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없다는 것.
인생이 아무렇게나 되어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으로 힘없이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것.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다는 것.
그 무력함을 부둥켜안아줄 이 한 명 없다는 것.
신은 아등바등 당신의 책을 펼치고, 어려운 원서들을 부들부들 잡아들고 고심해야만 어스름한 여름 저녁 창문 바깥에서 설렁설렁 들어와 커튼을 밀며 살랑이는 바람처럼, 퀴즈를 남기고 달아나곤, 또 말고. 그런 식으로 야속하게 잠깐 비치고, 위엄 있게 보이고는 또 말고.
날 얼싸안고 부둥켜 안아 볼을 부비며 등을 문질러 줄 이 한 사람이 없다면,
그런 생에 무엇이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기특하다.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숨처럼 적막함을 마시고 텅 빔을 친구 삼아, 모든 것을 삼키며 밥을 퍼먹는 것만으로도. 기특하다.
삶인지 죽음인지 모를
그런 적요함 속에서 비릿하게 찾아오는 밥 짓는 냄새.
또는 넘치게 담긴 떡볶이.
식당 안에서 테이블에 앉아 달그락거리는 한 가족의 그릇 소리.
밖에서 풀이나 나무를 태우는 냄새.
그러니까 바로 아픈 당신의 인기척.
그 희미한 단서가 유일한 희망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