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 같은 새벽 속에서
1. 아침
“뭉클한 가능성의 순간들이었다.”
나는 늘 두 개의 아침에 대해서 생각한다. 하나는 스페인의 아침이고 또 하나는 인도에서의 아침이다. 그 두 아침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내 영혼의 한 부분을 조각칼로 파내었다.
스페인의 도시 유스호스텔 지하에서 진한 커피와 빵으로 시작하던 설렘의 아침. 그리고 고요한 인도의 시골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시작하던 아침. 각각의 두 아침이 살아 있다는 감각에 대한 영영 지워지지 않을 한 감상을 자극하고 말았다.
스페인의 도시의 아침을 떠올리면 향기롭고 매력적인 냄새가 기억난다. 신기하게도 도시 전체가 그랬다. 대부분의 스페인 사람들이 향수를 쓰는 걸까, 그들의 몸에서 향기가 나는 걸까. 체취와 향수가 섞인 냄새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시에서 공무원들이 독특한 방향제 같은 것을 뿌리기라도 하는 걸까. 지하철역이나 어떤 건물, 또는 길거리를 거닐 때마저도 은은하게 특유의 도시 냄새가 났는데, 그날 아침 유스호스텔 지하에 있던 식당에서도 역시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그날 식당 분위기는 잠에서 막 깨어난 아침답게 가라앉아 조용했다. 깊숙이 차분하면서도 분주하고 활기 있었던 아침 분위기. 그런 공기 속에서 현지에서 일하고 공부하는 젊은 청년들과 함께 간단한 유스호스텔식 조식, 아마도 빵과 커피 정도를, 샤워를 하고 간편한 차림으로 바로 내려가서 혼자 앉아서 즐겼던 것 같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포르투갈인스러운 -오르한 파묵처럼(그는 터키인이지만)- 머리색과 수염을 가진 지적인 분위기의 한 남학생이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있었고, 저편에 있는 테이블에서는 피부가 하얀 남녀가 밝게 웃으며 담소를 나누며 마주 앉아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세상이 이렇게 넓고 많은 가능성이 있는 곳이구나, 난 온몸과 오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날들이었으니까 체감의 낙차와 놀람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인도에서는 까만 밤에 팀원들과 이층 건물 옥상 위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마음이 부서지도록 총총이 박힌 별을 보면서 두런두런 하루를 정리하는 이야기를 나눴다. 더운 낮에는 그토록 뜨거운 아스팔트 도로 위 시내를 헉헉거리며 누비면서 짜증이 섞인 독특한 설렘을 느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눈빛 -어려운 인도 현지 살이에 찌들어 메말라 있지만, 아릴 정도로 순수하기 그지없는 눈빛들- 을 보며 그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생기와 친절함, 희망, 무한한 신적인 사랑의 가능성을 떠올리며 나는 정말, 매 순간 설렜다. 뭉클한 가능성의 순간들이었다.
생각해 보니, 꼭 두 개의 아침만은 아니었는데. 예를 들면 베트남의 아침도 마음에 강하게 남아있다. 아침 7시면 벌써 작은 바이크들의 행렬(베트남 사람들은 정말 부지런했다)이 좁은 도로를 가득 메우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숨이 턱 막히는 생의 열망 같은 것이었다. 길거리 식당의 쌀국수와, 달콤 고소한 돼지갈비(‘껌승’이라고 불렸던)를 불에 굽는 향 같은 것도 떠오른다. 물론 기억에 남는 아침들은 그 외에도 더 있지만 인도와 스페인의 두 아침이 너무나도 완벽해서 다 가려져 버렸다.
2. 밤
이즈음 전례가 없던 어둠 속에 있다. 주일 밤늦게 돌아와서 오늘이 수요일 아침이니까, 꼬박 거의 이틀을 이 빨간 벽돌의 작은 빌라 안에 갇혀 있었다. 그저께 깊은 밤 한 차례 외출이 있었지만, 겨우 몇 백 미터 정도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가 길가의 가게에서 아사이 고추 한 바구니를 사왔을 뿐이다.
