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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sin Feb 27. 2023

갈라짐의 경계




뒤꿈치가 갈라졌다. 따갑고 신경 쓰여 도저히 가만히 둘 수 없는 컨디션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는 마스크팩 껍데기에 남은 영양분으로 발뒤꿈치를 붕대처럼 덮고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누워서 자버렸다. 이번 겨울은 모든 일이 이런 식이었다.


겨울은 원래부터 건조한 계절이었고 몸이나 물건 등 많은 것들이 늘 갈라지곤 했으니까. 겨울에 무언가가 갈라진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의 갈라짐은 달랐다. 여러모로 이 겨울의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정성을 들여 일을 잘하는 것은 희망이 가득할    있는 일이다. 가령 한국사람들이 원기라고 부르기도 하고 코어 에너지라고 부리기도 하는 . 그러한 힘이 지금은 현저히 떨어졌다. 그것은 신체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차원이었다. 달리 표현하면 영혼의 차원 같은 것이었다.


작은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마음의 힘도 없었다.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탈 없이 지나갈 수 있게 된다면 나에게는 성공이었다. 자신은 알았다. 모두가 이해할 수 없을 때도 난 혼자 속으로 오히려 이 정도면 칭찬할만한 일이라고 느끼곤 했다. 따라서 거의 대부분의 삶의 순간마다 경제적 생존을 하는 편을 택하게 되고는 했다. 그것은 진화생물학이었을까. 갈라파고스 제도의 핀치새의 부리 모양이 어떤 과정을 거쳐 달라졌다는 이야기와 같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뒤꿈치의 갈라짐은 그러한 태도의 절정에 있었다.


정말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커피 하나만은 열심히 추출해서 마셨다. 그 일만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핸드 드립으로 깔끔하고 감칠맛 나는 커피를 마시고. 모카포트로 향긋하고 진한 커피를 조금씩 마시고. 그러다가 자고. 또다시 고소한 라테를 만들어서 마시고. 그러다가 또 책을 좀 보다가 잠이 들고. 사실은 이번 겨울을 거의 그런 식으로 보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커피 외에도 너무 할 일이 많았고 겨우겨우 해내는 듯 보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살아있기. 한 가지만 하는 것이 그토록 벅찼다. 발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거의 잘 씻지도 않았고 풋크림 같은 것으로 잘 관리하지도 않았다. 정말 그렇게 발도 관리할 수 없었느냐고 하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기도 했다. 그럴 수 있었을 텐데. 정말 그렇기도 한데 그럴 수 없었던 것. 정말 그런 것이 있다는 걸 이 겨울에는 온몸으로 느끼고 배웠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화를 내는 사람이 열에 아홉이다.


그처럼 신비로운 무력함은 나라는 작은 행성 안에만 수천수만 개가 있는데. 이 은하계와 우주 안에는 당당하기만 한 이분법적인 호통에 의해 빗금 쳐지는 수많은 우울과 실패, 무기력이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토록 위태로운 감정들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줄 수 없어 사람을 피하게 되고 종교에 기대보기도 하지만. 그냥 표지가 아름다운 책에 기대보게 되기도 한다.


마치 헤어짐을 직감하고 있는 커플의 세계처럼. 닿으려 해도 닿지 않고 미처 미치지 않는 것. 두 세계를 가르는 기준이 너무나 명확한 ‘사건의 지평선’이 아니라 사건의 경계선 같은 것이 있다. 별말 없이 순순히 이별을 받아들이고 정리하고 있는 두 사람의 사이. 그 말없음의 공간과도 같은 단조의 세계가 있다.


사건의 경계선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 단조의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 속 깊은 사람. 말없이 함께 걷고 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친구. 그런 사람이 그립다. 그런 사람에게는 무슨 이야기라도 해줄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없고 따라서 내 발이 갈라진 것이다. 노르웨이의 숲이나 더 포스트는 내게 그런 책과 영화다. 읽어야지. 봐야지. 그래서 덥석 사두었지만 오 년 또는 십 년이 다 되도록 펼쳐보지 못한 것들. 클릭 한 번을 하면 되고 칼로 비닐 포장만 뜯고 첫 페이지만 펼치면 되는데. 그 일을 할 수 없었던 것들.



드디어 노르웨이의 숲을 뜯는다.


한 4 년쯤 되었을까. 노르웨이의 숲을 중고서점에서 얼른 집어든 그 순간으로부터. 더 포스트는 개봉일을 확인해 보니 보고 싶어 한 지 오 년 가까이 되었다.


즐거운 일들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없어서. 장조의 이유들로 뒤로 미뤄진 것들. 정반대로 이제 남는 것은 시간뿐인데. 마음이 갈라져서. 도무지 윤기가 없어서. 단조의 이유들로 볼 수 없었던 것들. 그것들을 하나씩 뜯어서 정리를 해나가보고 싶어졌다. 아무튼 겨울도 끝나가고 있으니까. 봄도 오고 있으니까. 어떤 겨울이었든. 어떤 봄이든.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때는 정리를 해야 하는 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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