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reaming retro house
본격 city road essay.
흰색 반팔티에 투명한 화장을 한 젊은 여자를 보고 초여름이 온 것을 알았다. 그나마, 입고 나왔던 검은색의 무거운 재킷을 조금 전에 대충 가방에 쑤셔 넣어두어 다행이었다. 이렇게라도 철 지난 옷차림의 창피함을 조금은 덜 수 있었으니까.
나는 한 십오 분쯤 전부터 그렇게, 시무룩하고 무겁게, 땅을 보고 뚜벅뚜벅 걷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고개를 들었을 때 그런 장면을 보았다. 야나기사와 쇼 감독의 포카리스웨트 광고와 같은.
투명해 보일 정도의 하얀 피부에 적당히 달라붙는 환한 하얀색 티셔츠, 그리고 바람에 날리는 생머리. 눈이 부셨다. 여름은 가벼운 젊음과 같았다.
정말 재난처럼 여름도, 젊음도, 포카리스웨트도 찾아왔다. 마트를 가면서 이렇게 심각하게 걷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퇴근을 하거나 약속을 잡고 도시의 중심으로 나가는 초저녁이었다.
집에서 나와, 여느 때처럼 태연하게 시립 자전거의 큐알코드에 카메라를 가져다 데고서야, 마침 오늘 자전거 구독이 끝난 것을 알았다. 마트까지는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의 거리였다. 한번 걸어가 보자고 생각했다. 붉은 벽돌의 올드 빌라에 칩거하면서 작은 일도 힘겹게, 힘겹게 하던 나에게 한 정거장 거리의 마트까지 구두를 신고 걸어간다는 건 국토대장정 같은 일이었다.
일곱 시도 넘었는데 아직 해가 밝았다. 주로 밤에 도시를 활보하던 나였기에 낮만 같았다. 맨발에 로퍼를 신고 고작 십 분쯤 걸었을 때였을까, 어느새 얇게 땀마저 맺히고 있었다. 날은 화창했고, 검은색 긴팔 카라 티셔츠도, 그 위에 입은 A/W 시즌 블랙 재킷도, 철이 지난듯한 로퍼 구두도 오늘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금세 알아차렸다.
나에게 여름은 오늘 찾아온 것 같았다. 귀에 낀 큰 헤드폰도 무거웠고, 좋아하던 김광민도 바하도 답답하고 짜증스럽게 들렸다. 운동화를 신고, 반팔 티를 입고, 가벼운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끼우고 뉴진스의 디토를 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몇십 미터를 더 걸으면서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었다. 나였다.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것은. 나의 존재와 초여름의 저녁은 너무 대비되었다. 철이 지남. 어두운 톤. 무거움. 우중충함. 그것은 옷차림이나 외모만은 아니었다. 마음이었다. 여름은 마음이었다. 젊음이 그런 것처럼, 초여름도 하나의 마음이었다.
그래. 나는 이 도시에 살고 있었지.
깊은 밤이면 열한 시 사십 분쯤, 문을 닫기 직전에 마트를 털러 온 폭동처럼 찾아와서는 텅 빈 마트를 돌아다니며 신중하게 우유 하나와 빵 하나 정도를 사서 유유히 나가곤 했는데. 저녁 일곱 시 이십삼 분에는 선풍기를 파는 전자제품 코너에도 점원이 있었다. 코너마다 점원도 많고, 사람들도 많고, 조리 제품도 꽉꽉 차 있었다. 정말 도시 같았다.
마트를 나와서 무거워진 홈플러스 가방을 메고 땅을 눌러 밟으며 걸었다. 어느새 바깥은 다시 캄캄해져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 짙은 원색 셀로판지로 유리벽을 가득 붙인 술집들이 길가에 즐비해 있었다. 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캄캄하게 막혀있다는 것. 도시는 다시 밤이 되었다.
폐쇄적인 공간을 지향하는 술집을 보자 정반대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집을 나서 걸어오면서 보았던, 한 밝은 집이었다. 그 주택은 담장도 밝았고, 집 외벽 톤도 밝았다. 어스름한 노을마저 집안을 환히 비춰주고 있었다. 나는 이런 느낌의 주택을 좋아한다. 밝은 페인트칠과 유리문, 샷시, 그리고 베란다를 열면 훤히 보이는 집안 거실.
그러한 집에 산다는 건, 하나의 삶의 지향이다. 그런 삶의 지향이 나에게는 무엇보다 자유로 비친다. 집이든, 사람이든 투명하게 밝다는 건 자유롭다는 뜻이다.
나는 그런 집을 꿈꾼다. 문을 열어놓고, 집안 불을 환히 켜놓고, 음악을 틀어놓고 바람이 통하게 한다는 것. 그럴 때 오후 다섯 시 정도의 달큼한 열대 여름 공기가 섞인 바람이 집안으로 솔솔 들어오는 집. 아까 마트에 가까워올 때 보았던 포카리스웨트 여자 같은. 초여름 같은. 그런 레트로 하우스.
사방이 꽉 막힌 어두운 술집은 소멸을 향해 간다. 행복이 삶을 향해 가는 것처럼, 절망은 정확히 행복과 대칭되는 어느 반대편을 향해 가속력을 내며 낙하한다. 절망과 희망, 겨울과 여름, 밤과 낮. 계절도, 삶도 그러한 대비 속에서 피어난다.
삶은 테제these와 안티테제antithese, 진테제synthese를 끝없이 그려나가며, 자꾸만 새로운 세계를 지향한다. 어둠과 빛, 죽음과 부활, 단조와 장조를 왕래하면서, 초여름과도 같은 새로운 시간속으로 자꾸만 파고든다.
시간이 자꾸만 내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다그치는 듯하다. 테제에 머물러 있지 말고, 테제에 맞서보라고, 맞서고 맞서 안티테제를 넘어 진테제로 나아가라고. 나는 그럴 생각이 없는데. 나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데. 아무것도 잊을 수 없는데. 우중충한 옷처럼 지난 계절 한복판에 파묻혀 있는데. 나를 제외하고, 온 세상이 이질감으로 미끌거리는 이온음료 같기만 하다. 그러니 나는 이렇게 말해야 될 것 같다. 내 몸과 먼 세상, 포카리스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