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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1st

습작

by jungsin


※ 이 글은 미완성 습작이에요. 연재 중 계속해서 수정과 삭제를 거듭할 수 있음을(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알려 드리며 사전에 양해를 구합니다.










1. 아침의 데드풀




​아침 7시. 데드풀 ost가 작은 가게 안을 쩌렁쩌렁 울린다.



이제 슬슬 여름을 향해 가기 시작한, 시원하기도 하고 약간 쌀쌀하기도 한 아침 공기. 또각또각또각. 앞머리에 분홍색 플라스틱 헤어롤을 말아 고정시켜 놓은 여자가 바삐 걸어간다.




​저기 어디선가 자꾸만 심장을 건드리는 비트 소리가 들린다. 뛰듯이 성큼성큼 걸어가는 젊은 여자도 드디어 거의 음악 소리에 가까워 온다. What you do, When you do. 둔둔 두 둔둔. 빠밥. 빠라 밥밥. 요란한 비트에 화가 난 듯 소리치는 랩. 여자의 심장이 뛴다. 아침부터 누가 이렇게 힙한 음악을 크게 듣지.




여자의 출근 시간은 지금 빠듯하다. 하지만 그녀는 이 끌림을 포기하지 못해 부러 걸음을 늦추어 걷고 만다. 음악에서 느껴지는 활기와 신선한 에너지의 정체가 궁금해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음악의 진원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기 오른쪽에 보이는 통유리창의 가게에서 나오는 음악일 것이었다. 저곳은 얼마 전부터 지나가며 눈여겨보던 공실 가게 공간이었다. 여자는 이제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하루종일 굶었다가 게걸스럽게 먹는 저녁과 같은 마음으로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으로 다가간다.




2. 여자에 대해




여자는 평소에 쇼팽과 슈베르트를 즐겨 듣는다. 플레이 리스트가 클래식의 범위를 벗어나는 적이 거의 없지만 가끔 류이치 사카모토 정도는 듣는다. 난해한 프랑스 영화를 좋아하고, 자기 전에는 이병률과 같은 감성적인 시 한두 편과 함께 영미권이나 유럽 작가들의 소설을 읽다가 잠들곤 한다.



그녀는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사실은 다섯 시 반에 일어나야 하지만) 삼십 분 동안 빠듯한 준비를 하고 한 시간 반이 걸리는 판교까지 허겁지겁 출근을 한다. 이런 루틴은 여자에게 이제 눈을 감고도 반복할 수 있을 만큼 몸에 익은 일상이 되었다. 폭 칠팔 미터 정도 되는, 이 좁은 골목은 바삐 집을 뛰쳐나와 칠 분쯤 지났을 때 지나치게 되는 곳이었다.






​3. 남자에 대해




얼마 전부터 퇴근길에 이 골목을 지날 때면, ​삼십 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작은 가게 안에서 혼자 무언가를 하는 듯 보였다. 그곳은 이전에는 부동산 집이었다. 왠지 피해 가고 싶은 오지랖 넓은 아주머니가 하는 부동산 가게였는데, 부동산이 없어지고 공실이 된 지 꽤 오래 지나자(한 석 달쯤 지났을 때였을까) 머리가 짧고 테스토스테론이 많아 보이는 어떤 젊은 남자가 가게 안에서 혼자 열심히 사포질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이 여자의 눈에는 마치 도예학과 대학원생이 물레를 차는 태처럼 보였다. 별것 아닌 작은 일을 그처럼 진지하게 몰두해서 하는 모습이 하도 인상 깊어 여자는 몇 번 훔쳐보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렇게 저녁마다 붉은빛의 스탠드를 켜놓고 한동안 매일같이 벽에 사포질만 하더니, 어느 날은 페인트칠을 하고, 어느 날은 혼자 큰 원목을 가져와서 목공 작업까지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일꾼일까, 주인일까. 항상 그의 손에 조금 값이 나가 보이는 음료(과일 주스나 괜찮아 보이는 커피류였다)가 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왠지 고용된 일꾼이 아닐 것 같다는 정도의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은 피곤했는지 돗자리를 깔고 바닥에 누워 자고 있는 모습이었다. 허름하게 다 찢어진 옷을 입고 그렇게 누워있을 때는 그냥 막 굴러다니는 일꾼 같아 보였다. 그리고 한동안, 또 가게는 아무도 없이 비워져 있었다.