한 발짝도 내딛을 수 없는 마음의 상태. 그런 상태를 알고 있는 사람이 또 이 지구 어딘가에 있을까. 희망이 어딨을까, 어떻게 내디뎌야 할까, 그런 영혼으로 밤새, 그리고 한낮이 한순간처럼 지나도록, 시간도 모른 채 어둠 속을 더듬고 있었다.
어제저녁엔 문득 버지니아 울프 에센셜을 집어 들어 자기만의 방을 펼쳤지만 얼마 읽지 못하고 덮고, 마음을 끌고 눈길이 가는 영상들을 보다가 금세 노곤해져 다시 검푸른 우주의 미아처럼 깊이 잠들었다. 밥을 차려먹고 치우는 일은 여전히 익숙치 않아 무언가를 차려 먹고 치우는데 보통 몇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먹고 나면 다시 주체할 수 없이 졸음이 쏟아졌다. 그렇게 자다 깨어난 시간은 아침 아홉 시이기도 했고, 오후 세 시이기도 했고, 밤 열 시이기도 했다.
질릴 정도로 잠이 들지 못한 채 깨어 있었고, 또 질릴 정도로 잠에 빠져들었다. 오랫동안 자고 일어났다고 기운이 샘솟아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깨어도, 자도 비슷한 기운이었다.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신기하고 놀라울 정도로 무력했다. 도대체 내 인생에 이런 날들이 언제 있었던가 생각될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날들. 모든 순간이 버거웠다. 숨 막히는 커다란 풍선 속에 갇혀 어떻게 터트리고 나가야 할지 몰라 버둥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빌딩과 도로가 가득 찬 도시가 반투명 고무 밖으로 아득히 뭉그러져 보이지만 나는 나갈 수 없었다. 풍선이 그렇게까지 두꺼워서가 아니라, 이 얇은 투명막도 찢고 나갈 수 없을 만큼 내 속이 혹독한 겨울밤이었기 때문이다.
3. 새벽.
나는 지금 아득히 깊은 새벽녘에 있다. 몇 시간만 더 자고 일어나면 어쩌면, 다시 아침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깨어나지 않으면, 계속해서 잠이 들면… 이대로 더 깊은 밤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어갈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 것 같아 두렵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두려울 일도 없다. 이미 아득한 밤 속에 있는데, 더 깊은 밤이라야 봤자 얼마나 깊고 어두운 밤일까.
또렷한 희망, 아침, 새소리. 그것들을 다시 모든 감각으로 다시 느낄 수 있는 날을, 나는 고대하고 있지도 않다. 노란 유니폼을 입고 요구르트 병을 입에 물고 있던 유치원 때의 꽉 차게 밝은 마음이나, 스무 살의 벅차오르는 설렘의 심성 같은 것을 다시 되찾아오려는 의욕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나의 태도가 관조나 초월인가 하면, 그런 것만도 아니다. 다만 이제 더 이상 희망이 내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미디엄 템포의, 이토록 힘없고 독특하고, 표현되기 힘든 -너무나 모호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리듬으로 살아나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이런 나를 다 느끼면서, 이해하면서 잘 살아 나가고 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계몽이 필요한 상태로 본다. 나는 그런 생각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다. 나에게는 각성과 개선의 여지가 많이 있다. 잘하고 있다는 것도, 이런 태도가 최선이라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스스로나는 나를, ‘이해한다’고 말해야만 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우선 나는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고, 설령 달리 어떻게 할 수 있었다고 해도, 이렇게 알아가지 않으면 평생토록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을 것이란 걸 직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이제, 무엇이 필요한 걸까.
그럼에도 끊임없이 내가 마음 한켠에서 아침을 생각하고 있다는 건 어떤 복선일 것이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아침으로 향하고 있다는. 밤이었던 법은 없었다. 나의 그리움이. 젊은 날들의 데이트의 순간들과 설렘. 땀. 배가 아프도록 웃는 웃음. 공부, 계단형 강의실, 오렌지. 태양. 아이스 아메리카노. 사람들을 웃기는 일. 그 모든 순간들이 내게는 하나의, 커다란 아침이었다. 어떤 나라에서의 어떤 날들이든, 아침이었고 젊음이었다. 나의 희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