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쉬게 하는 고동색 나무들에 관해서
1
왜인지 나는 자꾸 나무에 대해서 생각해봐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이나 풀이 아니라, 나무 말이다. 이즈음 나무가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데, 몇 번이고 그것을 언어로 풀어서 말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고는 했더랬다.
하지만 생각하기를 끝도 없이 미루고 있었다. 나무에 대해서 생각하자, 생각하자 하고 미뤄둔 생각은 얹힌듯 마음 한 구석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또 이렇게 결국, 트림처럼 떠밀리듯 쓰기 시작하게 되었다. 생각이 전혀 익지도, 발효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카페에 앉아, 어느 정도는 우연한 시작으로써.
2
가장 최근의 나무는 동네를 지나칠 때면 볼 수 있는, 한 작은 가게의 앞 벽면 나무다. 하지만 그 나무는 말 그대로 벽면이다. 심긴 나무가 아닌 것이다. 그곳은 독특하게도 창을 제외한 거의 모든 벽면과 출입문 전체를 진한 *고동색 나무로 짜놓은 가게였다.
심긴 나무가 아니니까 살아있는 나무라고 하면 안 될 것만 같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 가게를 지나칠 때면, 그 가게의 벽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이 살아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느꼈다.
뽑히고 잘렸다고 꼭 죽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무란 그런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 스치듯이 작은 가게의 나무 벽면을 바라볼 때나, 집에서 사용하는 큰 나무 그릇이 내뿜는 나무 냄새를 맡을 때면, 분명히 그것들은 살아있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나는 살아있어. 나는 똑같이 살아있어.
잘라도,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원목 나무는 그것에 가까이 코를 대면 여전히 그 나무만의 독특한 공기와 냄새를 내뿜고 있다.
건강하고 좋은 나무는 다 그랬다. 그것을 뽑고, 자르고 다듬은 뒤에도 그들은 여실히 자신을(가지고 있던 자신 그대로를)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다. 여전히 자신으로서 살아, 마치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았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있는 큰 원목 책상의 나무가 그랬고, 최근에 샀던 아카시아 나무 그릇이 그랬고, 자취방에 큰 맘먹고 새로 들여놓은 책상이 그랬다(그 책상은 윤기가 나게 칠까지 되어 있는데도, 진한 고동색에서 은은한 나무 향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렇게 고품질의 나무 제품들은 하나같이 가까이 다가가 킁킁 냄새를 맡아보면 원래 자신의 생명이 가지고 있는 좋은 공기(분석하자면 음이온이라고 해야 할까.)가 느껴진다.
3
집에서 한 오십 미터만 걸어가면 한 그루의 고목이 있다. 그 나무는 마치 동네의 정령처럼 장쾌하고 높게 우뚝 서 있는데, 이런 표현이 적절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정말 잘 생기고 건강해 보인다. 늘 빠르게 바삐 걸어서 지나치곤 했지만, 아무도 나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을 야심한 밤에 나무 앞에 멈춰 서서 가만히 올려다 바라보면, 나는 이상하고 신비로운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크고 늘씬하게 뻗어 두터운 진녹색 이파리들이 무성하고 매달려 있는 모습이 사람의 마음을 경건하게 만들었다
평생토록 그와 비슷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은 단 몇 번이 더 있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아주 중요하고 결정적인 기분들이었다.
그것들 중 하나인 예배당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예배당에서 진고동색의 큰 나무와 같은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는 약간의 추가적인 조건이 더 필요한데, 가능하다면 예배당의 천장이 좀 높아야 하고, 또 예배당 안을 이루는 가구 소품(성물이라고 해야 할까)들이 좋은 나무로 되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사람이 최대한 없을 때(혼자라면 가장 좋다) 들어가서, 공간을 느끼면 나는 여지없이 뭉클하고 장엄한 기분에 빠져들고 말았다.
하지만 천장과 나무 성물이 꼭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다. 또한 내가 뭉클함을 느끼는 공간이 꼭 대예배당(보통 천 명 이상 정도 규모의 교회 안에는 몇 개의 예배당이 있는데, 그중에 주 예배를 드리는 곳을 대 예배당이라고 부르곤 한다)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가령 내가 어렸을 때 처음 다녔던 교회의 지하 예배당이 그랬다. 그곳은 평일 밤 기도회나 아이들의 예배 공간으로 쓰이던 곳이었는데, 나에게는 그곳이 너무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어서 그 장소에 가면 가우디가 지은(짓고 있는) 스페인의 성당에 가더라도 느낄 수 없는 아릿함을 느낀다.
그 교회는 아마 70년대나 80년대 즈음 지어졌을 것이다. 옛날 한국의 건축 방식이었는지 그 교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지하 세계나 유태인들의 카타쿰(제국의 핍박을 피하기 위해 있었던 과거 이스라엘의 비밀스러운 예배당)처럼 정말 비밀스러운 공간을 갖고 있었다.
나선형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지하 깊숙한 곳에 비밀 공동체의 어떤 결사적인 공간과도 같은 어둡고 습한 예배당이 나왔다. 그곳은 천장도 낮았고, 나무 가구들도 별로 없었다. 설교단과 설교단 뒤의 큰 의자 두어 개, 그리고 왼쪽 앞자리에 있던 풍금 정도가 그 공간에 있는 나무 가구의 전부였다. 하지만 난 그곳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쿰쿰한 미생물의 감각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고동색 나무의 숨결과 같은 것을.
(초고, 수정을 거듭할 예정.)
* 위의 고동색이란 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