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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잼과 Ditto

by jung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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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잼을 먹으면서 뉴진스의 디토를 보았다. 스푼의 얼굴 부분이 아주 작고, 긴 스푼을 집고 딸기잼을 한 스푼씩 떠먹으면서, 아이스커피와 함께 어느새 나는 디토를 부르는 뉴진스를 진지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의 의지로 걸그룹의 영상을 찾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평생토록 말이다. 그러니까 내 손으로 뉴진스 디토, 이렇게 영상을 검색해서 누르고, 시신경을 영상에 고정시키고, 한눈조차 팔지 않고 집중해서 가만히 걸그룹의 음악 영상을 본 것이다. 날 좀 아는 사람이라면 나에게 벌어진 이런 일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정말, 길거리에서 민지가 눈앞에서 지나갔어도 누군지도 모른 채 지나쳤을 것이다. S.E.S.와 핑클 이후로는 어떤 걸그룹 음악도 듣지 않은 나였다.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비판적이기까지 했다. 걸그룹 노래에서는 일말의 음악성도 찾을 수가 없고 천하고 선정적이라고 느꼈으니까. 나에게 걸그룹 음악이란 자본주의 연예 산업의 산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일종의 분노 섞인 비판 정신을 시크함으로 표현하려 했다. 아예 관심과 시선을 주지 않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음악 방송의 걸그룹 출연 영상 같은 것을 추천하면 신경질적으로 스와이프 해서 넘겨버렸다. 이제 알고리즘도 지친 건지, 마침내 나를 이해하기 시작한 건지, 점점 추천도 하지 않아 정말 볼 일이 없었다. 내 안에서 드디어 걸그룹이 완전히 말라죽어 버렸다. 정말 바라던 바였고 걸그룹의 음악을 찾아 듣는 미래는 나에게 있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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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던 90년대 초에 벌써 아이와(AIWA) 워크맨으로 음악을 들으며 등교할 만큼 나는 일찍이 음악을 좋아했다. 주로 멜로디나 가사가 달콤한 발라드와 팝을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취향의 폭이 좁지는 않았다. 록음악도 즐겨 들었고 댄스 음악도 가끔 들었는데, 90년대 후반의 댄스 음악은 특히 좋아했다.


내가 20대 후반이 되었을 무렵부터인가. 어느새 한국의 대중가요 시장을 아이돌이 지배하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한 시점이 있었다. 이제 토요일 오후에 하는 가요 프로그램을 틀어도 들을 음악이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불호를 넘어 분노감까지 느낀 것이 그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나의 낭만의 중요한 한 축을 앗아가 버린 극단적 자본주의와 디지털 기술 사회에 대한 분노가 마음속에 내재화되고 좀 투사가 된 것 같다. 그렇게 약간은 엉뚱하게, 걸그룹의 음악과 걸그룹 자체까지, 일종의 혐오의 감정을 느끼던 시간들이었다.




Dotto 뮤직비디오 한 장면 1 (지붕뚫고 하이킥 식의 쓸쓸한 엔딩)




Dotto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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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걸그룹의 중세 암흑기 같은 시간이 흘렀다. 긴 긴 걸그룹 중세 암흑기를 끝내도록 했던 것은 Ditto였다. 뉴진스가 아니라. 그러니까 나는 디토가 아니었다면 결코 뉴진스도 찾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라디오였을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그날도 나는 아무 힘도 의욕도 없이 그냥 시체처럼 가만히 누워 있었을 것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떻게 알 수 있냐면, 늘 그랬으니까. 디토가 처음 흘러나올 때도 나는 그냥 음악이 흘러나오나 보다, 불편할 정도로 환한 빛이 뽁뽁이가 덕지덕지 붙은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걸 보니 밖에는 봄이 왔나 보다 생각하며 그냥 가만히, 가만히 숨만 쉬고 있었을 것이다.


음악이 시작되고 한 30초쯤 흘렀을 무렵일까. 첫 진통이, 아니 첫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뱃속에서 아기가, 아니 뜨거운 뭐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첫 펌핑이라고 해야 될까. 이상하게 설레는 감정을 느꼈다. 난 분명 지금 걸그룹 음악을 듣고 있는데 왜 설레지? 내가 뭘 꿈꾸고 있는 거지?


