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가게의 CD 감상 기계를 회상하며
고등학교 때 학교를 마치면 집에 오는 길에 의식처럼 하는 일이 있었다. 음반가게에 가서 테이프를 사는 일이었다. 영화를 1.2배 속으로 본다는 디지털 내러티브 세대라면 본 적도 없을지도 모르겠다. 레코드샵의 CD 감상 기계라는 것. 아날로그 세대라면 누구나 그 오디오 기계와 관련한 추억이, 어떤 식으로든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 이 썰은 ‘나는 남들과 달라’라고 외치던 X 세대 시점의 회고록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의 느낌을 정말 정확히 이해하려면 93, 4년도 즈음부터 90년대 후반, 길게는 이천 년대 초까지의 공기 속으로 들어가고, 그 공기 속의 CD 감상 기계 앞으로 다가서야 한다.
‘젊은이’들이 누비던 길거리에는 언제나 큰 데시벨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일이백 미터 간격으로 흔하게 있던 리어카에서 틀어 놓는 것이었다. 리어카에는 최신 인기가요를 최신곡의 배합과 순서만 달리해 녹음해 놓은 무허가 테이프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리어카에는 닳고 닳은 저품질의 스피커가 항상 테이프로 칭칭 감겨 붙어 있었다. 사장님은 그 안 좋은 스피커를 통해 귀가 찢어질 듯한 최대 볼륨으로 우리에게 음악을 들려주었다. 바야흐로 길보드 차트의 전성시대였다.
그렇게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가요톱텐 급상승 음악들의 하이-우퍼 울림을 온몸으로 통과해 지나가면, 큰 사거리가 나오기 전 좁은 인도 가에 내가 즐겨가던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음반가게가 있었다. 그 레코드샵의 사장님은 길보드 사장님들처럼 테이프 좀 보고 가라고 소리도 지르지 않았고, 음악도 너무 큰 볼륨으로 틀어놓지 않았다. 가게 안의 모습이 잘 내다보이는 통유리벽의 오른쪽 윗 모서리에 매달린 좋은 스피커에서도 길보드 리어카에서처럼 음악이 들려왔다.
잘 들어보지 못한 팝송이 주로 흘러나왔지만, 가끔 나름대로 음악성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예를 들면 이문세나 봄여름가을겨울, 낯선 사람들이 그랬고. 조관우와 김건모 정도가 마지노선이었다.) 인기가요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딱 적당한 볼륨으로, 또 (그 시절의 내가 듣기에는) 깨끗한 스테레오 고음질로, 마음을 끄는 음악이 들려오곤 해서 가게를 지나쳐 가기만 해도 마음이 설렜다. 그 레코드샵 앞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잠시라도 들으며 걷고 싶어서, 나는 일부러 그 길로 지나가기도 했다.
음악에 홀린 듯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딸랑거리는 출입문 종소리와 함께 전혀 다른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술취해 있다든지 너무 어리다든지 하지 않은, 점잖은 젊은이들과 어른들이 각자 앨범을 들고 진지하게 송 리스트를 훑어보고 있었다. 불안함과 피로감의 학교생활에 찌들고 지쳐있던 나는 교복차림으로 그곳에서 잠시라도 꼭, 일종의 정결 의식처럼, 음악의 샤워를 하곤 했다.
그 샵에는 가게(혹은 음반 회사)에서 추천하는 특정 cd 앨범의 수록곡들을 들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고정된 cd 플레이어가 있었다. 백화점 안의 레코드샵이나 젊은 사람들이 붐비는 길거리의 트렌디한 음반 가게 같은 곳을 찾아가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 앨범 재생 기계가 있었는데, 우리 동네에는 그런 샵이 L백화점에 하나 N역에 하나가 있었다.
나는 그 기계를 사랑했다. 정결 의식은 이렇게 진행된다. 먼저 듣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CD 재생기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이, 무심하게 그 주변에서 CD나 테이프들을 뽑아 들고 구경하고 있는다. 노래 제목을 하나하나 매직아이처럼 뚫어져라 노려보기도 하고, 알지도 못하는 작곡가와 작사가들의 이름을 괜히 한 번씩 곱씹어본다. 이윽고 앞사람이 헤드폰을 내려놓고 떠나가는 것을 보면 기계 앞으로 다가선다. 설레는 마음으로 바깥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헤드폰을 튼튼히 끼고. 옆으로 누워있는 세모 모양의 play 버튼을 누르고 눈을 감는다(이때 눈을 감는 것은 왠지 내 모습이 창피해서이기도-그때는 헤드폰을 쓰는 사람이 흔하지 않은 시대였다-하고, 음악을 아는 멋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트랙을 넘기면서 한 곡, 한 곡, 귀 기울여 듣는다. 짤막한 시간을, 짧게는 1~2분에서 최장 7분 정도. 그렇게 눈을 감고 잠깐 다른 세상을 다녀온다. 도피가 아니라 꿈이었다. 잠깐 비빌 수 있는 품이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음악감상기계 앞에 줄을 서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X 세대니까. 나는 남들과 다르니까. 무료하고 절망적인 학생의 일상에 이것은 절실한 꿈의 순간이었으니까.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도 했지만 약간의 관종끼가 있던 나는 오히려 즐기기도 했다. 그 시간이 그때는 왜 그렇게 소중하게 느껴졌는지.
다음날도 나는 그 자리에 있다. 헤드폰을 끼고, 재생 버튼을 누르고, 눈을 감는다. 이 작은 의식 후에, 가의 음악 감상기 속의 CD와는 전혀 다른 테이프를 샀다. 일주일에 두어 개 정도는 거의 꼭 샀다. 주로 전혀 알지 못하는 뮤지션들의 테이프들을. 앨범 표지만 뚫어져라 보다가 집어 들거나, 곡의 제목만 보고는.
아직도 한번도 듣지도 않은 수백 개의 테이프들이 옥탑방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것이다. 내가 샀던 건 꿈이었다. 사람이 올바를 수만은 없다. 무엇엔가, 예술이든, 사람이든, 하나님이든. 어떤 존재의 품에 얼굴을 묻고 칭얼거리며 꿈꿀 수 있는 것. 그리고 완전히 수용될 수 있다고 믿어지는 존재의 품에 안겨서는 급기야, 삐뚤어지기마저 할 수 있는 것. 적어도 내게는 절실한 숨통이다.
* 그림은 Viva la vida : 삶을 살아라(2022), 파시호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