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으로 채울 수 없는 배고픔
알고리즘의 시대에 대해 무언가를 좀 써보고 싶었다. 언젠가 써야지. 늘 머금기만 한 채 적체되어 있는 생각들이 많았는데. 이것도 창고에 묵혀있던 글 뭉치들 중 하나인 셈이다.
짧지 않은 길. 늦장맛비를 뚫고 일부러 찾아온 카페. 나는 우선 한 보따리의 짐을 옆에 있는 빈자리에 풀어놓았다. 그렇게 한동안 숨을 돌리면서 쉬다, 문서 프로그램을 열고 쓰고 싶었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 오른쪽 대각선 앞에 고 1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이 앉는 것이 보였다. 좀 더 써 내려가다가 한 번 힐끗 보니, 그 여자애는 나처럼 음료도 안 시키고 스마트폰과 하얀 종이만 올려져 있는 깨끗한 테이블 위에서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어느 케이팝 남자 아이돌의 영상이다. 영상을 보다 멈춰놓고 무언가를 열심히 적다가 또 싱긋 웃으며 영상을 보다가. 그런 패턴과 표정의 반복이었다.
A5 정도 크기의 용지를 반으로 접은 작은 종이 쪼가리에, 볼펜으로 무언가를 꾹꾹 눌러쓰며 연신 엷게 웃고 있는 여자 아이. 자꾸만 얼굴 가득 퍼지는 풋풋한 미소. 아마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이는 아이돌이 부른 노래의 노랫말인가 보다.
한창 그럴 만한 나이다. 사랑이 전부일 때다(*‘사랑이 전부라고 여겼었죠’). 자연스럽고 예쁘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 나도 당시의 최신가요(90’)를 좋아했다. 고등학생이니까. 세상은 뜨거웠고 뭐든지 새것이 좋았으니까.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어서 좋아하는 가수의 영상을 볼 수 있는 순간이 지금보다 훨씬 드물었다. 좋아하는 가수들의 영상을 볼 수 있는 주요 채널은 단연 텔레비전이었다. 이따금 TV로 ‘가요톱텐’과 같은 가요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무대를, 나는 눈빛을 반짝이며 보았다.
그 외에 대중 가수의 영상을 접할 수 있는 수단은 이따금 보게 되는 케이블 채널(볼 수 있는 뮤직 채널이 많지는 않았고, MTV 외에 한 두 개 정도가 더 있었나)이 전부였다. 그나마 카페나 유흥가에 있는 칵테일 소주방, 콜라텍 같은 곳에 가야 프로젝터로 비춰 주는 큰 화면을 통해 힐끗힐끗 볼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날들은 풍요로웠다.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잘 모르겠다.
그날들의 내가 그랬는지,
90년대의 대중음악계가 그랬는지.
친구들도 많고, 나를 좋아하고 칭송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였는지.
그 모든 이유였는지.
특별히 기억에 나는 순간은, 즐길 것이 거의 없었던 고등학교 생활 속에서 짧은 시간에 펼쳐 보던 테이프 속지였다. 어느 날인가는 나를 따라다니던 여학생이 편지와 함께 공일오비 테이프를 선물해 주었었다(나는 정말 매몰차고 줄기차게 싫다는데도). 나는 그리 썩 달갑지는 않은 마음으로 야간자율학습이 막 시작되기 전, 뒤에서 3분의 1 정도 줄에 있던 내 자리에 앉아 편지는 대충 옆으로 던져 놓고, 오리온 밀크캐러멜을 뜯듯이 앨범 테이프를 뜯어서 펼쳐 보았다. 갓 새로 나온, 공일오비 5집이었다. 어떻게 또 알고, 내가 공일오비 좋아하는지.
그리고 책상 위에 엎드려서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고 워크맨으로 듣던, 새 테이프의 갓 나온 음악들의 향연. 내가 알고 있는 공일오비와는 달리 첫곡이 너무 시끄러워서 당황했지만(바보들의 세상-정석원 작사 작곡), 곧이어 내가 좋아하는 공일오비 스타일에 더 발전된 형태의 음악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너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그녀의 딸은 세 살이에요, 시간, 단발머리, 슬픈 인연. 아득히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음악들을 엎드려서 들으며 달콤함에 빠져들다, 한 번씩 고개를 들고 테이프의 속지를 펼쳐 가사를 유심히 읽어보던 순간들이었다.
