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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집.

by jungsin



10분 동안 읽고 가자.


이 세상에는 10분이라도 머물고 싶은 이상한 마음이 있다. 남들은 다 집에 가는 아홉 시 반께, 흐르는 인파를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가 있다.


한 교회의 부흥회 강사였던 교수님의 책 파는 일을 돕고 다이소까지 들렀더니 어느덧 깊은 밤이었다. 이제 오리지널 하우스에 갈까, 아지트에 갈까, 서점에 갈까. 세 개의 꼭짓점 중에서 아무 결정도 하지 못한 채 몸이 가는 대로 갔더니 서점이었다.


G다시12에 잠시라도 앉아서 책 좀 쓰다듬으면(읽으면이 아니다), 마음이 좀 안정이 될까. 그러다 무심한 시선으로 몇 줄이라도 보고 싶었던 잡지 좀 보고 갈까. 내 이마나, 내장 기관이나, 발가락이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어쨌든 머리로 생각한 적은 없으니까. 그렇다고 가슴으로 뜨겁게 원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어딘가, 돌아갈 곳이 필요했던 것 같다. 예컨대 집이라고 느껴지는 곳. 집이라고 불리는 곳이 아니라.


154,000원이었다. 남의 교회 로비 테이블에 서서 친분도 없는 강사분의 책을 판 값은. 혹시라도 계산이 잘못될까, 몇 번이고 세고 또 세며, 지우고 또 지우며 결국 완벽히 해냈다. 고작 아홉 권 정도 되는 책팔기를 그렇게 긴장하며 했다. 떨리는 손으로 어느 책 몇 권 어느 책 몇 권을 팔아서, 총 얼마라고 봉투에 써서 마침내 장로님께 드리는 것으로 나의 임무는 끝이 났다.


사람을 대하는 일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나는 할머님들의 푸근한 마음을 잘 안다. 수고하시는 강사님 책 팔아드려야지 생각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성도님들을 대하는 일은 뭉클하고 기쁜 경험이었다. 그보다 나는 돈을 틀릴까 봐 긴장이 되었다. 더구나 오늘 강의 주제는 윤동주였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랐던 윤동주에 대한 강의가 있는 날. 유서 깊은 지역 교회 행사에서 단돈 천 원이라도 현금 계산 실수가 생겨 내가 돈을 빼돌리게 될까 봐 정말 살이 떨렸다.


정말 난 돈 계산에 약하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나 회개는 주변 사람의 몫이었다. 가족 중에는 엄마였고, 선교팀에서는 관심 있는 자매에게 부탁했다. 일평생 나는 행정적인 일을 피하려고 애썼다. 그 결과 흔한 가계부 한번 써본 적이 없는 삶을 살았다. 가능하다면 항상 어떤 일의 본질에 집중하려고 들었다. 그러니까, 집에서는 빈둥거리는 일에, 단기팀 사역에서는 교제하고 먹는 일에 진지하게 집중했다.


이곳이 집이라는 것을 느끼며 뒹구르는 일. 이곳이 교회라는 것을 잊지 않으며 아무렇게나 막 교제하고 날뛰는 일. 언제나 나에게 본질이란 그처럼 아무도 그것이 본질일 수 있다고 눈치채지 못하는, 가장 비본질적인 일처럼 보이는 것들이었다.


정말 나는 유복했다. 사랑과 끼와 처세술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부유한 마음과 임기응변으로 기회를 붙잡고, 위기를 넘기며 살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은 그 내용이 무엇이었든 유복했다는 뜻이었다. 이제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언제나 집에 있었구나.


내가 좋아하니까 너도 나를 좀 좋아해라, 그게 어렵냐. 알았어. 떡볶이 사주면 되지? 아, 됐어. 나는 아직 미열이나마 열기가 남아있으니까 우리는 이별하기 없어. 떼를 쓸 수 있었다는 것, 떼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유복했다, 나는 정말. 한순간도 빠짐없이 빼곡하게 행복한 집에 살았다. 모든 곳이 집이었던 날들이었다. 온종일 유비쿼터스 홈이었다.


집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집이 아닌 곳에서 두려움과 추위에 떨며 집을 그리워하는 방식으로 집이 어떤 곳이었던가 하는 것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그것을 이해해 나가고 있다.


집은, 가라앉는 곳, 무언가를 탁 놓는 곳이란 걸 배우고 있다. 이즈음 난 붕 붕 떠 있다. 설레는 감정으로 들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러니까 나는 지구를 이미 떠난 것만 같다. 우주인이 되어 대기권에서 붕 뜬 채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느낌이다. 아무리 외국에서 몇 달을 머물러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나는 정말 혹독하도록 새까맣고 공기도 너무 부족한 우주에 있다.


땅을 밟고 싶다. 집 현관을 열고 신도 안 벗은 채 그대로 마룻바닥에 엉덩이와 등을 대고 눕고 싶다. 지구가. 집이. 땅이 그립다.


이것은, 왜 맨날 이렇게 밤늦게 헤드폰을 쓴 저 이상한 아저씨는 g다시12에 와서 청초한 외서코너를 어둠으로 물들이고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너네는 보던 책 마저 보고 조용히 집에 가 고딩들아. 난 여기가 집이니까. 고등학생들이 교복 입고 어디를, 서점에서 예쁘게 손 꼭 붙잡고 다니고. 부럽다.









* 이글은 픽션과 논픽션의 혼합물입니다. 또한 이 글이 제 가치관이나 삶의 방향을 절대적으로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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