을 나누자고 했을 정도로 이상한 남자였다. 아직 서로 아는 것조차 거의 없고 친밀함도 너무 부족하기만 한 때였는데. 미숙한 나는 여자들을 그렇게 엉뚱한 방향으로 데리고 다니곤 했다.

후에 그분은 남자들이 좋아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그런 소식만 들었을 뿐 만날 일은 없었다. 나로서는 연락을 먼저 할 명분도 용기도 없었다. 그렇게 두서너 해가 지났을 즈음 교회 근처에서 다른 사람들과 뒤섞여 한번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금요일밤 철야 예배가 끝나고 우리는 치킨 집에 가서 치킨에 탄산음료를 시켜놓고 밤을 새웠다. 그분은 더 매력적으로 변해 있었다. 날이 밝아오는 토요일 새벽. 집에 가기 위해 우리는 중앙차로에 있는 버스 정거장에 서 있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버스를 타기 전에 나에게만 은근슬쩍 여운을 느낄 수 있는 말을 남겼다. 외국에 가서도 계속 톡을 하자고 했던가. 한다고 했던가. 아무튼 언어보다도 그녀는 가녀린 에너지를 주었다. 훗날 한번 톡이 왔었다. 좋은 설교를 좀 추천해달라고 하는. 그리고 나는 정말 좋은 설교만 진실하게 추천해주고는 말았다. 그때, 나에게는 청춘의 설렘과 이성애의 한가운데에 있을 수 있는 기회의 소중함보다 나의 감정과 행동 간의 일치성이 중요했다. 그렇게 내가 답답했다. 인생은 길고 내게는 무수히 많은 기회가 펼쳐져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날들, 그런 나는 나의 최선이었다.  

신촌에는 여전히 청춘의 추억들이 눅눅히 배어 있었다. 오늘. 십여 년 만에 이곳에서 헌혈 봉사를 하고 동아리 간사님과 젊은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데, 자꾸 설레고 흥분을 하게 되는 나를 보았다. 침전되어 있던 감정들이 일어났다. 팔뚝의 피 뽑은 자리를 네모난 살색 밴드가 꼭 막고 있는 것처럼 침전된 청춘도 무언가로 꾹 눌려 있었는데. 꽉 눌린 지혈 밴드가 오늘 오후, 살짝 풀리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지금의 나도, 그럴 수 있구나. 아직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맞기는 하구나. 싱숭생숭하고 이상했다. 이러한 감정들을 꼭 기록해 놓고 싶었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있는 동안은 살아있는 생생한 감각으로 살아있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것이 좋을까. 그래야만 할까. 이상한 눈물이 뱃속에서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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