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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나의,

한 가지 관심.

by jungsin




라떼를 좋아해.


라떼라면 아이스든 핫이든 무엇이든 좋아하는데, 이즈음처럼 더워지는 한낮에 햇볕을 맞으면서 한 모금 꼴깍 넘기는, 달짝지근하고 비릿한 우유에 진한 에스프레소가 들어간 아이스 라떼는 정말 내 영혼을 그득 채워주는 것만 같아.




​우유 더하기 커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음료의 조합이야. ​마침 방금, 먹다 만 츄파춥스와 찬 커피가 조금 담긴 텀블러에, 찰랑찰랑 남은 우유를 마저 다 부어 마셔 버렸어. 역시, 맛있다. 이제 냉장고에 있던 우유가 다 떨어져 버렸어. ​




세상 모든 음료가 사라지고 한 가지만 남겨야 한다면, 무엇을 남겨야 할까.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유와 커피, 두 가지를 두고 치열한 고민을 하게 되는데. 정말이지 둘 다 빼고 싶지가 않은데. 그래도 꼭 하나만 남겨야 한다면, 정말 그래야만 한다면 그것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한 여름에 들이키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포기한다는 건 생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의 절반 정도를 포기하는 일이 될 거야. 커피를 빼서는 안 돼. 커피를 뺄 생각은 하지도 마. 안 돼. 난 정말 안 된다고 했어.



커피는 내가 되기 위한 거거든. 깨어있는 제정신, 나의 정신으로 살아있기 위한 것. 생에 대한 진지한 의지 같은 거야.


기본적으로 그런 의미가 있고, 또.. 나한테는 일종의 예술적 의미도 있어.


커피의 맛을 알아갈수록 다채롭고 싱그러워. 커피의 맛과 풍미들이 나에게는 생의 활력과 예술적 상상을 불어넣도록 도와주는 것 같아. 그렇지 않아도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인생에서 정말 즐거운 순간은 그리 많지 않은데. 이토록 드물게 즐거움이 되어주는 것마저 빼서는 안 되는 거잖아. 그러면 삶이 너무 퍽퍽하잖아. 커피는 나에게 하나의 예술인데. 인생에서 예술을 뺀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 되는 거잖아. 그래서 커피는 안돼. 정말 그건 너무 절망적인 삶의 조건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만 남겨야 한다면,




그것은 우유가 되어야 할 것 같아.


나의 생각을 지금 한꺼번에 다 쓸 순 없겠지만 그래도 아등바등, 꼼지락꼼지락 한번 표현해 볼게.


살아간다는 것에 층위가 있다면 아주, 아주, 깊은 곳에 예술이 자리하고 있을 거야.

그럼에도 언제나, 삶에는 예술보다 더 본질적인 차원이 있는 것 같다고 느껴, 난.




삶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
그걸 우유라고 해두자.




왜 그런가 하면,

난 우유를 마시면 그 비릿하고 고소한 맛에서 영혼의 비워있는 부분이 가득가득 채워지는 느낌이 들거든. 왜 그렇게 느껴지는지는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어. 이렇게 추리를 할 수 있을 뿐이야. 우유는 동물의 젖인데, 젖은 사랑이거든. 나에게는 그래, 젖은 사랑으로 느껴져. 물론 그런 걸 생각하며 우유를 마시지는 않았는데.. 글을 쓰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았어. 젖비린내라고 하지. 젖에서 나오는 맛과 냄새. 그게 고소하고, 건강하게 느껴지는데, 난 그걸 영혼 가득, 사랑이라고 느끼는 거야.




그러니까 예술은 없으면 삶이 메말라버리는 것이지만, 사랑은 없으면 삶 자체가 사라져 버려. 삶, 생명, 그리고 이 우주 전체는 온통 사랑으로 채워져 있어. 그러니까, 사랑이 없으면 곧 생명이 사라져 버리는 거야.



​그리고 정말 말이야. 우유에는 예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있는, 가장 낮은 단위의 생의 비릿함 같은 것이 있어. 난 그게 너무 눈물겹거든. 우유에서는 폐지를 줍는 할머니의 노릿한 살갗 냄새도 느껴지고, 곁에 잠시라도 엄마가 없으면 온 세상의 공포를 다 머금은 눈빛으로 우는 아기의 젖내도 느껴져. 그래서인지 가끔 오백미리 우유의 입구를 아랫입술에 걸고 꼴깍꼴깍 마시면 눈가에 눈물이 맺힐 때가 있는 것 같아.



냉장고에서 떨어진 우유를 생각하다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는데, 난 정말 그런 것 같아. 그러니까 이제, 만일 나에게 딱 삼천 원이 남아 있다면 마지막으로 사 먹고 죽어버려야 할 음료는 우유일 거야.


한동안 문학적 글쓰기를 계속한다면, 계속 이 이야기를 쓰고 싶어. 어떤 이야기를 쓰더라도 결국 본질적으로는 우유와 사랑,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아. 남녀가 만나 설레하는 이야기이거나, 여행지에 관한 이야기이거나, 여름에 대한 이야기, 어떤 이야기더라도 내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도 될 거야.




​물론 나에게는 여러 관심사들이 있지. ​공간이나 시간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 특히 공간은 당장 공부하며(실용적으로든 학문적으로든) 쓰기 좋은, 무척 흥미로운 주제야. 그래서 우선 음, 비교적 쉽게 쓸 수 있는 글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시간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좀 공부가 필요할 것 같아서 당장은 손을 데지 못할 것 같아. 공간도 물론 그렇겠지만, 시간은 정말 심오하고 깊은 주제잖아(물리학과 신학, 철학에서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듯) 그리고 커피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으니까, 커피에 대해서도 곧 쓸 수 있겠지.




그런데 이것들은 우유와는 전혀 다른 내용들이지?

읽는 사람은 ‘전혀 다른 내용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실은 그런 이야기들도 나에게는,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파생되는 이야기인 거야. 그러니 이렇게 생각해도 좋을 거야. 이 사람이 줄기차게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데, 빙빙 돌려 말하고 있구나.




​문득 얼마 남지 않은 우유를 보며 위기감을 느끼다가, 이렇게 영혼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을 스포하고 말았어(오늘은 꼭 우유를 한가득 채워 놓아야지). ​괜찮아. 인생은 정말 짧아. 그러니까 스포란 없는 거야. 난 분명히 사놓은 책도, 소장용으로 구매한 영화도 다 볼 수 없을 거야. 그래도 살아볼게 한번.​ 우유, 마시면서.


​이렇게 볼품없는 글들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갑작스레 이렇게 짤막한 인사를 해. 나는 이런 관심을 갖고 있다고. 고맙다고.



안녕. 우유 많이 마시자.

살아있는 한 사랑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