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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시와 타마시이오 미마스.

by jungsin






너는 내게 이상형을 물었지. 그리고 나는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즉시로 웃으며 농담처럼 답을 했어. 골반이 넓은 사람.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한 너는 말을 돌렸어. 내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을 때 눈길에서 – 너는 숨기려 했겠지만 - 나의 한심함에 당황한 듯한 기색을 봤어. 그 말은 사실이었지만 진실은 아니었어.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골반이 아니었어. 나는 환하게 밝은 네 모습을 보며 정말 많이 상기되어 있었어. 그럴 때면 나에게서 끄집어져 나오는 모습이 있거든. 소탈함. 나는 너에게 소탈함을 말하고 싶었어. 너와 친해지고 싶었고, 그러기 위한 한 실험으로써 솔직함을 꺼냈던 거야. 솔직해지고 싶었어, 정말, 너한테는. 그뿐이야. 소탈함을, 솔직함을 말하고 싶었는데, 오해받는 것 같아 나도 아주 조금은 당황하게 되었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당당하고 여전히 자신감 있는 척, 나의 솔직함의 기운을 당기지 않아 봤어. 그렇지만 너는 이미 마주 선 마음을 비키고, 물러서 예의를 다하는 모습으로 앉아 있더라. 그제야 나는 그 기운을 붙들어 집어넣게 되었어. 그렇게 소통은 어려운 거야. 관계에는 수많은 미스 시그널(ミス ·シグナル-미스 시그나루)이 존재해. 소통의 주파수가 맞지 않았달까. 그럴 때면 많은 것들이 소거되곤 해. 그때 그 시간과 공간에서는, 아직 미약했을지는 몰라도 희미하게 남아있던 나와 너의 관계의 지속 가능성이 소거되었다고 해야겠지.


소탈함을 생각했어.


이 말은 해야 할 것 같아서.


안녕.






Post Script.


아, 처음에 이렇게 편지를 쓸 때는 다른 할 말이 있었는데, 정작 내가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구나(지금 하려는 말과 비교하면 훨씬 덜 중요한 할 말이지만 기본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걸로 끝났어. 그러니까 너는 이제 이 편지를 찢어버려도 돼.).


어떤 스타일 좋아하세요?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그럼, 연예인 중에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말해 봐요.

아직도 나에게 묻는 사람이 있어서, 가끔 골반처럼 엉뚱한 말들을 할 때가 있곤 했는데. (그냥 느낌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 최근 들어서 느낀 건데 일단 안달복달하고 닦달하는 사람은 함께 할 수 없어요. / 쉴 수 있는 사람이 좋은 것 같아요. / 기본적으로 설레는 느낌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일단 설레고 봐야죠. / 아 정말 연예인은 안 떠오르네요. 연예인으로는 생각한 적이 없나 봐요. 우물쭈물, 얼버무림, 어딘지 개운하지 않은 여운.) 그때마다 왜 이렇게 내가 바보 같을까 생각하곤 했거든. 왜 이렇게 답이 준비가 안 되어있을까. 또는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 말하지도 못할까. 창피함과 자신에 대한 회의, 한심함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런 문답을 주고받고 난 직후라면 언제나 나는 말이 없어지곤 했거든. 생각에 잠기곤 했지만, 다시 이어지는 재잘거리는 이야기들로 깊이 생각할 틈이 없었어.


그리고

방금에서야 진지하게 깊이 생각한 끝에 나올 법한, 적당한 말을 찾았어. 그래서 이렇게 펜을 든 거야.


앞으로 누가 또 돈나 스타이루노 조세에가 스키데스까? (どんな スタイルの 女性が 好きですか?- 어떤 스타일의 여성을 좋아하세요?) 하고 물어보면.



와타시와 타마시이오 미마스(私は *魂を 見ます). 저는 영혼을 봅니다.

타마시이오 미요오토 도료쿠시소오데스(魂を見ようと努力しそうです.) 영혼을 보려고 애쓸 것 같습니다.


라고 답하겠어.


그러니까, 그건 가능성을, 영혼의 가능성을 느껴보고 싶다는 뜻이야. 거창한 의미는 아니야. 사람이 혼을 보는 것은 당연해. 혼을 더듬어 느끼고, 어디까지 깊이 내려가는지, 어디까지 넓은지 얼마나 빼곡한 감각을 공감하며 공유할 수 있는지 얼마만큼의 깊이 있는 시간을 서로에게 보여줄 수 있는지. 혼은 그런 얼개(구성, 골격, 짜임새)를 어림잡아 볼 수 있게 하는 핵심 물료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어. 사랑할 수 있는지까지도 아니야. 그냥 커피를 리듬에 맞춰 맛있게 홀짝일 수 있는지, 커피를 마시는 사이사이 음악의 캐논(canon)이 되는 본질적인 음들처럼 적절한 말들을, 흥얼거리듯이, 담백하고 감칠맛 나게(단백질로 가득한 육포처럼) 주고받을 수 있는지. 그런 것을 느껴보겠다는 건데. 그게 골반보다는 훨씬 더 정확한 대답이 될 거야. 내 입장에서는.




그런데 만일 이 모든 것을 허물어트리는 사람이 있다면 어쩌면 그건 이상형이나 연예인이나 좋아하는 스타이루노가 아니라 사랑일 거야. 좋아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좋아하게 된 거니까, 나는 아마 그 사람을 불가피하게 사랑하게 된 걸거야. 불가피함. 그건 정말, ‘정말 사랑’의 특성이니까. 불가피함이란 인생을 신비롭게 만들어 주는 것이니까.


내가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은 스타일이나 연예인이나 이상형이었다는 뜻이야.

반대로 피할 수 없었다면 그게 바로 인생일 거야. 사랑일 거야.

난 그런 자충수의 순간에 갇힐 때까지 도망 다니고 있는 거야.





* 魂 たましい : [타미시이] 혼, 영혼, 넋. ; 정신, 기력, 마음, 얼.



됐다.



https://youtu.be/U_uG-E7 PkHE? si=ey9 RaCcNTMLp1_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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