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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망울

희망.

by jungsin


#1 이상한 경험

이상한 경험을 했다. 얼마전 sns친구이기만 하시던 한 목사님의 소식이 뜸하셔서 메신저를 통해 찾아 보았다. 그 목사님은 아프셨는데 가끔 sns에소식을 올려 주시곤 하던 분이셨기에 문득 그냥 좀 목사님의 소식이 궁금해져서 그냥 무의식적으로 목사님을 찾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목사님 성함이 잘 생각이 나지 않아 검색어를 바꿔가며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전 여자친구의 프로필 사진이 잠깐 본 것 같았다. 목사님의 성함과 그분의 이름은 비슷한 글자가 없는데 내가 오타를 치면서 나오게 된 것인지 왜인지 모를 이유였다. 나중에 목사님의 성함이 생각이 났지만 찾으려던 목사님을 찾지는 않고 돌아가 다시 그분을 찾아 보았다.

사실 그분은 이미 결혼을 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아니 결혼을 했다. 헤어지고 보게 된 프로필 사진이 결혼 사진이었으니까 결혼을 했다. 윤리적 강박을 약간 안고 사는 나이기에 더는 그분을 생각하거나 사진을 보거나, 연락 같은 것은 당연히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이제 나에게 절대명제였다. 한번은 헤어지고 우연히 카페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황급히 자리를 피했었다. 그분이 현실속 허즈번드로 보이는 분과 함께 들어왔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도망치듯 피했을 것이다. 그분의 행복을 바랐고, 그일을 내가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나의 윤리적인 기준에서는 더이상은 마음으로도 절대로 선을 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이상한 마음도 있었는데, 무서웠다. 그냥, 두려웠다. 마치 지옥이라도 갈것처럼 그 두려움의 선을 넘으면 안 될 것 같았고, 정말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눈물은 희망이 터트린다.


#2 눈물 콧물

그러나 나는 메신저를 보고 말았다. 절망 때문이었다. 살고 싶지 않다고, 너무 늦게까지, 살지 않아야 한다고 근래에는 정말 사실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쩌면 살고 싶었나 보다. 문득, 아주 잠깐, 커튼 뒤에 펼쳐져 있을지 모르는 생의 초원이 궁금했나보다. 기쁨의 초원. 행복의 초원. 얼마만에 본 것일까. 나란 사람이라면 결혼한 것을 알고는 아예 전혀 그러지 않았을 테니까. 아무튼 그 안에는 거짓말처럼 그분과, 함께 주고받은 수많은 사진들이 아직도 그대로 있었다. 대화보다 먼저 사진들을 보았다. 정말 그러면 안 되는데. 예뻤다. 젊고 풋풋하고 예뻤다. 내 사진들도 망가져가고 있는 지금의 모습과 달리 생기있고 젊고 풋풋한 미남이었다. 환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만큼 놀라운 모습이었다. 희망으로 가득한 표정을 하고 있었으니까.

희망. 그분을 볼때는 그냥 좋은 마음으로 약간의 길티 필링을 머금고 보게 되었다. 정말 좋아했던 것 같았다. 정말 밝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좋았던 한때를 기념하는 듯한 마음으로 보았을 뿐 마음이 아직 무너지지는 않았다. 약간 웃음이 나고 간지러운, 이상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이미 선을 넘은 사람에 대한 어떤 엄격한 통제의 마음이 있어서 담담히 보게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나를 보면서 어떤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희망이 나의 눈망울에, 눈섭에, 광대에, 볼에, 입술에, 날렵한 턱선마다 있었다.

울었다. 설레 하기도 하고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함참을 사진을 보다가… 화장실을 다녀와서 기도를 했고. 그리고 울었다. 울다보니 콧속에서 말간 콧물이 좀 나왔다. 콧물을 닦는데 빨간색이 섞여 나왔다. 코피가 약간 터졌다. 작게 코피가 섞여나왔다.

#3 울자.

이렇게 울음이 터진 것도 얼마만인지. 꽁꽁 얼어있던 마음. 핀셋 하나가 바다 얼음장을 깼다. 글도 보았다. 대화들. 아기자기하고 사소한 대화들. 그리고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나의 마음.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걸까. 내가? 그렇게 희망과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내가 우울증에 빠져 있었던 걸까. 아무 희망도 없는 마음이었나 정말, 나는. 불과 얼마전의 그 일들, 다정하게 서로를 긍정하고 지금을 사랑하고 미래가 밝았던 그분과 나의 대화를 보면서 공포 속에 움크리고 있는 작고 착한, 소년이 보였다.

그순간의 울음에는 감사함이 섞여 있었다. 콧물에 섞여 있었던 코피처럼. 아직 내가 생의 감각 속에서 살고 있고, 그때는 나에게도 희망이 있었다는 사실, 그러한 기억이 내 삶의 한 부분에 녹아 있어, 이렇게 지금도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지극한 감사함이 섞여 있었다.

나에게는 충분히 감사한 사람들이 있다. 모두 사랑이었다. 설렘이었다. 행복이었다. 꿈이었다. 울자. 코피를 흘리자. 아파하고 무너지자. 깊고 깊은 곳으로 가 나를 찾아 이산가족 상봉을 하자. 부둥켜 끌어안고 부비며 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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