​4. 이질감을 일으키는 풍경들




​그렇게 두세 주 정도가 지났다. 그러다 며칠 전부터 그 일꾼, 아니 일꾼과 사장 사이 어딘가에 있는 그 남자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 휴가라도 다녀왔나. 다시 돌아온 이후 남자는 조금 더 세밀한 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녁마다 피아노 곡을 틀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 모습이 이전보다 조금은 더 가벼워 보였다.






여자가 그 골목을 지나가는 시간대는 늘 그때였다. 7시에서 7시 반 사이. 해가 저무는 매직 아워. 그 시간대의 가게 주변의 정경, 가게 안으로 노을빛이 붉게 드리우는 모습, 그리고 가게 안에서 흘러나오는 조용한 피아노 곡, 그것은 일종의 삼합이었다. 그 삼합이 슬플 정도로 잘 어울린다고 느끼곤 했다.




​하지만 이 동네와는 너무 안 어울리는 분위기들이라고 생각했다. 이 동네에는 오랫동안 살아온 터줏대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았다. 안타깝게도 어르신들 중 많은 분들은 이제 혼자가 되었다. 혼자 사시는 분들의 절대다수가 할머니들이었다. 할머니들은 이제 유모차를 밀며 걸어 다니거나 용돈 삼아 폐지를 줍곤 했다.




​하긴. 이 동네에 안 어울리기는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이른 아침마다 고요한 정적을 깨고, 거친 콘크리트 길에 구둣발 소리를 내며 바삐 나가는 이제 막 서른 정도가 된 젊은 여자. 그런 풍경은 이 동네와 묘한 이질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작은 가게까지, 이질감을 일으키는 동네 풍경 하나가 더 생긴 것이었다.




​공간 안을 채우는 감미로운 음악과 너무나 명확히 대비가 되어 보일 정도로 남자는 늘 외로워 보였다. 늘 무언가를 하고 있었지만, 언듯 보기에도 어딘지 짠해 보이는 옆모습과, 뒷모습. 모성애를 불러일으키는 스타일이구나. 여자는 혼자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멈춰 서서 관찰하지는 않았다. 얼른 집에 들어가서 불편한 구두를 훌훌 벗어던지고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뿐, 계절이 바뀌면서 새로 생기고 또 몇 면의 계절이 지나 금세 사라지는, 작은 가게들의 사연 따위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5. 가게



​어쨌든 그렇게 한 번씩 지나가며 무심한 듯 시선을 줄 뿐이었다. 그런데 무슨 가게지. 무슨 가게를 여느라 저 아저씨는 저렇게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거지. 벌써 몇 주 째야. 가게 오픈할 사람이 무슨 준비를 저렇게 오래 해. 사람들한테 좀 도와달라고 하지. 그는 온 존재로 은근한 궁금함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던 차에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종전의 고독한 그의 모습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비트가 강한 음악이 흘러나오니, 가게에 대한 궁금함이 조금 더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통창 안을 새초롬하게 들여다보며 걸음을 늦추어 걸었다.




​​리듬을 타는 듯 음악에 심취한 몸짓과 표정을 하고 있는 남자가 혼자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는 바 안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아.. 카페였구나, 남자가 준비하고 있던 게. 여자의 걸음이 더욱더 느려진다.




​남자는 한 손으로 얼음이 튀어나가지 않게 유리컵의 입구 주변을 막고 차디찬 얼음을 컵에 붓고 있다. 이어 900ml의 긴 종이 우유팩을 집어 들고 얼음 위에 졸졸졸 붓더니, 다시 에스프레소 머신 앞으로 바싹 다가가 방금 추출된 진한 에스프레소를 가져와서 우유 위에 다 털어 넣는다. 그대로 입으로 가져간다.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고 있다. 아직 새벽의 찬 공기도 다 가시지 않은 아침, 아이스 라테의 고소함을 음악과 함께 온몸으로 느끼는 남자.​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여름저녁 (해질녘의 밀밭) (1888)



남자는 창밖의 시선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무언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카페를 한다기보다, 아이스 라테를 만드는 모습이 차라리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카페의 밝은 회색 벽에는 몇 점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하나같이 붓터치가 역동적인 그림들이었다. 고흐의 ‘아를의 여름저녁’이란 그림이 그랬고, 모네의 ‘바다 위의 그림자, 푸르빌의 절벽에서’나 호아킨 소로야의 그림들도.