아무튼 그건 꿈이었을 것이다. 힘없고 무기력한 나에게 와서 꿈을 주는 것. 어렸을 때부터 음악은 나에게 그런 것이었다. 알 수 없는 언어로 뜨거운 무언가를 전해주는 음악적 감흥이 나에게 낯선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걸그룹 음악에 반응하다니. 스스로도 놀랐다.


이후로 Ditto를 한 70번은 들은 것 같다. 나의 플레이 리스트에서 첫 번째 곡이 되어있을 정도로 즐겨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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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y in the middle

Like you a little

Don’t want no riddle

말해줘 say it back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기까지 했다. 내가 라흐마니노프나 쇼팽이나 CCM이 아니라 뉴진스를 흥얼거리고 있다. 딸기잼을 떠먹으며 뉴진스를 듣고 있다. 달콤시큼한 딸기잼과 Ditto가 너무 잘 어울렸다. 바로 이 대목부터였을 것이다. 진지한 질문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나는 무엇을 흥얼거리고 있는 걸까. 지금 난 무엇에 반응하고 있는 걸까. 디토를 비롯해 뉴진스와 관련된 영상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이오공과 플랭크라는 뮤지션들에 대한 이야기, 기획사 대표 민희진의 인터뷰 영상까지. 뉴진스는 뉴진스로서 뉴진스를 할 뿐이지만, 뉴진스를 만든 것은 민희진이었고, 뉴진스의 음악을 만든 것은 이오공과 플랭크였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음악을 만들고 걸그룹을 기획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보고 싶어서 빛나는 눈빛으로 예술에, 일에, 끝을 알 수 없는 검푸른 바닷속에 뛰어들어 깊숙이 잠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무언가 말로 표현되지 않는 자신 안의 음표들을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았다.


민희진은 SM에서 한때 인정을 받고 승진을 거듭하며 재밌게 일을 한다. 평사원에서 시작해 이사까지 되었을 무렵, SM이 일하는 방식에서 어떤 매너리즘이나 한계 같은 것을 느낀다. 번아웃이 오고, 20년 가까이 해오던 일을 아예 그만둘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야기의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역경의 플롯이었다. 일에 치이고 더 이상 재미를 못 느껴 힘들어하던 암흑기에 하이브가 손을 내민다. 그녀는 SM을 떠나 하이브에 와서 어떤 절정을 보여준다. 어둠에서 빛으로의 대전환. 하이브 식의 걸그룹과 SM 식의 걸그룹은 선과 악의 구도였다.


어쩌면 너무 익숙한 논법이었다. 안데르센 동화 같았다. 가령 벌거벗은 임금님이 그랬다. 힘과 위선. 욕망. 어른들의 비굴함. 그곳에서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낸 소년. 뉴진스 뒤에는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가 있었다.


전형적이고 지루한 플롯이지만, 그래서 더 가슴을 뛰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정형화된 플롯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그들의 꿈의 내용과 결과물이었다. 민희진의 꿈은 아름다웠고, 나는 디토에 토를 달 수 없었다.


무력해져 있는 생소한 자신의 모습에 나는 어느덧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디토. 하이틴 영 걸그룹의 음악. 나를 뛰게 하는 리듬. 스테이 인더 미를, 라이큐어 리를.


맥박이 뛰고 있었구나. 울렁거렸다. Ditto를 들으면서 어딘가에 묻혀 뛰지 않고 잠들어 있던 어떤 가슴이 다시 풀렁풀렁 뛰는 것을 느꼈다. 잔뜩 긴장해 경직되어 있던 실뭉치 같은 영혼에서 한 올의 실가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아득한 소년시절의 꿈.
살아있다는 것.
생기. 꿈. 달콤함.



딸기잼이든, 음악이든, 누군가, 무엇인가, 말을 거는 것 같았는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다만 절망과 어둠 속에서도 나는 아직 어떤 이야기를, 행복을 목말라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번 화는 여기까지다. 말해줘 say it back.











(비슷한 주제로 연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현실과 우울감이 날 가두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반대로 그것들로부터 너무 해방되어도 여기서 끝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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