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리얼 연애 예능 보고서

나는 솔로, 결혼에 진심, 선다방을 중심으로

by jungsin



사람이 무엇일까.

끊임없이 느끼고 생각한다. 걷고 걸으며, 요리하고 요리하며, 먹고 먹으며. 끊임없이 사람에 관해, 외로움에 관해, 사랑에 관해 탐구한다.


내가 사람을 알아가는 방법이란 크게 세 가지 정도가 있다.


첫 번째로는 만나는 것. 그러나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에는 다소 지친 것 같다. 흔한 말로 염증과 신물을 느끼게 되기도 했고 그냥 이제 좀 지친 것 같다. 지쳤다는 건 큰 흥미를 못 느끼게 되었다는 말과도 같다. 외로워서, 연말의 들뜬 분위기의 대도시의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곳에 혼자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 약속을 하기는 한다. 그리고 일단 사람을 만나면 즐겁다. 나는 사람들을 웃기고, 또 화제의 중심에 서고, 화제의 변방에 밀려나며, 그 모든 것들을 즐거워 하고 따듯해 한다. 하지만 난 곧 지치고, 이어서 집에서 지겹도록 자고 일어나 눈곱을 떼며 얻는 새로운 아침의, 아니면 새로운 오후나 새로운 밤의 여유로운 기력과 여유로운 시간이 그리워진다. 삶이 너무 길고, 지루하고, 지친다.


두 번째 사람을 알아가는 방법은 TV를 보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나 뉴스, 영화, 드라마, 또는 예능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는 앞의 네 가지 장르가 무겁다. 무엇이든 한 가지를 오래 볼 힘이 없다. 마음이든 힘이든 체력이든, 없다. 따라서 나는 주로 집에 들어오자마자 a.i. 에게 티브이를 켜달라고 부탁하고 먹을 것을 준비하면서 예능을 틀어놓고 소리를 듣다가 곧, 작디작은 상 앞에 먹을 것을 차려놓고 입을 헤 벌리고 예능을 보는 편인데, 그럴 때 보는 예능은 오직 리얼 연애 예능이다.


세 번째는 공부를 하는 것이다. 한 주에 한 번 서울의 고즈넉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한옥 마을 깊숙한 곳에 가서 스터디를 한다. 장르는 신학. 장르라고 하기에는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장르라고 믿기에 내겐 어색한 표현이 되지만. 어째듯 나는 한 주에 한번 신학 장르를 공부한다. 작은 한옥 건물에 모여 앉아 현대 기독교의 흐름을 바꾸었던 유명한 신학자들의 명저를 읽는, 소박한(?) 모임이다.


책은 폭넓게 좋아하는 편이다. 신학이나 인문학만 집어 드는(거의 읽지는 않고. 일단 집어 드는.), 꽉 막힌 사람이었는데. 이제 동시대 한국 소설과, 표지가 예쁜 하드커버 세계 고전을 넘어, 간혹 시집의 책등에까지 집게손가락을 걸어 내 몸 쪽으로 당겨 본다.


하지만 예능은 로맨스 장르를 편식하게 된다. 요즘 다른 장르의 예능은 시시하기 짝이 없다. 20대 스타들이 나오는 예능은 특히 0.1초도 머무르기 싫다. 모두 유치하고 어리다. 요리, 여행, 지식 장르 예능은 pd의 재능에 따라 흥미를 갖게 된다. 그렇다 해도 리얼 연애 예능만큼은 아니다. 연애 예능은 떨림이 있다. 그것이 얼만큼 생과 닿아있는 떨림이든지, 얼만큼 살아있는 떨림이든지 간에, 어쨌든 미세한 떨림이 있어 언제든 재밌다. 떨림이 얼마나 진정한 것인지, 얼마나 내 삶과 연결된 떨림인지까지 생각하기에 지금의 나의 삶은 어떤 떨림도 기대하기 힘들만큼 광활한 사막이어서. 나에게는 고마운 존재다.



