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비타민

엄마 24

by jungsin

자신이 없다. 살 자신이. 이렇게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계속해서 살 자신감이 없다. 얼마까지 살 수 있을까. 오래도록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오래도록. 오래도록. 이렇게 푸르른 멍을 마음에 안고 살 순 없을 것이다.


엄마 꿈을 꿨다. 오전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잤는데. 나는 엄마와 너무 분명히 함께 있었다. 기억나는 장면은. 꿈의 크트 머리. 깨기 직전에 엄마와 나눈 대화였다. 엄마, 잠이 안 온다. 다리도 쑤시고 신경 쓸 게 많아서 잠이 안 와, ㅈㅎ아. 엄마 어디야? 내가 글로 갈게. 누나네야? 내가 주물러 주면서 자면 되지. 잠들 때까지 내가 주물러 주면서 자면 되잖아.


그 전에는 엄마와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며 함께 있었던 것밖에 기억이 안 난다. 생각하려 생각하려 애써 보았지만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냥 엄마와 함께 있었고. 그 감각이 너무 좋았다. 너무 소중하고 희소한 시간이라는 것을 온당히 모두 다 느끼면서 엄마와 함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달콤하고 행복한 일이었다.


엄마와 거실 티브이 앞에서 상을 펼쳐놓고 함께 밥을 먹었는지, 엄마를 안아 주었는지. 엄마에게 프로바이오틱스나 요플레나 유산균, 비타민 같은 약을 먹으라고 보채고 있었는지. 그래야 빨리 낫지. 하면서. 어렴풋이 기억나는 말은. 내가 엄마에게 했던 말. 그래야 빨리 낫지.


얼마 전 집에 갔다가 누나가 주방 입구에 가져다 놓은 누나 책장에 놓여 있는 비타민 두 통을 보았다. 실버 비타민. 엄마한테 사 주었던 대용량 비타민이었다. 얼른 다 낫고, 계속 계속 오래도록 오래도록 엄마 먹으라고 사놓았던. 퍽 오랜 배송 기간을 거쳐 미국에서 건너온 실버 비타민 두 통. 엄마는 한 통의 일부를.


아프다. 울 수도 없을 만큼 삶에 집중해야 한다.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이제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살아있는 동안은 살아있는 사람처럼 살아있고 싶다. 소중한 것에 집중하면서. 소중하고 소중한 것에. 내 존재를 다 실어 눈을 빛내고 환히 웃으면서. 또 저리는 가슴을 안고 사무치게 울면서.


눈이 오고. 대림절 절기인가 보다. 내가 가고 싶은데. 달려가고 싶은데. 미친 듯이 울고 웃으며 달려가고 싶은데. 기다리고 있다. 기다릴 수밖에 없고 기다려야 할 것만 같다. 이렇게 아프고 슬프게 살아있는 것이 지금 내 생의 최대 꼭짓점인 것만 같다. 그 시간의 도래advent of the time를 기다리며 따듯하게 웃고 울면서. 생생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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