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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로 알 수 있는 것들

by jungsin





나는 사람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듣는다. 목소리 안에는 인격이 녹아있다. 인격적인 독특함은, 유전적 목소리에 더해 그가 입술 끝으로 발성하는 목소리에 미묘하게 녹아들어, 마침내 엷게 드러나고 만다. 그것은 그가 읽은 책과 그가 한 경험, 그리고 그가 받은 사랑이다.


인격으로써의 목소리는 원래 목소리에 일종의 코팅을 입혀 미세한 진동과 함께 지글지글 드러난다. 삼겹살 굽는 소리나 부침개 부치는 소리처럼 말이다.




그는 늘 무언가를 숨기려고 한다.



물론 표정에도 그것은 스며들어 있다. 하지만 목소리는 표정이 드러내지 않는 것을 드러낸다. 적어도 무언가 드러내는 일에 있어, 목소리는 고유한 자기 역할이 있다. 나는 그래서 누군가와 대화하며 집중이 필요할 때나 어떤 진실을 자세히 알기 원할 때, 때론 본능적으로 목소리를 더 집중해서 듣게 되곤 한다.


당황했을 때나, 슬퍼할 때, 화가 났지만 참고 있을 때. 그가 초자아로 꼭 짓누르고 있는 원초아의 깊은 감정이 안정적인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을 일으킨다. 그 진파는 어떤 진실을 숨기고 있다. 나아가 그것은 그와 그의 삶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는 늘 무언가를 숨기려고 한다. 그는 보여주고 싶은 자신과 꿈꾸는 자신이 정말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꾸 무언가를 뒷춤으로 감추려 하고, 그렇게 감춰지고 있다고 믿는 현실 속의 자신과 이상적인 자신 사이의 기압 차가 바람과 습기 같은 것을 만들어 낸다. 바로 그 깊은 협곡에서 부는 계곡풍이, 있는 그대로의 그를 드러낸다.



물론 목소리가 나오는 울대를 찍어 누르거나, 반대로 많이 열거나, 목소리를 낮게 깔거나, 반대로 얇게 올려서 내거나, 목소리에 공기를 너무 많이 섞거나, 반대로 공기가 너무 없어 인격의 모습이 왜곡되기도 한다. 그렇게 과장하고 포장하여 숨기는 데 성공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당연히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가 숨기고자 하는 것들이 목소리로는 잘 숨겨지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당연히 훨씬 더 많다. 숨기려 할수록 더 드러난다. 인격이나 인격의 진실은.


목소리의 어떤 떨림을 통해 더 적나라하게, 더 고스란히, 정작 나타나게 되어 있다. 인격의 얼굴은. 목소리는 결국 숨김없이 인격을 노래하게 된다. 목소리는 인격의 벌거숭이다. 인격의 돌사진 같은 것이다. 목소리는. 벌거숭이인 채 찰칵 찍히고 마는.



값비싼 교육을 받은 성악가나 유명 기획사에서 트레이닝을 받은 가수들의 목소리를, 내가 외면하게 되곤 하는 이유는 이런 관점 때문이다. 기교도 있고 돌고래처럼 고음도 너무 높이 올라가서 일단 한번 귀를 기울여 보게 되는데, 그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면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면 더는, 단 한 소절에도 내 인생을 기울이고 싶지 않아진다.



목소리는 하나의 이야기다. 어떤 언어로 말해도 목소리에는 그의 이야기가 음악처럼 묻어있다. 따라서 나는 우선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바하나 쇼팽을 듣듯이 그의 목소리를, 음악으로써 듣는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의 결을 따라가 본다. 그의 직업적인 결과물, 그러니까 만일 그가 예술가라면, 예술 작품도 중요하지만 그의 목소리와, 그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어떤 책을 보는지, 어떤 결의 삶을 지향하는지. 그가 하는 말들을 가만히 주의를 기울여 들어보면 그를 둘러싼 오라aura가 상쾌한 여름 아침의 습기처럼 어느덧 나에게도 감겨온다. 그러면 그의 작품과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까지 상상하며 느낄 수 있다. 목소리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그 자체로.



https://www.youtube.com/watch?v=kXluQMi_xq4&t=109s

필자가 좋아하는.. 음성에 볼륨감이 있는 이청아 배우의 목소리. 콤플렉스였던 낮고 두터운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목소리를 얇고 높게 내려고 노력하던 시절이, 그녀에게도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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