1) 나는 솔로


최근 가장 즐겨본 연애 예능은 나는 솔로다. 리얼과 감동, 현실성이 적당히 버무려진 맛있는 비빔밥 같은 예능이다. 실제 커플의 성사 여부가 온전히 출연자 자신에게 맡겨져 있는 느낌이 생생히 살아 있어, 실제 단체 미팅 엠티를 보는 것만 같다. 때때로 출연자의 매력에 따라 몰입도가 높아지면 그와 함께 가슴이 뛰며 감동하게 된다. 남자 출연자에게 몰입하게 되었던 경우는 내 눈에 매력적인 여성 출연자가 있을 때이다. 다른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된다.


반면 여자 출연자에게 몰입하게 되는 경우는 다채롭다. 여성 출연자가 너무 순수하고 절절하게 남성 출연자를 좋아해서 서글픈 눈물을 흘릴 때, 과감하게 직접적인 고백을 서슴지 않을 때, 여자들끼리 질투하고 견제할 때, 그러다가도 서로를 보듬어 주며 다시 눈물을 흘릴 때. 여자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상황과 감정의 움직임이 나로 하여금 몰입하도록 만든다. 그렇게 보면 남자보다 여자가 정말 더 고등동물이 아닌가, 더 사람다운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상대적으로 남자는 너무 단순하고 본능적인 동물 같다.


이 프로그램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은 현실성에 관한 해석 부분이다. 이 프로그램은 노골적으로 좋은 직업과 부의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출연자로 선정된다. 그 성취의 수준이란 보통의 삼사십 대 미혼은 주변에서 잘 보기도 힘들 만큼 젊은 나이에 현실적으로 안정적인 기반을 이룬 정도다.


이 지점이 몰입도를 높이기도 하지만, 또 낮추기도 한다. 특히 남자 출연자들의 경우 자기소개 시간에 스펙과 부로 힘을 겨루는 듯한 분위기까지 전개되곤 한다. 과연 우리 현실에서도 정말 그렇게 우리가 서로를 성취와 부로 선택하는지 의심과 회의가 들 정도로 노골적인 성공 찬양. 그런 뉘앙스가 있는데 그것을 조용히 품위 있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PD부터 출연자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이 예능은 19금 예능이다. 무한 경쟁 자본주의 그늘의 민낯을 대낮에 은행나무골 소풍 가서 보고 있는 기분이랄까. 이러한 면에서는 불가피하게 천박하고 격이 떨어지는 뉘앙스를 풍기고 말지만, 결국 우리는 그것 때문에 살아있다고 느끼게 되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재미와 동기부여를 함께 느낀다. 어쨌든 속물근성을 공유하며 긍정하는 우리 사회 풍조상 이 예능의 성공-노출 범위는 허용 가능한 바운더리 안에 있다.



2) 결혼에 진심


나는 솔로의 세속주의의 에너지가 조금 느끼한 쪽으로 흐른 예능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조금 더 젊은 출연자들이 나오고, 조금 더 잘 생기고 근육을 키웠고 독특하게 매력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바라보는 즐거움으로 시프트 된, 또 다른 19금 연애 예능 같았다.


건강미 있는 외모와 젊은 시절의 직업적 성취, 설레는 분위기 속의 대화의 매너. 모두 아름다운 것인데, 화면을 조금 뿌옇게 만들고 약간 더 그 매력들을 노골적으로 보이게 만들면 이렇게 느끼해지는구나. 하고 깨닫게 만드는 리얼 연애 예능 같았다. 지금 말한 이런 요소들 때문에 여기서 리얼이란 수식어를 사용해도 될지 망설여질 정도로 이 프로그램은 팬시fancy하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요소가 있는 것과는 별개로, 이처럼 출연진과 기본적인 프로그램의 콘셉트, 편집된 화면의 앵글이나 톤, 자막에 이르기까지, 정말 좀 느끼해서 찬물에 밥을 말아먹으며 총각김치와 함께 볼 때에 그것들을 누그러트리고 볼 수 있는. 한국식 크림 스파게티 예능이라고 느껴졌다.



3) 선다방


나는 이런 장르가 좋다. 선다방은 우리의(나의) 감정과 가장 가까운 감정을 터치하는 선을 적절하고 예쁘게 지킨다. 내 심장과 가장 가까이서 뛰는 예능. 설렘. 첫 만남과 대화, 떨림이라는 요소를 생생하고도 즐겁게 그려준다.


