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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의 스타벅스에서

녹색 생각

by jungsin





1. 스타벅스


나는 녹색의 스타벅스에서 녹색의 생각들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는 식물처럼 정말 가만히 엎드려 통창을 관통해 들어오는 햇볕을 받고 있을 뿐이었다. 스타벅스. 초록연두의 나뭇잎들이 2층에 있는 통유리창 바깥으로 보였다. 창 위로는 아이보리색 블라인드가 길게 늘어트러져 있었고, 바로 그 아래 틈으로 엷게 햇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중증 장애를 가진 그는 바로 그 창가 아래 있었다. 엎드려 있는 몸이 등 뒤로 베베 꼬인 듯한 몸 매무새. 한 번씩 요가를 하듯 거꾸로 발을 들어 올리는 그의 모습이 흡사 꽃 몽우리가 기지개를 켜며 피어오르는 모습 같기도 했다. 아무래도 문제가 많은 표현이지만, 식물인간이라는 문자 그대로의 정의가 너무나 어울린다고, 나는 생각하고 말았다.





간이침대 같은 이동식 철제 장치 위에 엎드려 있는 그의 옆에는 건장한 남자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그를 돌보며 신경만 그에게 가볍게 두는 한편,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장면을 틈틈이, 그리고 무심히 바라보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동물과 식물의 차이는 무엇일까. 동물인 나는, 철제 간이침대 위에 엎드려 있는 저 남자에 비해서도 훨씬 더 동물인 나는, 왜 이토록 진하게 동물이어야만 했을까. 나는 남아있는 날들 동안 초여름 같은 일들을 할 수 있을까. 허벅지도, 머리도, 감정도, 이토록 너무나 살아있는 나에게 주어진 일은 무엇일까. 그래서 도대체 나는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2. 이마트


이런 장면이 아니었어도, 마침 스타벅스와 연결된 이마트 2층의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안 그 짧은 순간에도 몇 번씩 떠오르는 상념에 가만히 머물러 있곤 했다.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일까.



돈과 사람, 성취와 직업까지. 이대로 지금 모든 것이 나에게서 다 날아가 버렸다면, 그런 것이라면. 지금 나는 그런 나라면, 그리고 그래도 내가 무언가를 갖고 있는 것이라면. 나는 무엇을 갖고 있는 것일까. 노인의 피부에서 수분이 사라지는 것처럼, 정말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수증기처럼 사라진다면 그때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염전에서 얻는 염분의 결정처럼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 될까. 내 영혼의 한 방울은. 그러니까, 그것은 정말 무엇일까.


그것만이 내가 정말 갖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깊은 밤 영혼의 강도가 찾아와 내 모든 기억과, 꿈과, 희망을 다 강탈해 가 찢어진 옷과 헝클어진 머리로 주저앉아 있을 때에라도, 그때에라도, 나에게 남아있을 것. 무엇에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것.


가방 안에는 책들의 그림자, 그리움의 정원에서, 이력서들. 세 권의 책이 있었다. 본체의 열기에 군데군데 탄 흔적이 있는 로즈골드색 노트북. 그러고도 물건들은 아직 한참 더 남아 있었다. 어설프게 만들어 온 아이스 라테가 들어있는 금속 텀블러. 스터디 모임에서 싸 온 팥빵. 소니 블루투스 헤드폰과 이어폰. 그리고 빨간색 파우치 안의 소품들. 충전기와 작은 아이소이 올인원 세럼과 볼펜, 칫솔, 가벼운 금속 바디의 아이패드 거치대까지.



그 외에도 나는 훨씬 더 많은 물질들을 갖고 있고, 또 곧 더 갖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정말 내 것일까. 정말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마트 2층에서 노트북과 예쁜 화이트 컬러 인덕션과 에스프레소 머신이나 핸드드립 도구들을 남의 연인 바라보듯 무심히 바라보며, 예쁜 스테인리스 머그컵을 매만지작거리며, 꼭 그것을, 말로 표현해보고 싶은 열망이 샘솟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이 물건이나 돈이라면 아직 나는 정말 너무 많은 것들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처럼 허기져 있는 이유는 뭘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오후에 허겁지겁 해먹고 나온 토마토 스파게티도 금세 까맣게 잊고 계속 배고파했다.




3. 고려인


그리고 나에게는 상념들이 있다. 저녁에는 무엇을 먹어야 할까. 나는 여름일까. 아까 중증 장애를 가진 분이 나간 자리에 앉은, 진한 녹색에 어깨와 팔, 옆 라인에 단색 화이트 스트라이프가 굵게 그려진, 이국적이고 활기 있는 한 벌 짜리 트레이닝복을 입은 저 고려인 여자 청년의 맹랑한 눈빛처럼, 나는 여름일까.


왼쪽 대각선에는 날렵한 몸 맵씨에 짧은 머리를 넘겨 고정시킨 서른 전후의 남자와 녹색 트레이닝 복을 입은 스물 전후의 고려인 여자가 마주 앉아있었다. 두 사람은 큰 크기의 교재를(한국어 어학 책일까)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러시아어로 무언가를 여름처럼 뜨겁게 말하고 있었다. 남자가 무언가를 과외해 주고 있는 듯 보였다. 저렇게 생에 대한 열망은 여름처럼 뜨겁고 아름다운 것이구나. 나는 생각했다.


나는 여름일까.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나는 그것을 아직 뜨거움이라고만 불러 놓고 우선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 진득하게 생각하다 또 멍청하게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아서가 아니라, 천정에서 내려오는 에어컨 바람이 너무 서늘해서, 배가 고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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