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매력

신학과 문학의 경계선에서.

by jungsin


1. 개미와 개미들.


언젠가부터 나는 살아있는 것들을 죽이지 못했다. 내가 거처하고 있는 곳의 개미는 처음에는 몇 마리가 기어 다니던 정도였는데 이제 너무 많아져서 내 살을 꼬집어 쉬지 못하게 할 정도가 되었다. 아무리 작은 몸집을 갖고 있어도 그들은 생동감 있는 몸짓으로 살아 있었다.


연갈색의 아주 작은 몸에 달린 기민한 더듬이와 발. 그들은 정말 빠르고 민첩했다. 태어나서 처음 본 종이었다. 한 마리씩 한 마리씩 나타나는 그들은 나에게 신기할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했다. 내가 발견하면 마치 눈이라도 마주친 것처럼 얼어버리기도 했고, 이내 혼비백산하며 제트 자나 정체불명의 모양을 그리며 전력질주해 도망쳤다. 그 속도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너무 빨랐다.


나는 그들을 후 불어 창밖으로 날렸다. 그렇게 콕 집어서 날리고 날리고. 수백 번을 그랬다. 202호에 사는 거인은 우리를 죽이지 않아. 입소문이 났는지 어느새 개미의 수가 너무 많아졌다. 나는 혹시 개미의 다리가 다치랴, 더듬이가 다치랴 살살 집어서 예쁘게 날려 버리곤 했다. 생명을 대하는 나의 고상한 결심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죽이지 않겠다는 나의 고집도 살겠다는 개미의 의지만큼 센 것이었다.


그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나는 피로감과 함께 짜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후 불었는데 이제는 푸, 파 하고 불었다. 개미들을 살려서 불어 내보내는데 점점 너무 많은 시간과 체력을 사용해야 했다. 너무 많아져 일일이 손으로 잡기 힘들어진 언젠가부터는 소형 빗자루와 쓰레밪이로 쓸어서 창밖에 털어 날려버렸다. 나는 너희들을 쓸어서 내버릴 수밖에 없지만 밖에서는 어떻게든 살아라. 살아남아서 좀 행복하게 살아봐라. 그런 마음으로.


싱크대 위의 마블 대리석 위에 있던 수많은 개미를 보았을 무렵부턴가. 언젠가부터 개미를 대하는 내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한 마리씩 볼 때는 신기하고 경이롭기까지 했는데. 이상하게도 너무 한꺼번에 많이 모여있는 모습은 두렵고 징그러웠다.


난 동물적으로 그들을 거칠게 대했다. 잠깐 고민을 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아주 큰 망설임은 없었다. 이번에는 한 마리씩 검지손가락으로 콕, 콕 집지 않았다. 대리석 위를 그냥 손바닥으로 쓱 쓸어서 꾹 눌렀다. 그래도 죽이고 싶지 않은 마음은 한결같았다. 누르면서도 죽지는 않을 정도로 누르려 신경을 쓰곤 했다. 손바닥에 붙어서 발버둥 치는 개미들이 다쳐서라도 저 밖의 세상에서 살아있을 수 있도록, 여전히 창밖에 털어버렸다. 탈탈탈. 툭 툭 툭.


이때까지는 아직 대학살의 시대가 오지는 않은 때였다. 나는 이제 그들에게 인격적인 태도를 갖지 않기 시작했다. 더 이상 너희들 너무 한 것 아니냐고, 너무 많이 나타나는 것 아니냐며 말을 걸거나, 짜증을 내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무표정하게 그들을 눌러서 싱크대 수돗물에 씻겨 내려 보냈다. 이제 후 불어 날리려고 애를 쓰던 그들 한 마리 한 마리의 시대는 갔다. 한 마리만 바닥이나, 싱크대 하수구 같은 곳에 실수로 떨어트려도 괴로워하던 나였는데. 마침내 나는 그들을 죽일 수 있게 되었다.



2. 소외.


