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부터 열까지
엉망이다. 오랫동안 안 마시던 술을 마시고, 치킨을 먹고, 고기를 먹고, 도시락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아무것도 안 하고, 먹고 자고 쇼핑한다. 사소한 것들을 하느라 많은 시간을 사용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며 고민하고, 아주 작은 일 조차 겨우겨우 해치우며, 후회하고, 변명하고, 방탕하고 태만하게 멈추어 서 있다. 아무도 통제할 수 없다. 지금의 나를. 나 자신 조차도. 그 점이 어쩌면 가장 무서운 부분일지 모르겠다. 그만큼 나는 강하고, 약하다.
힘은 없었고,
갈 길은 너무도 멀었다.
또렷이 보였지만, 닿을 수는 없었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 ‘후손들에게’ 중에서.
Brecht
의미에 사로잡혔던 나는 어디에 있는지. 사랑, 자연, 성숙, 우정, 운동, 꿈은 어디에 있는지. 마침 한 목사님께서 공유해주신 시가 단단한 얼음장에 부어진 미지근한 주전자 물처럼, 차갑게 얼어버린 마음 위에 얇게 달라붙었다. 한참을 앞으로 나가고 나서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는 이들이 많다. 나는 너무 또렷이 보이는데. 가고 싶은 곳이 이토록 분명한데 닿을 수 없다는 것은 놀랍고 기괴한 사실이다.
가장 닿을 수 없는 곳은 나의 영혼이 있는 곳이다. 나를 향해 아무리 헤엄쳐도, 파도 물결에 딱 한 걸음 정도 거리를 두고 계속해서 손에서 미끄러져 나가는 튜브처럼 도망가기만 한다. 나를 잡으면 모든 것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를 향해 있는 힘껏 달음박질하는데. 내 영혼은 손끝을 스치며 닿을 듯 말 듯 결코 닿지 않는다. 봄 아지랑이처럼 바로 눈 앞에서 일렁이며 하늘거릴 뿐이다.
내가 무엇을 잡고자 하는지. 무엇으로 해갈하려 하는지. 안다고 믿었는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었는데. 해 질 녘 시골집 밥솥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하늘로 높이 높이 증발해 일제히 모두 사라져 가고 있는 것만 같다.
애꿎게 또다시 사람들을 탓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헛된 사교를 끊어야 한다. 불가피하고 밀도 높은 만남만 허락해야 한다. 오직 의미 있는 대화들로만 채워야 한다. 침묵해야 한다. 읽고 또 쓰고 읽고 또 써야 한다. 미치광이 독자가 되어야 한다. 숨 막히는 침묵 끝에 무겁게 입을 여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 짙은 흑빛 어둠으로써 환희 밝혀야 한다. 죽어야 한다. 살아야 한다. 처절하고 완벽한 죽음으로써 생생히 살아있어야 한다. 생생히 살아있어야 한다.