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작은 고유함들에게

by jungsin



악스트 초기 잡지들로부터 세계고전까지 탐내다가, 크루아상의 수없는 실패, 커피콩빵은 전자레인지가 아닌 오븐에, 브라질 산토스 원두는 핸드드립보다 프렌치 프레스에, 모든 간식은 아카시아 나무 그릇에 올인원 플레이팅으로, 인센스 질식의 위협을 거쳐 생애 첫 김치 부침개 옹알이까지.


실온에 두었던 크로와상 생지. 개미 세 마리 정도가 그릇 틈으로 들어가 끈적끈적한 생지에 꼭 붙어있었다. 그들을 떼어서 큰 죄책감 없이 싱크대 수돗물에 씻겨 흘러내려가도록 했다.



일단 나름대로 발악하며 생존하고 있다. 식사는 굶어도 되고 거지처럼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커피랑 디저트는 우아하게 먹어야 한다는 디저트 사대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는 시간들이 되고 있다.


한 번도 그러길 바란 적도, 계획한 적도 없지만, 먹는 습관이 자꾸만 그렇게 되어 가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어떤 기회에 제대로 된 음식이 내 앞에 놓이게 되면 최대한 우걱우걱 집어넣고 보려고 하는, 아직도 철없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는데. 이제는 그런 모습이 반갑다. 어렸을 때의 생기 있는 남자아이가 아직도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져서.


은은하면서도 진한 나무 향을 뿜는 아카시아 나무 그릇에 어느덧 정이 들고 있는 것을 느낀다. 너무나 독특한 자기 냄새를 내고 있어서 나보다 훨씬 더 살아있는 것 같다.




그렇게 나만 아는 작은 달콤함의 감각들은 이제 굳은살처럼 내 몸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하찮은 모습들로 굳어가는 건가 싶어 약간 서글퍼지기도 하지만, 그보다 반가움이 더 크다.


아기자기한 고유함들은, 안락함의 감각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 시간의 재개발 계획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곤 한다. 삶은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뼈아픈 방식으로 배워가곤 하는데. 그러다 보니 유년의 순수함과 내 안의 고유함의 감각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었는지 그 가치를 곱씹으며 재평가하게 된다. 나는 이제 나의 고유함들을 할머니처럼 쓰다듬으며 작은 감각들을 잊지 않으려 애쓰게 된다.


제법 맛있었던 새우 김치 부침개. 백 퍼센트 나의 D.I.Y다.



정겨움은 슬픔이기도 사랑이기도 해서, 모든 정겨움들이 반갑다. 내 작은 ‘나’들이 반갑다. 살아있는 동안은 그들이 살아있어주었으면 한다. 그것이 나였고, 그 아이들 때문에 나이니까. 그런 작은 생기와 귀여움들을 내가, 언제까지나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중에 헤어진 사람들이 날 알아볼 수 있게. 내가 나의 영혼을 잃어버리지 않게.




(작성 중에 우선 업로드하였습니다.)



작가의 이전글쥐 트웰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