최근까지도 나는 거의, 설교 듣기 광이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두려울 때. 걱정이 있을 때. 초조하고 불안할 때. 언제나 나는 좋은 설교자의 음성을 찾아 나섰다. 책상에 앉아 영상과 함께 집중해서 보면서 듣기도 했지만 주로 지하철이나 동아리 방 소파나 방안의 요 같은 곳에 누워 쉬면서 가만히 귀 기울여 듣곤 했다. 적어도 그때의 나에게, 교회의 설교를 듣는 일이란 숨 가쁘고 비인간적인 세상과 정반대의 세계로 도망쳐, 은닉해 쉬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즈음에는 설교를 잘 듣지 않게 된다. 이유는 개인적인 삶의 맥락 속에서 복수의 이유들이 뒤섞여 있다. 중요한 한 가지 이유는 내가 싱크대 마블 대리석 위에서 기어 다니는 무수히 많은 개미처럼 취급당하는 듯한 달갑지 않은 기분 때문이다. 교역자들은 작가들처럼 정성 들여서 설교문을 쓰지 않았다. 어렵게 걸음 해서 찾아간 교회에서 내가 들어야 하는 설교란 번번이 권위적인 훈계와 호통으로 흘러갈 뿐이거나, 임기응변과 값싼 잡담으로 얼룩진 종교의식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다만 목회자를 존중하는 의미로 들어주고, 가만히 앉아있어 주어야 하는 예의와 극기 사이의 시간은, 뭐랄까. 슬프고 애처로운 것이기도 했다. 난 군중 사이에 껴 앉아서 나가지도, 의미를 느끼며 기쁘게 앉아 있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곤 했다. 나의 신세일뿐 아니라 교회의 신세였고, 나의 비극일 뿐 아니라 교회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무겁고 버거운 삶의 맥락에서, 또다시 새로운 윤리와 책임의 짐을 지울 뿐인 엄숙하고 독특한 언어의 체계를 정말 설교라고 불러도 좋을지 의문에 휩싸이곤 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불렀는데 교회와 교회를 위해 복무하는 교역자는 성도를 그렇게 개인적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이 설교를 대하는 교역자의 태도에서 잘 드러났다. 물론 설교자 자신도 잘하고 싶었겠지만, 더 이상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느껴졌다. 구조의 문제이든 사역자 개인의 신학적 소양의 문제이든 무언가 큰 벽에 막힌 기분이었다.


나의 개별적이고 독특한 사정과 삶의 맥락은 설교자의 관심 밖에 있는 것일 뿐이었다. 설교자는 자기중심적이고 하나님 중심적이었지 사람 중심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그러한 태도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했다. 아니면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여기거나.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런 것은 하나님의 정념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욕망과 폭력과 종교성. 그것들은 참 많이 닮아 있었다. 과잉 팽창된 욕망 안에서도, 폭력 안에서도, 잘못된 종교성 안에서도, 정작 사람은 소외되고 있었다. 소외의 자리에서는 더 이상 사람이 사람이 아니었고,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니었다.


사역자들이 처음부터 그런 태도를 가졌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개미 한 마리 한 마리를 보다가 그들을 집단으로 인식하면서 죄책감 없이 그들을 죽일 수 있었듯이 사역자들도 나를 아무개 교회의 신자라는 묶음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개별적 관계 안에서의 인격적인 인식이 타락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작은 교회와 큰 교회를 막론하고 목회자는 칭송받기 일쑤였고, 그에 따라 목회자 자신도 인격적인 소박함을 잃어가곤 했다. 그는 성도들의 작고 소박한 인격과는 대조가 되었다. 그들을 대표하기도 했다. 성도들의 개별적인 인격의 가치를 모두 합한 것처럼. 개별적 인격의 거대한 대리자가 되고, 과장되게 위대한 하나의 공식적 인격이 되기도 했다.


그런 일은 미시적으로 장로나 전도사에게서도 벌어지는 일이 되곤 했다. 대형 교회일수록 그랬다. 큰 교회는 목회자와 중직자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런 일이 일어나기 너무나 쉬운 구조를 갖고 있었다. 목사님, 전도사님, 장로님이란 단어에는 그런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름다웠던 우리의 교회는 마틴 부버가 말한 나와 너로서의 목사와 성도가 아닌 그것으로서의 목사와 그것으로서의 성도가 되어갔다. 타락이었다.



3. 목사였다.


그것이 진리이든 진리가 아니든 문학은 교회의 설교가 하지 못하는 일을 했다. 누구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내 개별적 사정에 대해 이해해 줄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점에서 이제 나에게 남은 거의 유일한 구원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만 위로하고 공감하는 일에 멈추기만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나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돕거나, 내 인격 안에 희망과 생기를 불어넣어 주거나, 나아가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감수성과 상상력을 자극했다.