클라우드 모네, 바다위의 그림자, 푸르빌의 절벽에서. (1882)





​아저씨가 오늘은 드디어 오픈하는구나.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고요한 이 동네의 아침 공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무언가를 하는 그의 모습이 표현할 수 없이 몽환적이었다. 그렇게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또각, 또각, 또각.


그렇게 속으로 다섯만 세고 다시 걸음을 옮겨 여자는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이제 목요일이었다. 이틀만 더. 그러니까 열여섯 시간이다. 아무 생명력도 없는 판교의 빌딩숲 속으로 오늘도 다시 빨려 들어가야만 한다는 생각에 여자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6. 파문들




​그렇게 또다시 며칠이 또 지났다. 그날 아침도 여자는 빠듯하게 집을 나왔다. 남자는 그날 아침도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 서서, 데드풀의 음악과 진한 아이스 라테와 함께 자신만의 아침을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아침의 풍경은 조금 달랐다. 여자의 뛰는 속도와 방향이 그랬다. 달리는 속도가 평소와 비교해 너무 빨랐고 방향은 퇴근길 방향이었다.




​따각 따각 따각 따각. 다급하게 뛰어서 지나가는 여자의 모습을 보면서, 남자는 직감적으로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얼른 가게 문을 열고 뛰어나와 보았다.



​‘​저기요! 혹시 무슨 일 있나요? 제가 도와드려야 되나요?’

​여자가 멈춰서 돌아섰다. 아, 카페 아저씨. ​

‘아, 아니요. 아저씨, 확성기 소리 못 들었어요?’


‘네?’

​‘지금 빨리 대피하라고… 확인 안 된 미사일 같은 게 하늘에… 시에서 재난 문자 왔던데..’


​사이렌 소리 때문에 남자는 여자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크게 틀어 놓았던 음악 때문에 남자는 카페 밖에서 확성기 방송이 나오고 있는 줄도 몰랐었다.) 남자는 여자가 다급하게 말하는 입모양만 보고 짐작해 대답했다.


​‘네? 죄송한데 무슨 문자요?’


철제문이 활짝 열려있는 카페 안에서는 데드풀 음악이 계속 흘러나왔다. 데드풀과 여자의 말소리와 사이렌 소리. 그것들은 또 하나의 삼합이었다. 남자는 이 상황이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 자기도 모르게 속에서 웃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눌러 삼켜야 했다. 여자가 아무리 목청을 높여 사이렌 소리를 뚫고 엄중한 소식을 전하려고 하고 있을지라도, 남자에게는 그냥 무척 흥미로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아저씨. 저도 빨리 집에 들어가 봐야 해서.. 얼른 재난 문자 좀 확인해 보세요!’


‘아 저.. 지금 휴대폰 정지 중이어서.. 문자 수신이 안 되거든요…’

​‘네? 휴대폰이.. 왜요? 아무튼 제가 엄마한테 빨리 가봐야 해서… 아저씨도 얼른 가게문부터 닫으시고, 뉴스 보시면서 대피 준비..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이어서 계속.









* 남자가 아침 6시 반에 가게를 오픈하면서 듣던 음악











※ 작가의 말: 때때로 무언가 삶이 막혀 있을 때 그러곤 하는 제 글쓰기 버릇이기도 한데, 우선 다다다 쓰고 바로 올렸습니다. 이렇게 가볍게 써야 저는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너른 이해 부탁드립니다. 저장하면 퇴로를 열어두는 거니까. 발행을 해버려서 퇴로를 막는 거죠. 그러니까 어디선가 보았던 한 작가님의 말처럼 “결코 완료는 아니고, 완성은 더욱더 아니며, 일단 종료”한 글입니다. 초고(초초초초초고)라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거나 크게 변형할 수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 당황해하시거나 황당해하시지만 않으신다면 저의 설익은 글쯤 마음껏 읽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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