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해하며 고민하다가 깼다.
나는 무엇을 잃어버린 거지. 다 있는데. 다 있는데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거지.
나는 왜인지 욕실에 서 있었다. 리모델링을 하기 전의 그 넓고 정겨운 우리 집 욕실에 서 있었다. 내 바로 왼쪽 옆에 엄마가 물로 바닥 청소를 하고 있었던가. 아빠도 엄마를 도왔는지 오른쪽에 서 계셨던 것 같다. 나는 엄마와 살가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엄마와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며 놀았다.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으면 부모는 다 있는 것이고. 형제도 있는데? 누나도 밖에 어디 있는데. 그럼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힘들어했던 거지? 어리둥절했다.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었지? 누구를 잃어버렸었지.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깼다.
누군가가 듣는다면 철없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매일 음식을 하고 밥을 차려 먹고 치워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하루하루 돈도 벌고 비전도 성취해야 하니까. 너무 벅차다.
정신없이 말도 안 되는 찌개를 끓였다. 약간 남아있던 청국장 찌꺼기에, 긴 오뎅. 수제비 밀키트 재료 약간. 청국장 된장. 고추장. 황금버섯. 청양고추. 그것들을 모두 넣고 끓였다. 베란다에 내놓았던 차가운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냉장고에 오래 넣어놔 시큼해진 신 김치도 꺼내 놓고. 계란 프라이도 하고 얇은 햄도 살짝 익혔다. 하나를 만들고 차려 놓으면 하나가 식어서,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주방과 방을 수차례를 왕복한 끝에 겨우 상 앞에 앉았다. 마침내 작은 상에 앉아 멍하니 드라마를 보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어제의 첫 식사이자 마지막 식사였다. 정신없이 먹고 치우고, 남아있던 커피를 데워 머리맡에 놓고 드디어 커피색 러그 위에 누웠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난 그 속으로 들어갔다. 현실 속으로.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꿈이고, 어젯밤 꾸었던 꿈이 현실이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꿈속으로 들어왔다. 아직 아침 여덟 시도 채 안 되었는데. 꿈속의 하루가 너무 일찍 시작되어 버렸다. 길고 막막한 하루다. ‘Too boring.’ 지난 주일, 함께 예배를 보고 나가며 교회 현관문 앞쯤에 다다랐을 때, 노년의 목사님은 설교를 한 마디로 압축하셨다. 오늘의 설교는 누가 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보다 지난 주일에 목사님과 카페를 찾으며 다니다 찍어두었던, 작은 호텔 1층에 있던 카페의 빵과 커피가 더 기대된다. 오늘 하루의 꿈 중 가장 기대되는 순서다. 삶이 하나의 거대한 설교 같다. 막막하고, 힘겹고, 지루한 꿈이다. 너무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