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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적 기시감

by jungsin



보라색 폴리에스테르 블라우스가 손짓했다.




짙은 회색의 둥근 챙이 달린 모자. 하얀 일회용 마스크. 목의 높이가 낮은, 얇은 자주색 목폴라 티를 속에 받혀 입고 보라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폴리 블라우스를 위에 덧입으셨다. 그리고 모자가 달린 원색 빨간색의 잠바. 등산복 느낌의 폴리 소재 ​까만 바지. 그리고 안경을 안 써서 잘 못 보았지만 등산화 느낌의 운동화를 신으신 듯했다.




1호선. 내가 선 자리 앞에 자리가 나자, 오른쪽 끝 좌석 쪽에 서 계셨던, 지긋한 노중년의 아저씨가 움직이려다가 나보고 앉으라고 손짓하신다. 나는 당연하게도, 괜찮다는 손짓으로 앉으시라고, 손바닥과 손목을 빈자리 쪽으로 열어 보이며 손짓했다.


그 사이에 원래 아저씨가 서 계셨던 오른쪽 끝자리에 자리가 났다. 그 장면을 나와 거의 동시에 발견한 내 뒤편에 서 있던 젊은 여학생이 어느새 재빨리 돌아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퇴근 시간대의 인기 환승역이어서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일어났지만 유독 내가 선 곳 앞쪽에는 자리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포기하고 서 있는데, 앞에 앉아 있는 노년의 정겨운 아주머니가 손짓으로 내 뒤를 가리키신다. 방금 오른쪽 끝 빈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원래 서 있던 곳 앞자리에 딱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고맙다고 고개 숙여 인사를 드리고 천천히 돌아서 등 뒤 빈자리로 향했다. 내리려는 사람들은 출입문 앞에 밀려 서 있고, 대부분의 승객들이 자리를 찾아 앉아 더 이상의 경쟁자가 없는 한적한 상황에서, 나는 한가하게 걸어가 앉았다.




그렇게 여유롭고 정겹고 한적한 곳은, 흡사 ‘내 자리’처럼 여겨지는 곳이었다.


내 자리, 내 자리…..


사실 나는 그 빨간 잠바 아주머니를 눈여겨보던 차였다. 처음 지하철을 타자마자 서 있던, 좌석과 좌석 사이 공간에서 방향을 바꿔 돌아서 좌석 쪽 앞에 설 때부터 흘깃흘깃 아줌마를 바라보았다. 안경을 쓰지 않은 내 눈에, 엄마랑 얼핏 비슷한 느낌이 들어 그곳을 마음으로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우연히 아주머니 앞에 서게 되었는데. 아주머니가 꼭 엄마의 정겨운 손짓과 같은 손짓으로 저 자리에 가서 얼른 앉으라는 것이다. 헤드폰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라고 말씀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내 자리로, 어떤,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맞은편에 앉은 아주머니와 나는 이후에도 몇 번인가 시선이 마주쳤다.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고 나서 몇 정거장 뒤 아주머니가 일어나 맞은편 출입문 앞에 서 계셨다. 그제야 아줌마의 옷차림을 세세히 기록해보고 싶어졌다. 메모장을 열었다. 짙은 회색의 둥근 챙이 달린 모자. 하얀 일회용 마스크. 자주색의 얇은 낮은 목폴라 티를 속에 받혀 입고 보라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폴리 블라우스….




엄마는 함께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극성스럽게 자리를 잡고는 일로 오라고 손짓을 하곤 하셨다. 나는 창피해서 고개를 돌려버리고 모른 체 했다. 엄마의 간절한 손짓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점강법적으로 승객들의 시선이 나에게 와 꽂히는 것이 느껴지고는 했다.


그럴수록 이상하게도 마음속에서 고약한 배알이 뒤틀려 엄마가 미워지곤 했다. 창밖을 바라보며, 금방 얼굴이 달아올라 울그락불그락해지고는 했다. 화가 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그렇게 다층적인 감정 속에서 왜인지 자부심이 생겨나 우쭐해지기도 했다.


그런 순간만큼은 나는 정말 매정했다. 난 다 큰 어른이고 싶었다. 그 모든 것들을 느끼면서도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아무리 다리가 아파도 이상하게 나는 꼭 서 있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 켠에서는 저 멀리서 손짓하는 엄마의 애끓음이 느껴져 속이 뜨거워지고는 했다. 엄마는 내가 다 커서 어엿한 소년이 되었다고 느낄 때까지도 그랬다.


음악이 자꾸 끊기며 흘러 나와 다른 노래로 옮겨 틀려고 다음 버튼, 다음 버튼을 누르려다 엄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지만 나는 마치, 엄마가 그럴수록 뜨끈한 오기가 발동해 엄마의 손짓조차 못 본 체 하고 싶어졌던 그때의 마음처럼, 고개도 돌리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던 그때의 마음처럼 다시 이전, 이전 버튼을 눌러 기어이 듣고 싶은 음악을 틀었다. Marc André Hamelin라는 피아니스트의 Unrevealed Andante in E flat major와 이와이 슈운지 ost 등으로 이어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는 플리였다. 글을 쓰는 동안은 음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예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꼿꼿이 서서, 단호히 엄마 쪽은 외면하고 초점도 없는 눈으로 창밖만 보고 있을 때의 나처럼. 또 그랬다.


엄마의 목소리라면 온 세상을 다 넘겨주고도 끌어안고 싶은 소리인데. 엄마는 음악이 되어 버렸다. 엄마는 자꾸 TV가 되고, 마트가 되고, 돈이 되고, 힘이 되고, 영화가 되고, 책이 되고, 글쓰기가 되고. 또 프리미어 리그가 되어 버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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