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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sin Aug 31. 2023

내 속으로

사랑이 없을 때 2





아이들이 너무 밝았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너무. 너무, 즐겁고 생기 있었다. 가볍고 생생했다.


‘맞아. 그랬지. 원래 삶은 그랬지. 그런 것이었지. 아무리 두려운 일이 있어도, 초조하고 걱정되고 불안해도, 저런 기분이 삶의 기본 층위에 있었어야지, 그랬어야 했지.’


나는 그런 생의 느낌으로부터는 아득히 멀어져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는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인 줄만 알았던, 펄떡거리는 생의 감각. 그토록 안온하고도 발랄한 내면의 상태로부터 나는 너무 멀리, 멀리 떨어져 나와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 아이들을 보니까 너무 알겠다. 삶의 감각에도 탄력이 있다면 나는 할머니의 팔뚝 살처럼 축 늘어진 생의 감각을 가지고 하루하루 무뎌진 채 버텨 나가고 있었다.


깊이 나를 바라볼 필요를 느낀다. 가만히 나를 응시해 보는 것이 좋겠다. 무엇을 잘하기 위해, 성취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강한 힘으로 정지 위해서. 앞으로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뒤로 돌아가 (정확한 나의 생의 감각으로) 수렴되어 가기 위해서. 시간 속으로  깊숙이 잠기기 위해서 말이다.




이따금 사람들도 만나고 할 일들도 곧잘 하곤 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예전의 내 모습처럼 그렇게까지 밝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렇게 티가 많이 나지는 않을 것이다. 겉으로는 크게 달라 뵈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꾸 해야 할 일들을 미룬다. 미루고 보류하고 작은 안식을 찾아 몸을 누이고 쉬고 싶어 한다. 자꾸만 잠겨 간다. 일어나려고 하지 않고, 움직이려고 하지 않고, 요리를 하지 않으려 한다.


열정을 피곤해하고, 너무 활기 있는 활동들을 힘에 부쳐한다. 예전 같으면 그냥 하면 끝나버리는 쉬운 일들을 잘 하지는 않고, 그렇게 하게 된 변명을 찾으려 한다. 또 모든 일의 의미를 찾으려고만 든다. 부딪히고 떨어트리고 흘리고 깨트린다.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연체한다.



집에서 고구마를 싸 왔다. 어제저녁에 얇고 긴 고구마를 샀었다. 삶아서 몇 개 먹어보니 별로 그렇게, 기대한 만큼 달지는 않았다. 그 고구마를 삶아서 비닐에 넣고 다시 싸구려 빵집 종이봉지에 담아서 가지고 나왔다. 집에서 싸 온 고구마를 한 입 가득 물고 가만히 생각한다. 나랑 비슷해. 내 마음처럼 밝지 않아, 고구마가.


내 속으로, 내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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