기독교학과 과제로 월터 브루그만의 예언자적 상상력을 한 문장이 멀다 하고 밑줄을 그으면서 읽던 때처럼 나는 천선란의 sf 소설을 달게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근본주의적인 세계에 갇힌 목사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세계가, 쿰쿰하게 살아있는 미생물의 생명력이 젊은 문학 작가들의 세계 속에 있었다. 나의 관심이 신학에서 문학으로 조금씩 옮겨가는 것은 어쩌면 송어가 공장수로 오염된 강으로부터 도망쳐 맑은 물을 찾아가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단적이거나 이교도적인 시프트가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지극히 신학적인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만큼 나는 이런 방향성의 전환에 대해 일말의 두려움이나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다.


심령이 가난하고 허기졌던 내가, 이제 들을 만큼 듣고 경험할 만큼 경험해서 설교 듣기 수준이 너무 높아진 것일까. 너무 교만해진 걸까. 그럴 수도 있다. 적어도 이야기의 내용이나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 나는 청년기의 귀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까다로워졌다. 영적이거나 지적인 포만감이 극에 달했는지, 정말 교만하게도 너무 많은 설교가 오분 만에 식상하게 느껴지곤 하니 말이다.


이런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굳이 멈춰 서서 진지하게 묻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내가 관심 갖고 주목하고 있는 것에 대해 여전히 너무 목이 마르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가 나에게는 신비롭고 흥미로운 일이다. 요약하자면 그것은 사람이다. 개별적인 사람의 인격성에, 사람의 아름다움에 대해 너무 목이 마르다. 그런 내 목마름은 어쩌면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과도 포개지는 것이라고 느끼기에 스스로 나의 변화의 방향성에 대해 굳이 불필요한 질문을 던지지는 않게 된다.


그 목마름의 절정에 바로 목사가 있다. 어제 한 교회의 연속 특강에 찾아갔다가 한 목사님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는데, 당연히 나를 잘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뜻밖에 나를 보고 아주 반갑게 인사해 주었다. 나조차 그분과 개인적으로 뵈었던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그분이 너무 반갑게 악수를 청하며 인사해 주시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사람을 기억하고 알아보는 것이야 목사의 일이기도 하니까. 감동적이었지만, 그 자체만으로 엄청나게 좋은 인상을 남길만한 일이 될 수는 없었다.



나는 오늘.
목사를 봤다.
아주 오랜만에.



그보다 그냥. 그분의 느낌이었다. 내 마음에 남았던 것은.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소박함과 아름다움, 안식이었다. 아름다웠다. 나이스하거나 젠틀해서, 신학 분야의 전문가로서 실력이 좋아 보여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전혀, 전혀 아니었다. 그분의 눈동자와 인격 안에서, 다만 짤막하고 사소한 한 순간에 읽을 수 있는 인간적인 흔들림과 불안 같은 것이 오히려 끌렸다고 해야겠다. 좋은 목사란 어떠해야 하는지 아주 짧은 만남을 통해서 나는 이미 충분히 다 느끼고 흡수하고 말았다. 목사였다. 목사의 쉼이었다. 눈물겹도록 그립고 반가운. 나는 그 눈물겨움을 내 영혼에 잘 수납해 두었다. 색종이처럼 예쁘게 접어서.


나는 이제 지성과 영성을 더 이상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 같은 추상적인 무엇이라고 여기지 않게 되고 있는 것 같다. 대신 한 사람 한 사람을 개별적으로 인식하고,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한 감수성, 그것이 지성과 영성 모든 면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고 있다. 어떤 신비로운 능력보다도, 바로 그런 것을 파토스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사람이니까.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시큼한, 사람들이니까.


함께 있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하나님의 정념에 정치된 존재성. 그것은 내가 목말라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목사는 그런 양식으로, 지친 사람들의 쉼과 안식의 꼭짓점이 되어 다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주요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아직 이 흥미로운 공부를 해나가고 있는데, 내가 목말라하는 사람도, 목사도 의심할 여지없이 그런 모델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스스로 자신을 보통 사람들과 구별 짓는 존재가 아니라 외려 그리스도처럼 너무나 진하게 사람 같아서, 그를 통해 하나님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하는. 그러니까 정말. 만남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