1,2의 단점이 보이지 않는다. 현실적인 연애 감정의 딱 적당하고 예쁜 톤을 지키는 12금 리얼 연애 예능. 세 프로그램의 pd가 모두 여자라면 나는 선 다방 pd와 가장 잘 맞을(좋아할) 것이다. 오직 선다방만이 남녀가 만나서 그릴 수 있는 오라aura를 적당한 선을 지키며 예쁘고 위트 있게 그리고 있다. 적당한 선이란 앞서 말했듯 자본주의에 오염된 노골적인 욕망의 그늘에 관한 것이다. 선다방은 그것들을 걷어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재미있게 보았던 편은 방송작가인 문과형 남자와 아이티 기업에서 일하는 이과형 여자의 대화 편이었다. 나는 이 대화를 설탕을 설탕을 넣지 않은 고소한 라테와 함께 백번이라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따듯하고 진한 라테에 적당히 설탕을 넣어서 마시는 것을 즐기는 나이지만, 이 남녀의 만남과 웃음, 위트 있는 대화가 만들어내는 자연적인 설탕을, 그냥 슈가 리스 라테와 함께 즐기는 편이 나을 것 같다.


한 사람이 가진 힘 중에서 인격적인 매력보다 더 강하고 위대한 것이 있을까. 나는 인격 찬양론자다. 그러니까 사람보다 크고 거대한 돈과 명예, 성공, 물질보다 사람 자체에 대해 관심이 더욱 있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고, 가질 수 있는 매력의 가능성. 그런 것을 늘 즐거워하고, 또 그런 것에 절망한다.




너무 큰 맥락이지만, 이러한 나의 관심과 연관 지어 난 종교로써는 종교개혁에 관심이 많고, 신학으로써는 정통적이고 굵직한 현대신학만 파고드는 취향이 아니라 해방신학이나 여성신학과 같은 변방의 신학에도 관심이 있다. 사람 자체에 관심이 많고 사람 안에서 어떤 희망의 빛을 보고 싶어하는만큼 나라는 사람 자체가 진보적이고 넓은 것이다. 역사라면 인문주의나 르네상스, 프랑스혁명, 히피 운동과 같은 인간 중심적 운동에 대해 관심이 많다. 대중음악이라면 방탕소년단을 포함해 아이돌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대신 30대 이후의 박지윤, 그러니까 욕망의 대형 소속사를 떠나 최근 원래 자신이 갖고 있던 본연의 매력을 찾아가는 듯한 음악을 하는 박지윤을 좋아하고, 루니 마라처럼 배우 자신이 연기에 매혹된 듯한 짙은 연기력과 예술성, 인격적인 매력을 풍기는 배우를 좋아한다. 소설가로써는 아직 완독한 책 한 권 없지만 이미 김영하를 좋아하게 되었고, 천선란과 같은 젊은 소설가나 심채경과 같은 학자 출신의 순수한 지성미를 가진 작가에게도 매력을 느낀다.


순수한 설렘. 품격. 존엄함. 지성적인 매력. 무한 경쟁 자본주의가 세상을 지배한 짧은 역사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있어온 인간 고유의 아름다움에 대한 진지한 존중의 관점은 트렌디한 연애 예능에서 별로 찾아볼 수 없는 것 같다. 인간 고유의 가치를 무시하고 짓밟는 동시에 군중의 천박한 욕망을 건드리며 너도 그런 사람이잖아? 속삭이고, 욕망을 팔아 시청률을 올리는 것은 자본주의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리얼 연애 예능의 불가피한 운명일까.


근육질의 사업가, 메이저리그 스카우터, 명문대 출신 변호사 남자들에게는 본받을 점이나 심도 있는 인간 고유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요가와 필라테스로 단련된 몸매. 남녀가 뒤섞여 피트니스를 하는 남사스러운 장면. 키 크고 눈에 띄게 예쁜 강남형 얼굴. 언듯언듯 남자들의 욕망을 은근히 자극하는 옷을 입을 줄 아는 센스. 고급 자동차의 대결 구도. 우리 안에 있지만,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드러내는 순간 우리 모두가 값싸지고 낯 뜨거워지는 욕망을 양지화한다고, 천함이 고귀함이 되거나 어둠이 빛이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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