영화, 영상, 음악, 모든 것을 추천받느라
꼴깍꼴깍.
내 영혼은 빈곤하기만 하고.
십 대의 여학생이 청순하고 순수한 상상을 하며 좋아하는 남자 아이돌 그룹의 영상을 보며 가사를 적는 모습은 영락없이 나의 청춘의 한 조각이었다. 요즘 아이들 참 할 일도 없다는 듯 경멸의 시선을 건네면서, 예술성도 없는 뻔한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그 오빠들도 A.I. 절대자에게 추천받은 아이돌 그룹이냐고 타박할 필요가 조금도 없었다.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이제 마흔도 훌쩍 넘은 나는 아직까지도 어떤 문화의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90년대 2000년대와 비교해, 나의 문화적 풍요로움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명백히 퇴화되었다.
그 주요한 원인으로 나는 인공지능을 꼽는다. 이즈음의 나에게는 콘텐츠 추천 기능이 피부에 가장 와닿는 인공지능 기술인 것 같다. 밥 먹으며 무엇을 볼까. 앱을 엶과 동시에 귀신처럼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들을 맨 위에 배치하고 유혹의 손길을 내미는 너튜브와 땡플릭스.
이미 수많은 추천 콘텐츠들에 기력을 빼앗겨 버린 나는, 새로운 콘텐츠를 찾아 나서거나 무엇을 볼지 생각할 힘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 여지없이 나는 참지 못하고, 또 상위에 배치된 영상들을 누르고 만다.
물론 이따금 영양가 있는 콘텐츠를 만날 때도 있다. 하지만 문제의 초점은 선택한 콘텐츠의 질이 아니라 독특성의 괴멸이다. 멸종되어 가는 내 안의 독특성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면서도, 마약에 빠진 사람처럼 추천 콘텐츠에 홀린다. 그리고 또 그것들을 성냥개비처럼 긁어서 후 불어버린다. 그런 순간들의 반복이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인생이 된다고 생각하면 그것보다 끔찍한 디스토피아는 없을 것이다.
철학자 한병철이 <정보사회>에서 말하듯, 이 시대의 시간의 현재성은 ‘매끄러움’을 강조한다. 아이폰의 매끄러움처럼, 모든 것들은 매끄럽게, 매끄럽게 지나간다. 주인님이 좋아하시는 콘텐츠를 제가 준비해 놨어요. 매끄럽게 추천받고 매끄럽게 섭취한다. 그리고 시간의 아름다움마저 매끄럽게, 그것의 깊이를 잃어간다.
90년대는 개성이 넘치는 사회였다. 경제도 풍요롭고, 사람들의 내면도 풍요롭고, 대중음악 마저 풍요로웠다. 그 시절에는, 기술은 지금보다 빈곤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만큼 예측 불가능한 다양한 문화의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고, 그런 순간들이 얼마큼 소중한 것들인지도 쾌청하게 느껴졌다.
시대는 이제 더 이상 그때와 같이 아날로그 르네상스 시대가 아니고, 나의 내면도 그때처럼 풍요롭지 않다. 나는 늘 비슷한 패턴의 콘텐츠를 소비하고 몇 개의 sns를 반복하며, 똑같은 사람들을 반복해서 만난다. 열일곱의 나보다도 더 개성도 풋풋함도 없이 사라져 가고 있는 나의 떨림들. 알고리즘이 가스 라이팅을 하고 있다고, 삶을 갉아먹고 있다고 느껴진다. 지겨워 죽을 것만 같다. 그야말로, 풍요 속의 빈곤이다.
가끔은 웃음이 나요
지나간 날의 가슴 졸였던 순간들이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스무 되던 해
그땐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 ‘그녀의 딸은 세 살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