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

by jungsin


1

엄마. 보고 싶어.

엄마가, 혜화동 병실에서 깜짝쇼처럼 병실 침대 커튼을 걷은 나에게 아가 하고 불렀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온 세상이 어두컴컴한 밤.

뚜벅뚜벅 당당한 지정 보호자인 것처럼 본관에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순간으로.


엄마.

나는 그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탁탁탁탁.

바쁜 걸음으로 병동 출입문 앞에 도착해서

잠깐 기다리다가 다른 보호자가 나올 때 스파이처럼 미끄러져 들어갔어.

고요한 병동 복도를 울리는 내 발걸음 소리.

저벅저벅.

간호사 데스크를 태연하게 지나 입원실로 걸어갔어. 6인실 정도의 다인실로 들어가 마침내 엄마 자리의 커튼 앞에 섰어.


두근두근.

촥.


아가.

팔을 펼치며.

어이구? 언능 와. 이리 와.




2

엄마.

최근. 난 몇 달 동안 뛰지 않았어.

힘이 없었어.

달리는 것은 손해라고 생각했어.

나에게는 뛸 에너지가 없었으니까.


엄마가 들으면,

맨날 놀면서 힘들긴 뭐가 힘들어.

했겠다.


몇 달 만에 달린 것 같애. 엄마.

근데 좀 살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나 살아있는 거야? 엄마?


맞아?




3

얼마 전.

엄마 꿈을 꿨어.

나는 분명히 엄마와 함께 있었어.


그런데 깨니까 엄마가 없어.

한동안 멍하니 있었어.


질문이 떠올랐어.


꿈만 꾸면 안 될까?

좀 살아있지 않아도 좋으니

꿈만 꾸면서

엄마와

계속 붙어서 함께,

조금 전처럼 링크되어서 살면 안 될까?

하나님이 좀 그렇게 해주실 순 없는 걸까?


살아 있다는 것과

식물인간처럼 잠만 자면서 꿈을 꾸며 엄마와 함께 있는 것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면

당연히 나는 꿈만 꾸며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을 선택할 거야.


그런데도, 이토록 꿈에서도 생에서도 엄마와 함께 있고 싶은데도

나는 왜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면서,

나는 왜 꼭

슬픔과

이렇게 푸른댕댕한 멍을 마음에 안고도

살아 있어야 할까?


불현듯

그게 나한테 하나의 중요한 질문이 될 것만 같았어.



가장 힘든 것.

가장 하기 싫고 두려웠던 선택.

나는 왜 거기로 밀어 넣어졌을까.

왜 피가 흐르는 수많은 혈관에 심장이 펌프질을 해대고

왜 살색 껍질이 있는 이 복잡하고 성가신 몸을 무거운 잠바처럼 입고

하루 하루,

살아가야 할까?


살아있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이 세상에 왜 보내졌을까missio?


이렇게 가장 큰 하나의 고통,

사랑과 그리움의 고통을

매 순간 목놓아 울어도 모자를 만큼 거대한 슬픔을 안고도 삶을 살아 나가야만 할 만큼

중요하고 고귀하고 거룩한 이유가 있지 않다면

살아있어야 할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추호의 의문의 여지도 없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없다면

나는

정말

하나님께 실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정말 그렇지 않다면은

도저히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미워하고 탓하지 않을 수도 없을 것 같은데.


나는 왜 꿈속이 아니라 이 낯선 세상에서

살갗의 감각을 가지고 살아 있어야만 할까.

이 차가운 겨울 공기를 마시며

뽀드득거리는 눈을 밟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 가야만 할까.


그걸 꼭 알아야만 할 것 같아.

엄마. 지금, 나는.

그게 무척 궁금한데, 엄마가 좀 알려줄 수 있어?


일단 오늘은 그럼

너무 추운 겨울밤이니까

애증의 올드 빌라 자취방으로 돌아가서

딸기 바스크 케이크와 아이스 드립커피(다 챙겨먹어서 엄마한테 미안한데)를 먹으면서

좀 쉬다가

천천히 천천히

곰곰이 곰곰이

생각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